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새만에 100점 중 80점 팔려…'200만원전' 완판행진 이유

by오현주 기자
2021.04.20 03:30:00

노화랑 기획전 '내일의 작가 행복한 꿈'
한국 인기작가 10인 '작은그림' 100점
시장가격 보다 낮은 균일가 200만원씩
개막 전부터 구매 문의 빗발치는 '열기'
"미술의 대중화…좋은 작품 소장 기회"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노화랑이 연 기획전 ‘내일의 작가 행복한 꿈’을 찾은 한 관람객이 작가 박성민의 ‘아이스캡슐’ 연작(2021)을 둘러보고 있다. 전시에선 한국 스타작가 10인의 2∼10호 ‘작은 그림’ 10점씩 100점을 균일가 200만원에 판매한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빨간 스티커가 붙은 건 팔렸다는 거지요?”

그걸 모를 리가 없다. ‘혹시나?’도 아니다. 아쉬움을 질문에 묻혀낸 거다. 수시로 들고 나는 관람객들이 하나같이 궁금해하는 사실도 이것뿐이다. “정말 다 팔렸나요?”

최소한 여기에 ‘문턱 높은 화랑’은 없다. 수줍게 망설이는 관람객도 없다. 그저 오가며 한 번 둘러나 보자도 아니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노화랑. 기획전 ‘내일의 작가 행복한 꿈’이 열리고 있다. 해마다 이맘때쯤 같은 타이틀로 여는 전시다. 올해는 10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늘 그렇듯 당장 시선을 끄는 건 작가 면면이다. 김덕기, 김병주, 노세환, 박성민, 안성하, 이강욱, 이사라, 이세현, 정지현, 최영욱 등. 어느 자리에 내놔도 결코 가볍지 않은 탄탄한 화력을 갖춘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사실 이것도 쉽지 않은데 공들여 작업한 10점씩, 모두 100점을 전시했다. 어렵사리 물어봐야 알 수 있는 작품가격도 여기선 ‘대놓고’ 시작한다. 2호(25.8×17.9㎝)부터 10호(53.0×45.5㎝)까지 ‘작은 그림’을 200만원씩에 판매한다고.

그런데 과연 소문만큼 열기가 대단한가. 저 ‘빨간 스티커’가 말해주는 그대로인가 말이다. 실제로 열흘간 진행하는 이번 전시 중 딱 절반이 지난 19일, 전시작 100점 중 80여점이 팔려나갔다. 모든 작품이 ‘솔드아웃’된 완판작가도 벌써 다섯. 김덕기·김병주·안성하·이세현·최영욱 작가가 먼저 결승선에 도착했다.

김덕기의 ‘가족-함께하는 시간’(2021). 노화랑 기획전 ‘내일의 작가 행복한 꿈’에 나온 10점 중 한 점이다(사진=노화랑).
최영욱의 ‘카르마 20213 S-1’(2021). 노화랑 기획전 ‘내일의 작가 행복한 꿈’에 나온 10점 중 한 점이다(사진=노화랑).


노화랑의 ‘히트작’이라 할 기획전은 ‘미술애호가를 위한 서비스’란 콘셉트에서 시작했다. 국내 미술시장에서 ‘핫’한 작가 10명 남짓을 선정해 10여점 소품을 200만원씩에 판매한다는 거였다. 2006년부터 2017년까지 ‘작은 그림 큰 마음’이란 전시명으로 12회를 진행했고, 2018년부터 ‘내일의 작가 행복한 꿈’ 전으로 타이틀을 바꿔 취지와 방식을 이어갔다. 코로나19 탓에 지난해에만 건너뛰었다. 그러던 어느 샌가 ‘200만원전’이란 별칭이 생겼다.



소품이라고, 작은 그림이라 절대 만만하게 볼 게 아니다. 크기만 줄였을 뿐 작가들이 작품을 통해 내뿜는 내공과 공력은 여느 대형작품 못지않다. 튜브에서 짜낸 알록달록한 물감으로 가족의 행복을 점점이 찍어내는 김덕기 작가, 얼음과 식물을 뭉친 아이스캡슐을 꺼내놓고 묘한 대비와 조화를 한꺼번에 일궈내는 박성민 작가, 붉은 산수화란 전통적 형식 안에 현대사회의 현실문제를 응축해내는 이세현 작가, 젯소와 돌가루를 혼합해 수십번 덧칠해내는 수고로 달항아리의 형체는 물론 표면의 빙열까지 그려내는 최영욱 작가 등은 이미 ‘200만원전’의 스타반열에 올라섰다.

이세현의 ‘비트윈 레드’ 연작(2021). 노화랑 기획전 ‘내일의 작가 행복한 꿈’에 나온 10점이 나란히 걸려 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강욱의 ‘보이지 않는 공간’ 연작(2016 등). 노화랑 기획전 ‘내일의 작가 행복한 꿈’에 나온 10점이 나란히 걸려 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여기에 거시와 미시, 가시와 비가시, 예술과 일상 등 대립하는 이원적 세계를 가장 부드러운 방식으로 보여주는 이강욱 작가의 조형적 실험, 표현하려는 대상에 물감을 입히는 독특한 기법으로 ‘그림보다 더 그림 같은 사진’을 뽑아내는 노세환 작가의 장르 이상의 도전은 늘 화제를 몰고 다닌다.

건물의 투시도를 철선으로 제작해 2차원과 3차원의 공간이 교차하는 ‘입체화’를 그리는 김병주 작가, 유리잔에 사탕·담배꽁초·와인코르크 등 일상의 달콤함을 담아 현대인의 욕망과 갈증까지 증폭시키는 안성하 작가, 공주가 사는 만화세상을 옮겨내 어린 시절의 원더랜드를 다시 꿈꾸게 한 이사라 작가, 현실도 가공도 아닌 그 사이 어디쯤에 있을 법한 이미지를 무한증식시키는 정지현 작가는 새로운 합류와 동시에 인기몰이를 예감케 했다.

김병주의 ‘드러나지 않는 벽’ 연작(2020 등). 노화랑 기획전 ‘내일의 작가 행복한 꿈’에 나온 10점 중 일부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안성하의 ‘무제’ 연작(2021). 노화랑 기획전 ‘내일의 작가 행복한 꿈’에 나온 10점이 나란히 걸려 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노승진(72) 노화랑 대표는 “좋은 작가의 좋은 작품을 소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자”는 게 기획전의 의도였다고 말한다. 이른바 ‘미술의 대중화’를 위한 시도였던 거다. “미술품을 대중의 친구로 만들어야 작가와 화랑이 공생할 수 있다”는 생각도 변함이 없다. 기획전은 그 가장 쉬운 다리를 놔주겠다는 것이었다. 시장보다 낮은 균일가를 책정해 판매가격부터 손봤다.

화랑과 작가가 함께한 노력이 통했는지 매해 전시는 오픈 전에 ‘반응’이 먼저 온다고 했다. ‘믿고 기다리는 컬렉터’들이 ‘찜할 타이밍’을 엿보고 있다고 할까. 올해 작품은 40~50대가 많이 구매했단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과 비슷한 연배인 것도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기필코 오늘은 한 점’을 마음에 품었던 이들에겐 ‘빨간 스티커의 아쉬움’이 크겠지만, ‘내일의 작가’는 내년에 또 찾아온다. 그래서 ‘행복한 꿈’인지도 모르겠다. 작품이 모두 팔려도 전시는 24일까지 이어진다.

노세환의 ‘멜트다운’ 연작(2021). 노화랑 기획전 ‘내일의 작가 행복한 꿈’에 나온 10점 중 일부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정지현의 ‘표면들 속에’ 연작(2021·2014 등). 노화랑 기획전 ‘내일의 작가 행복한 꿈’에 나온 10점 중 일부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