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法, 상징성이냐 실효성이냐"… 딜레마 빠진 법사위

by문영재 기자
2015.02.09 05:00:00

[이데일리 문영재 기자] 부정청탁금지법인 이른바 ‘김영란법’이 상징성과 실효성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졌다. 국회 정무위에서 간신히 봉합된 위헌 소지와 과잉입법 등의 문제가 법사위에서 부활, 법안 처리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가열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무위를 통과한 법안 처리에 여야는 물론 의원 간에도 의견이 크게 엇갈리는 모습이다. 정치권에서는 이견을 좁히는데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 있다며 2월 국회 처리가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관측했다. 일각에서는 2011년 입법제안 이후 방치되다 지난달 겨우 국회 정무위 문턱을 넘은 김영란법이 또 장기 표류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8일 국회에 따르면 법사위는 지난 5일 김영란법을 상정, 심의에 착수했지만, 공직뿐만 아니라 사립학교와 유치원 등 민간영역으로 확대된 적용범위에 대해 재차 위헌논란이 일면서 ‘수정 불가피론’이 나왔다. 이상민 법사위원장은 “위헌 소지가 있는 법안을 수정하는 것은 법사위의 고유권한”이라며 수정 가능성을 내비쳤다. 의원들의 의견도 분분했다. 정무위에서 올라온 원안을 그대로 처리하자는 주장과 (정무위에서) 급하게 처리되면서 위헌 소지나 과잉입법 논란이 있는 만큼 충분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정무위에서 넘어온) 이 법은 법도 아니다. 이것저것 막 기워진 누더기”라고 지적했다. 같은 당 노철래 의원은 “법이 너무 포괄적이라 사회 자체를 범죄집단화할 가능성도 있다”며 “깊이 있는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내현 새정치연합 의원은 “법 도입으로 처벌대상이 넓어지고, 정보기관의 조사가 많아져 보완이 필요하다”고 했다. 반면 박민식 새누리당 의원은 “정무위에서 충분히 검토했을 것이고, 세부적인 부분에서 위헌 논란이 있더라도 입법적 결단을 내리는 게 국민의 명령”이라며 정무위 안 통과를 강조했다. 정무위 야당 간사인 김기식 의원도 “공직자에 언론인을 포함해도 언론인이 일반 국민보다 추가로 부담하는 의무는 ‘금품수수 금지’뿐이고 이는 언론 자유와 연관이 없다”며 정무위 안 처리를 주장했다.

법사위는 설 연휴 직후인 23일 입법공청회에 이어 법안소위(24일), 전체회의(3월2일) 등을 열어 의견을 수렴한 뒤 법안을 처리할 계획이다. 이 위원장은 “일부에서 법사위가 법안을 질질 끌지도 모른다고 하는데 근거 없는 얘기”라며 “다만, 엉터리 법으로 처리되지 않도록 철저하고 충실한 심의를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야 의원들의 의견이 크게 갈리는데다 공청회 이후 촉박한 의사일정 등으로 정치권에서는 2월 법안 처리가 어렵지 않겠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김영란법 처리가 4월 국회 이후로 넘어갈 수도 있다는 조심스런 전망까지 흘러나온다. 법사위는 법안 통과나 보류, 정무위 환송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법사위 여당 간사인 홍일표 새누리당 의원은 “위헌 소지 논란 등으로 법사위원 간 의견 차가 큰 만큼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2월 국회 내에 조급하게 처리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충분한 법안심의를 위해) 한두 달 늦어지거나 몇 개월 늘어지는 걸 갖고 법사위가 (법안을) 표류시킨다고 해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전문가들은 ‘김영란법’이 상징성·형평성에만 치우쳐 입법화되면 자칫 실효성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시한을 2월 국회 처리로 한정하지 말고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법사위 단계에서 원칙과 기준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법 시행에 따른 부작용이나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이성기 성신여대 법대 교수는 “부패·비리 관행을 뿌리 뽑겠다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국민적 관심을 받고 있는 김영란법이 기능을 다하기 위해선 한두 달 정도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정교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급하게 먹으면 체할 수 있다는 얘기다. 노동일 경희대 법대 교수는 “법 적용대상을 지나치게 확대하면 실효성이 떨어져 법이 사실상 무산될 수 있다”며 “원칙과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영희 대한변호사협회 수석대변인은 “법을 적용하다 보면 경계선이 모호해지고, 반발심도 생길 수 있다”며 “과잉금지의 원칙 위배나 직업의 자유 침해 등으로 헌재에 위헌심판이 청구될 소지도 있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