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하는 빚탕감 정책]“신청자 적어 속 빈 강정…지원 기준 완화하고 안전망 강화해야"
by박종오 기자
2018.08.22 04:00:00
정책 실효성 높이려면
제출 서류만 8~9개…기준 너무 엄격
[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전문가들은 정부가 추진하는 장기 소액 연체자 지원 사업의 필요성을 대체로 인정하는 편이다. 원금 전액을 탕감한다는 점에서 ‘도덕적 해이’가 확산할 우려가 있긴 하지만 10년 넘게 소액의 채무조차 갚지 못할 정도로 경제적 여건이 나쁜 영세 계층인 만큼 하루빨리 노동 등 정상적인 경제 활동에 나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낫다는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자칫 부진한 신청으로 ‘속 빈 강정’이 될 수 있는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홍보 강화, 지원 요건 완화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장기 채무 연체자는 단순 사회 정의나 형평성, 복지뿐 아니라 경제적 효율성의 관점에서도 빨리 생산 현장에 복귀하는 것이 사회적으로도 이득”이라며 “신용 회복 신청자가 적다면 금융 당국이 지원 요건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장기 소액 연체자 지원 사업은 재산이 없고 소득이 중위 소득(소득이 높은 순서대로 줄 세웠을 때 한가운데 있는 사람의 소득)의 60% 이하인 사람만 지원 대상이다. 정부가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포퓰리즘’ 사업을 추진한다는 여론 비판을 의식해 지원 요건을 엄격하게 제한한 것이다. 지원자를 가릴 때 활용하는 서류도 단순 재산 확인 서류, 소득 증빙 서류 등은 물론 거주지 임대차 계약서, 최근 3년간 출입국 사실 증명서 등 8~9종에 달한다. 이런 요건을 완화해 많은 사람이 신청하고 제도의 혜택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얘기다.
지원 재원 역시 정부가 정책에 확신만 있다면 재정을 투입하는 것도 검토해 볼 만 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라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지만 실익이 더 크다고 판단한다면 정부 재정으로 확실하게 지원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권마다 새로운 채무자 지원 방안을 내놓는 것보다 현재 있는 제도 활용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오윤해 한국개발연구원(KDI) 부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개인 파산, 개인 회생 등 법원을 통한 공적 제도와 신용회복위원회의 개인 워크아웃 같은 사적 제도 등 채무자 구제 제도가 비교적 잘 갖춰진 편”이라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기존 제도를 잘 연결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채무자가 정말로 재기하려면 정부가 단순 채무 탕감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실업 급여, 공적 부조 등 사회 안전망과 복지 제도를 강화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