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 비친 경복궁, 달빛 내린 창덕궁에 취하다
by이윤정 기자
2023.04.20 05:30:00
''경복궁 별빛야행'' ''창덕궁 달빛기행''
매년 예매 전쟁…"올해도 1차 예매분 매진"
닫혀있던 경복궁 향원정 취향교 열려
창덕궁 부용정 일대서 눈호강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별빛에 비친 궁이 참으로 아름답구나. 불을 밝히도록 하라. 이 빛은 조선 전체를 비추고 우리 전체를 비출 것이다.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고 부국강병한 나라를 만들어야겠다. 짐(고종)이 꼭 그렇게 할 것이야.”
곤룡포를 입은 재연 배우의 목소리와 함께 경복궁 향원정으로 향하는 취향교의 문이 열렸다. 이곳은 평소에는 개방되지 않지만 ‘경복궁 별빛야행’ 참가자들을 위해 행사 기간에만 특별히 개방하고 있다. 취향교에 서서 향원정을 바라보면 어두운 물에 반사된 향원정의 모습이 어우러져 멋스러운 밤 정취를 만들어낸다. 참가자들이 가장 감탄하고 좋아하는 ‘경복궁 별빛야행’의 하이라이트 행사다.
조선왕실 문화의 진수를 만나는 경복궁과 창덕궁 ‘야행(夜行)’이 시작됐다. 전문 해설사와 함께 약 100분간 밤의 궁궐을 둘러보는 프로그램이다. 매년 ‘광클릭’ 전쟁을 일으킬 정도로 인기가 많다. 멋스러운 밤의 궁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평소 접근할 수 없었던 곳까지 개방되기 때문이다.
‘창덕궁 달빛기행’은 오는 6월 4일까지 매주 목~일요일, ‘경복궁 별빛야행’은 오는 5월 13일까지 매주 수~일요일에 열린다. 행사를 주관하는 한국문화재재단 관계자는 “올해도 예매 전쟁 수준으로 1차 예매분이 오픈과 동시에 매진됐다”며 “곧 2차 예매가 시작되는데 1차에 오지 못한 분들의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 서울 경복궁에서 열린 경복궁 별빛야행 사전행사에서 참석자들이 향원정을 둘러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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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별빛야행’은 소주방에서 건청궁까지 경복궁 북측 권역을 둘러본다. 장고와 한화당·집옥재 등 평소에는 일반에 공개되지 않는 곳까지 야간에 볼 수 있다. 회당 32명, 하루 2회씩 진행한다.
처음 경복궁에 들어서면 궁궐의 부엌 소주방으로 안내받는다. 이곳에서 식사를 하는데 왕과 왕비가 먹던 12첩 반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도슭수라상’이 나온다. 전복초를 비롯해 표고버섯 석류탕, 생선완자전, 더덕구이, 삼합정, 탕평채까지 풍성하게 차려진 한 상에 먹기도 전에 배가 부른 느낌이 든다. 여기저기서 먹기 전 ‘인증샷’부터 남기는 소리가 들린다. 국악 공연을 들으며 편하게 식사하면 된다.
배부르게 먹었다면 다음 코스는 각종 장을 보관하던 ‘장고’다. 여러 개의 장을 보관하던 곳을 그저 보기만 하는 게 아니다. 이곳에서는 장고마마와 나인의 역할극이 펼쳐진다. 짧은 극을 보고 난 후에는 장고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자유롭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해설사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면 전통의 양식과 중국풍 장식이 혼재된 집옥재 건물을 맞닥뜨리게 된다. 팔각 정자인 팔오정과 복도로 연결돼 있는 구조다. 해설사는 “‘집옥재’는 ‘옥처럼 귀한 보배(서책)를 모은다’라는 의미를 가진 전각”이라며 “고종이 서재 겸 집무실로 사용하며 외국사신들을 접견했던 장소로 4만여 책을 보관했다”고 설명했다. 관람자들을 위해 팔오정에는 왕의 의자를 한 가운데 놓아 ‘포토스팟’을 만들어놓았다.
좀 더 안쪽으로 이동하면 ‘건청궁’이 나온다. 바로 명성왕후를 시해한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났던 장소다. 해설사는 “건청궁은 명성왕후 시해 장소로도 유명하지만, 조선의 전깃불이 처음 켜진 곳이기도 하다”며 “보통 ‘빛과 그림자’가 있는 곳이라고 하는데 빛은 첫번째 전기발전을 의미하고 그림자는 명성왕후 시해를 말한다”고 했다. 향원정에서의 일정을 마지막으로 경복궁 탐방은 마무리를 맺는다.
| ‘창덕궁 달빛기행’에서 참가자들이 인정전을 둘러보고 있다(사진=한국문화재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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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달빛기행’은 은은한 달빛 아래에서 창덕궁 경내를 거닐며 고궁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창덕궁은 조선시대 5대 궁궐 가운데 임금이 가장 오랜 시간 거처했던 곳이기도 하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고, 으뜸 전각인 인정전은 국보로 지정돼 있다. 그만큼 현재 남아있는 조선의 궁궐 가운데 원형이 가장 잘 보존돼 있다. 특히 후원에는 160여 종의 나무가 있어 자연과 조화를 이룬 궁궐로도 잘 알려져 있다.
‘달빛기행’은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에서 출발해 후원까지 궁궐을 한바퀴 크게 돈다. 회당 25명, 하루 6회로 진행된다. 참가자들은 입구에서 나눠주는 ‘청사초롱’을 들고 왕의 공간으로 시간 여행을 떠난다.
가장 먼저 도착하는 곳은 인정전이다. ‘어진 정치를 펼친다’는 뜻의 건물로 내부에는 해와 달, 다섯 개의 산봉우리가 그려진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가 걸려있다. 한식과 서양식이 어우러진 ‘희정당’을 거쳐 창덕궁의 대표 공간인 ‘낙선재’를 만나게 된다. 화려한 단청 없이도 기품이 느껴지는 건물이다. 해설사는 “낙선재의 문살은 각기 다른 문양으로 되어 있어 문을 닫아놨을 때가 더 예쁘다”고 귀띔했다.
낙선재 뒤에 솟아있는 언덕의 ‘상량정’에 닿으면 대금의 청아한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다음 코스는 창덕궁 후원 중에서도 아름답기로 정평 난 부용지와 부용정 일대다. 달빛이 비치는 연못을 바라보고 있으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꺼내 들게 된다. 부용지에 비친 보물 주합루의 정취도 눈을 호강시킨다.
순조(재위 1800∼1834)가 잔치를 베풀고자 1820년대에 조성한 연경당에 도착해 전통차와 약과를 먹으며 전통 공연을 보는 것으로 프로그램이 마무리된다. 올해 음악회에서는 전통춤 ‘보상무’를 새롭게 선보인다.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가 어머니(순조의 비) 순원왕후의 마흔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만든 무용이다.
| ‘경복궁 별빛야행’에서 맛볼 수 있는 ‘도슭수라상’(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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