정의와 명예훼손…'배드파더스'는 왜 유죄인가[판결왜그래]

by성주원 기자
2024.01.07 07:30:00

양육비 미지급 신상공개…명예훼손 논란
법원 판단도 엇갈려…''비방할 목적'' 쟁점
대법, 정보·불이익 비교 등 판단기준 제시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다. 이게 옳다고 생각한다.”

자녀 양육비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 모여 만든 ‘양육비 해결모임’(양해모)의 임시 대표를 맡았던 구본창 씨가 지난 2018년 11월 ‘배드 파파 앤드 배드 마마’ 얼굴 공개 사진전을 열면서 한 말입니다. 구씨는 양육비 지급을 촉구하기 위해 양육비 미지급 부모의 신상을 공개하겠다는 결정을 하면서 법적인 옳고 그름을 따지기에 앞서 자신의 소신대로 행동했습니다.

2018년 등장과 함께 사회적으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 ‘배드파더스’ 사이트 이야기입니다.

2018년 7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운영됐던 배드파더스 사이트. (사진=연합뉴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2015년 양육비 지급 이행률(양육비 이행의무가 확정된 사례 중 실제 이행된 사례의 비율)은 21.2%에 불과했습니다. 여가부 산하에 양육비이행관리원이 만들어지고 양육비를 받을 수 있도록 상담부터 협의, 소송 및 추심, 모니터링까지 지원하면서 조금씩 개선돼 2017년엔 32%까지 개선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바꿔말하면 3명 중 2명의 이혼·미혼 한부모가 비양육부모로 부터 양육비를 못받고 있는 상황이었죠.

이때 등장한 ‘배드파더스’는 양육비를 못받은 부모의 제보를 받아 양육비를 안준 부모의 신상정보(이름, 생년월일, 거주지 등)를 공개함으로써 양육비를 지급하도록 압박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실제로 배드파더스에 이름이 등재되거나 등재될 것이라는 통지를 받은 양육비 미지급 부모의 상당수가 바로 양육비를 지급했다고 합니다. 당시 하루 평균 사이트 방문자가 7~8만명에 달할 정도였으니 당사자로서는 모른 체 하기가 어려웠을 겁니다.

‘배드파더스’는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양육비이행법)의 개정도 이끌었습니다. 2020년 12월 국회에서 통과돼 2021년 7월부터 시행된 개정안의 핵심은 ‘양육비 지급 미이행자(감치명령을 받은 자)가 1년 이내에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으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입니다. 형사처벌이 가능해진거죠.

하지만 이 과정에서 ‘배드파더스’ 사이트 운영자 구본창 씨는 결국 재판을 받게 됩니다. 양육비 미지급 부모의 실명과 사진, 거주지 등을 사이트에 게시함으로써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입니다.

현행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은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공공연하게 사실이나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의 정보를 정보통신망을 통해 유통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죠.

배드파더스의 설립 취지는 정의를 위한 것으로 보였지만 그 방법이 법의 테두리 안에 있었는지는 논란의 대상이었습니다.



법원의 판단이 엇갈릴 정도로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1심은 구씨의 무죄를 선고했지만 2심에서 유죄로 뒤집혔습니다.

‘배드파더스(Bad Fathers)’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며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의 신상을 공개한 구본창씨에게 유죄 판결이 확정된 지난 4일 오전 서울 대법원에서 구 씨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쟁점은 ‘비방할 목적이 있었는가’ 여부였습니다. 명예훼손 범죄가 성립하려면 △피고인이 공공연하게 드러낸 사실이 다른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떨어뜨릴 만한 것임을 인식해야 하고 △사람을 비방할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양육비 지급의무가 있는데 이를 어겼다는 사실은 그 당사자의 사회적 평가를 떨어뜨릴 만한 것이라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사이트에 게시하는 것이 당사자를 비방할 목적인지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1심 재판부는 “적시한 사실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 경우에는 비방할 목적은 부인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국민참여재판 배심원 평결 결과도 7명 만장일치 ‘무죄’였죠.

하지만 2심 재판부는 ‘비방할 목적’을 인정했습니다. △‘배드파더스’ 사이트 운영 목적이 ‘사적 압박을 통해 양육비 지급을 신속하게 간접강제하기 위한 것’임을 부인하기 어렵고 △신상공개 정보 내용이 지나쳐 양육비 미지급 부모들의 인격권 및 명예를 과도하게 침해하고 △신상공개 요건, 시기 및 기간 등 기준이 임의적이고 의견청취나 검증의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였습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이 판단기준을 제시했습니다. 단체나 개인이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경우 ‘사람을 비방할 목적’을 판단할 때 △신상공개의 목적 △공개에 이르게 된 경위 및 과정 △공개의 방식·상대방·기간 △공개되는 신상정보의 내용·특성과 공개의 목적과의 관련성 △신상공개로 인한 영향력 △개인이 입게 될 불이익이나 피해의 정도 등을 두루 고려해야 한다는 겁니다.

‘배드파더스’ 사건을 이에 대입하면 △신상공개의 목적은 사적제재 수단의 일환에 가까운데 △신상이 공개된 양육비 미지급 부모의 권리를 침해하는 정도는 매우 크다는 것이 대법원의 결론입니다.

따라서 구씨에게 벌금 100만원의 선고유예를 선고한 2심 판단을 수긍하고 이를 확정했습니다. 선고유예란 가벼운 범죄에 일정 기간 형의 선고를 보류했다가 면소(공소권이 사라져 기소되지 않음)된 것으로 간주하는 판결입니다. 유죄이긴 하나 2년간 자숙하며 다른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전과기록은 사라집니다.

대법원은 “양육비 미지급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더라도 익명처리가 된 자료 제공 또는 통계수치의 제시 등으로도 위와 같은 목적 달성이 가능하다”며 “얼굴사진, 구체적인 직장명, 전화번호는 공개 시 당사자가 입게 되는 피해의 정도가 매우 크다”고 설명했습니다.

현재 법령에 의한 ‘얼굴 공개’는 특정중대범죄 피의자 또는 피고인, 유죄 판결이 확정된 성범죄자 등에 한해 극히 예외적으로만 인정됩니다. 구체적인 직장명 공개 또한 개인의 특정을 쉽게 만들고 공개된 사람의 경제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으며 전화번호 공개는 공개 대상자의 일상적인 생활 영위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고 대법원은 지적했습니다.

대법원(사진=이데일리 방인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