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트 코리아의 조건]'3低' 기댄 호황은 없다…체질개선 기회로

by김정남 기자
2016.10.04 05:00:40

'저유가·저금리·저달러' 선물 받은 80년대
지금은 '신3저'에도 한국경제 저성장 지속
그나마 '3저' 기회…구조개혁 기회 삼아야

우리 경제는 1980년대 ‘3저(低)’를 기반으로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을 구가했다. 그런데 최근 신(新) 3저가 나타났음에도 경제는 꿈틀거리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이제는 새로운 길을 찾을 때”라고 말한다. 우리 기업들은 미래를 향한 새 먹거리를 향해 변신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 것이다. 사진은 판교 테크노밸리 전경. 사진=방인권 기자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국내 경기는 올해 들어 ‘3저(3低·저유가 저금리 저달러)’의 호기를 바탕으로 쾌조를 보이고 있다. 국민총생산(GNP)은 1분기 9.6% 증가한데 이어 2분기 12.1%나 성장했다.”

“올해 우리 경제는 물가 안정의 기반 위에서 12%를 넘는 GNP 성장과 100억달러 수준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3저 호황’을 누렸던 1986년 실적을 앞지를 것으로 보인다.”

‘딴 세상’ 얘기가 아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각각 1986년 9월, 1987년 12월 내놓았던, 우리 경제를 분석한 보고서의 일부다.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이었다는 1986~1988년 3저 호황 때의 이야기다.

그 경로는 이랬다. 당시 우리 경제는 해외원유, 외자(外資), 수출 등의 의존도가 매우 컸다. 원유와 해외자본을 싼 값에 조달할 수 있는 건 의외의 호재였다. 특히 주목할 건 1985년 플라자합의다. 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주요 5개국 재무장관이 모여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의 평가절상을 통해 미국 무역적자를 해소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우리 경제에 ‘하늘에서 뚝 떨어진 선물’과도 같았다.

플라자합의 이후 엔화는 그야말로 ‘슈퍼 엔고(高)’ 행진을 벌였다. 당연히 일본과 상당부분 겹치는 우리 제품의 가격 경쟁력은 좋아졌다. 특히 걸음마를 막 뗀 우리 중화학제품은 성장에 탄력을 받았고, 경제를 사실상 이끌다시피 했다. ‘수출 코리아’의 본격 시작이라 할 만하다.

1986년부터 3년간 우리 경제의 성장률은 각각 11.2%, 12.5%, 11.9%였다. 같은 기간 민간소비 증가율은 9.1%, 8.4%, 9.2%였고, 설비투자 증가율은 25.6%, 19.4%, 13.7%였다. 지금으로서는 선뜻 상상하기 어려운 숫자다.

KDI가 1987년 3월 경제전망 보고서는 그 때 당시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급속한 증가세를 보여온 수출이 올해 상반기 중에도 계속 호조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선진국 시장에서 우리 상품의 가격경쟁력 우위가 지속되고 있으며 유망 상품인 자동차와 전자는 물론 섬유와 신발류 등의 수출 전망이 극히 밝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를 먹여살리고 있는 자동차와 전자가 3저 호황과 함께 태동한 것이다.



문제는 30년이 지난 현재다. 우리 경제는 ‘신(新) 3저’ 상황에 놓여있다. 국제유가는 40달러 초반대로 높지 않으며, 금리는 인류사를 통틀어 최저 수준이다. 무엇보다 올해 초부터 달러화는 약세를, 엔화는 강세를 각각 보이고 있다. 80년대 3저 호황의 데자뷰다.

그럼에도 경제는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저성장 저물가 저고용 등 또다른 3저가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원유를 싸게 조달할 수 있다고 해도, 자금을 더 쉽게 빌릴 수 있다고 해서도, 한 번 꺾인 경제심리를 다시 살아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80년대와 비교해 결정적인 차이는 세계 경제 상황”이라면서 “지금은 세계 경제가 둔화하면서 유가가 낮아지고 엔화가 강세를 띠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80년대 세계 수출시장을 지배하던 일본을 쫓던 우리나라는 이제 반대로 중국에 쫓기는 신세다. 우리 산업의 대표주자인 반도체마저 중국에 위협 당하는 게 대표적이다. 조선 철강 석유화학 등은 구조조정을 당할 처지로 내몰렸다. 금융권 한 고위관계자는 “우리 주력산업에 대한 수요가 너무 떨어졌다”면서 “과거처럼 환율과 금리 같은 거시지표가 변화한다고 해서 호황이 찾아오는 시대는 지났다”고 했다.

다만 지금이 그나마 기회라는 시각도 있다. 반대로 유가가 오르고 금리가 상승하면, 우리 경제에 더 악재인 탓이다. 3저 시기를 체질개선 구조개혁 구조조정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창배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체질개선의 타이밍은 이미 좀 늦었다”면서도 “과거 경제가 성장했던 그 방식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이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하는, 무엇인가 변신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굴지의 글로벌 기업들은 새 먹거리를 향해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구글 같은 회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미래 신기술에 손을 안대는 곳이 거의 없을 정도다. 각각 213년, 118년의 업력을 지닌 미국 화학회사인 듀폰과 다우케미컬도 바이오의 가능성을 보고 과감하게 합병하는 시대다.

하지만 우리 기업들이 속도는 이들만 못 한 게 냉정한 진단이다. 과거 경공업→중화학산업→첨단산업 등으로 빠르게 변신을 거듭했던 DNA는 자취를 감춘 것이다.

미래학자인 최윤식 한국뉴욕주립대 미래연구원장은 저서 ‘미래준비학교’에서 “2008년 시작된 전세계 금융위기의 공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 5년 정도 더 여진을 만들 것”이라면서도 “위기는 곧 기회다. 앞으로 20~30년간 계속해서 인류의 역사를 바꿀 만한 환상적인 기술들이 우리를 놀라게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