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으로 끝난 수학여행..빗길 대열운행이 부른 참사[그해 오늘]
by전재욱 기자
2023.07.14 00:03:00
2000년 7월14일 경부고속도로서 발생한 8중 추돌사고
수학여행 버스서 학생 사상자 발생..안전거리 미확보 원인
여객업계 '대열운행' 관행, 사고 위험에도 인식개선 아직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2000년 7월14일 오후 2시45분께. 경북 김천시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추풍령휴게소를 지난 1km 부근에서 차량 연쇄 추돌 사고가 발생했다. 전세버스와 고속버스, 승용차, 화물차 등 8대가 얽히면서 18명이 숨지고 약 100명 다쳤다.
| 2016년 5월16일 남해고속도로에서 발생한 연쇄 추돌사고 당시 사고 현장.(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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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는 앞서 달리던 화물차가 빗길에 미끄러져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으며 시작됐다. 뒤를 따르던 수학여행 전세버스가 화물차를 추돌했다. 전세버스에는 부산 부일외국어고등학교 수학여행단이 타고 있었다. 이런 이유에서 학생 사상자가 많았다. 불이 버스로 옮겨붙어 인명 피해로 이어졌다. 맨 뒤에서 오던 전세버스는 앞차를 피하지 못해 도로 밖 난간을 뚫고 수십 미터 아래로 추락했다. 추락 여파로 이 버스에서 사상자가 많았다.
사고 원인은 여럿이었다. 사고가 난 구간은 내리막 경사에 커브가 심했다. 평소에도 사고가 잦은 도로였다. 당일은 비까지 내리면서 노면이 젖어 사고 위험을 키웠다.
무엇보다 사고를 키운 건 안전거리 미확보가 꼽힌다. 추돌(뒤차가 앞차를 들이받음) 사고는 안전거리를 넉넉히 두면 피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학생을 태운 전세버스는 이른바 ‘대열운행’으로 움직였다.
대열운행이 사고위험을 키우는 것은 여객업계도 인식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고객 요구 사항에 맞춰 운행하려면 무시하기 십상이다. 단체 여행객은 여러 버스에 나눠타고 같은 일정을 소화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럴 때 운송자(전세버스)는 ‘제때 승객을 운반’하는 게 관건이다. 그러려면 여러 차량이 동시에 움직이는 게 상책이다.
문제는 이로써 안전거리가 좁혀진다는 점이다. 여러 차량의 이동 대열에 다른 차량이 끼면 일정을 제때 소화하기 어려워서, 통상 바짝 붙어서 운행을 하게 된다. 앞서 사고가 난 날 불이 난 버스도, 추락한 버스도 ‘안전거리’를 무시한 ‘대열운행’으로 움직였다.
대열운행 사고는 비단 그날뿐만이 아니었다. 2016년 5월16일 남해고속도로에서 발생한 연쇄 추돌사고도 대열운행이 원인이었다. 수련회를 가는 중학생을 태운 전세버스 버스 5대와 버스 틈에 낀 차량 등 모두 9대가 추돌했다. 4명이 사망하고 60여 명이 다치는 결과로 이어졌다.
사고 원인은 ‘대열운행으로 안전거리를 확보하지 못한 탓’이었다. 전세버스 7대가 한 차선에서 안전거리를 확보하지 않은 채 달리다가 정체가 시작되자 속도를 줄이지 못했고, 이 과정에서 추돌이 발생한 것이다.
| 지난달 16일 강원 홍천군 화촌면 성산리 동홍천IC 입구에서 수학여행단 버스와 트럭, 승용차 등 8중 추돌사고가 발생, 사고 차량이 망가진 채 멈춰 서 있다. 소방 당국에 따르면 이 사고로 학생 등 80여 명이 다쳤다. 사고원인은 운전자의 졸음으로 조사됐다.(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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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령 사고’ 이후 도로는 전보다 안전하게 다시 닦였다. 교육 당국은 각급 교육청에 수학여행 시즌 대열운행 위험을 방지하는 방안을 시달했다. 150명 넘는 인원이 한번에 여행하는 걸 자제하고, 전세버스에 안전담당자를 둬 감시하고, 버스 출발 간격을 수분 단위로 띄우는 등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후로도 대열운행의 위험성에 대한 운전자 인식은 제자리다. 안전거리는 일반도로에서는 시속에서 15를 뺀 수준이고, 고속도로에서는 시속 수준만큼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전체 교통사고(2022년 기준) 가운데 안전거리 미확보로 발생하는 사고는 열에 한 건(10.1%)꼴이다. 최근 15년래 이 비율은 비슷한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대열운행은 현행법 위반이다. 도로교통법은 안전거리 미확보에 대하 20만원 이하 벌금이나 구류 등으로 처벌한다. 만약 ‘공동 위험행위의 금지’에 해당하면 2년 이하 징역이나 500만 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한다. ‘자동차 운전자는 도로에서 두 명 이상이 공동으로 자동차 두 대 이상을 정당한 사유 없이 앞뒤로 또는 좌우로 줄지어 통행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위해(危害)를 끼치거나 교통상 위험을 일으키면 안 된다’는 것이 법이 금지하는 행위(대열운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