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민구 기자
2016.10.26 05:00:00
[정주상 서울대 산림과학부 교수] 올해도 어김없이 북한의 수해 소식이 들려온다. 북한에서는 8월 말부터 9월 초 태풍 ‘라이언록’으로 138명이 사망하고 400여명이 실종됐다. 설상가상으로 가옥 2만 채가 파손되는 대재앙을 겪었다. 특히 함경북도에서만 태풍에 따른 수해로 30만 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북한이 이처럼 수해와 가뭄에 따른 자연재해에 취약한 이유는 민둥산이 국토의 약 76%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경사가 심한 산에 내린 빗물은 짧은 시간에 골짜기에 모여 냇물을 이루고 강으로 흘러 바다로 빠져나간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하절기 집중호우처럼 많은 비가 한꺼번에 내리면 하천 수량이 갑자기 불어나 제방을 이루는 둑을 파괴하거나 넘쳐흘러 농경지를 휩쓸고 부락까지 물에 차게 된다.
북한의 산이 민둥산이 아니고 울창한 숲으로 둘러쌓였다면 큰 비가 와도 내리는 비 가운데 상당량이 나무 잎이나 줄기에 차단돼 증발하고 나머지 토양표면에 도달한 비는 두꺼운 낙엽층에 흡수되거나 토양속으로 스며들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빗물은 경사면을 따라 골짜기로 모여들게 돼 숲이 하천 수량을 조절해 홍수 피해를 줄이는 역할을 한다. 더욱이 울창한 숲이 머금은 물은 건조한 봄이나 가을에 천천히 흘러내려 우리 생활에 필요한 식수나 농업용수를 공급해 주는 중요한 ‘녹색댐’의 기능을 가지게 될 것이다.
북한과 남한 산이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 지는 위성사진을 통해 쉽게 비교해 볼 수 있다. 여름철 인공위성에서 촬영한 사진을 보면 남한 면적의 65%를 차지하는 대부분의 산이 짙은 초록색으로 나타나 울창한 숲으로 조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드넓은 개마고원을 비롯한 북한산은 지역별로 명암차가 나타나긴 하지만 대체로 황갈색의 민둥산이 대부분이다.
이에 따라 웬만한 집중강우나 가뭄에 견딜 수 있는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는 남한에 비해 북한은 황폐한 민둥산으로 집중호우나 태풍에 따른 수해는 물론 가뭄에도 취약하다. 그만큼 북한 자연환경은 농사짓기 어렵고 사람 살기 어려운 환경으로 바뀌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인 셈이다.
사실 남한도 구한말부터 1970년 대 이전까지 현재의 북한과 유사한 자연환경 때문에 많은 재해를 겪었던 경험이 있다. 20세기 초 인구 증가로 전국 숲이 크게 파괴됐고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대다수 산림이 민둥산으로 황폐화된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1960년대 정치적 격변기를 거친 후 1973년부터 박정희 전(前)대통령이 강력하게 추진한 국토녹화사업이 공무원, 학생, 군인, 마을산림계 등을 통해 범국민운동으로 전개됐다. 전국의 민둥산에 조림과 사방사업이 이뤄지고 이 후 수 십 년간에 걸쳐 강력한 입산통제로 숲을 보호하고 키우는 산림정책을 실시했다.
20세기 들어 인류는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경험했고 엄청난 속도의 도시화와 산업화로 무분별한 산림벌채와 산림개발을 목격했다. 열대밀림은 물론 심지어 ‘지구의 허파’로 알려진 아마존 숲이 엄청난 속도로 벌채되고 무분별하게 개간됐다. 이처럼 지구상의 모든 국가가 도시화·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숲을 희생시켰지만 한국만 약 650만 헥타르(약 196억평)에 이르는 국토녹화사업에 성공했다. 남한의 국토녹화사업은 세계식량기구(FAO)나 세계적인 환경운동가들이 칭송하는 20세기 인류의 대표적 친환경 업적으로 꼽힌다.
반면 북한은 1970년대 경만 해도 남한보다 상대적으로 우량한 숲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북한은 숲 복원작업에 그동안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고 특히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부족한 식량을 증산하기 위해 전국의 산을 태워 뙈기밭으로 개간하는 우(愚)를 범했다. 이로 인해 수해 혹은 가뭄에 의한 피해가 더욱 극심해지고 식량 생산도 크게 줄었다.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작가 샤토 브리앙의 말처럼 ‘문명은 숲에서 시작되고 사막으로 끝난다’는 게 필연인 듯싶다. 우리가‘통일대박’을 지향한다면 체제와 이념을 뛰어 넘어 수 십 년이 걸리는 북한의 산림 복원부터 지원하는 백년대계의 대북정책이 절실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