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강제징용시설 자랑하려는 일본의 속셈

by논설 위원
2015.05.07 03:01:01

태평양전쟁 당시 조선인을 강제 징용했던 일본 산업시설들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거의 확실해졌다고 한다, 미쓰비시 해저 탄광이 있던 하시마(端島)가 대표적인 사례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산하 민간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가 이에 대해 ‘등재 권고’ 결정을 내리면서 이 섬이 관광객들로 붐비기 시작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일본이 근대 산업시설들을 세계유산으로 등재 신청하면서 강제 징용의 현장까지 두루 포함시킨 것은 유감이다. 식민침략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시설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시도 자체가 역사 왜곡이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경우 조선 젊은이들을 강제로 끌고가 노역을 시켰던 어두운 과거도 희석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조선인 강제징용’ 일본산업시설 세계유산 등록 유력. 사진은 미쓰비시 해저 탄광이 있던 하시마(端島.일명 ‘군함도’) (도쿄 교도=연합뉴스)
나가사키 인근에 위치한 하시마 해저탄광은 조선인 600여명이 하루 12시간씩 막장 노역에 시달렸던 곳이다. 지하 갱도의 온도가 섭씨 40도까지 치솟는 등 숨막히는 여건이어서 ‘지옥섬’으로 불렸을 정도다. 이곳에서 노역하다가 숨진 조선인이 120명이 넘는다. 함께 세계유산으로 신청된 나가사키조선소에도 4700명이 강제 징용되는 등 수많은 조선인들이 끌려가 노역을 강요당했다. 그런데도 일본이 이런 시설에 대해 ‘근대화의 초석’이라며 관광지로 미화하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문제는 이 지경이 되도록 사태를 방치한 우리 정부의 안이한 태도다. 일본 정부가 지난해 1월 하시마를 포함해 모두 23개 시설을 산업유산으로 등재 신청한 이후 어떠한 대응 전략을 구사했는지 묻고자 한다. 최근 위안부 문제를 포함한 일본과의 과거사 마찰에 있어 대응하는 모습이 한결같이 이런 식이다. 우리의 명백한 실책인데도 자화자찬의 평가가 나오는 ‘우물안 개구리식’ 대응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유네스코 당국도 문제점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침략전쟁의 전범국이자 식민정책의 가해자였던 일본의 어두운 역사를 ‘근대화의 현장’으로 미화시켜 준다면 유네스코 활동에 오점을 남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국 국민의 입장을 떠나 역사의 정의를 추구하는 세계의 눈길이 유네스코 당국의 현명한 결정을 기다리고 있음을 깨닫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