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이도형 기자
2012.12.20 06:00:00
[이데일리 이도형 기자] “지금의 제 꿈은 행복한 가정을 보면 그렇게 좋아요. 공원을 다니다 보면 아이들이 맛있는 것을 보면서 웃는 것을 보면 저런 가장의 행복을 지키고 싶어요” (11월 7일 서울여대 걸-투(Girl-Two)콘서트 중 박근혜 당선자 발언)
박근혜 당선자는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대통령이다. 또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이은 첫 부녀(父女)대통령‘이기도 하다. 박 당선자가 이처럼 우리 정치사에 다양한 ’첫 발자국‘을 남길 수 있었던 원동력의 요체는 무엇일까.
◇’탐욕스럽지 않은 지도자“
박 당선자의 리더십을 구성하는 핵심요소는 ‘공평무사(公平無私)’다. 공(公)이 사(私)보다 위인 기본 받침 위에 신뢰·원칙·절제 등이 운영 요소로 움직인다.
박 당선자는 자신의 정치 입문 배경을 ‘외환위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IMF 체제로 들어가면서 제가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세운 나라인데 이렇게 무너질 수 있는가“며 ”다시 나라가 반석위에 올라서는데 일조를 하고 노력을 안 한다면 나중에 굉장히 스스로를 자책할 것 같았다. 그래서 용기를 내서 (정치에) 입문하게 됐다“고 계기를 설명한다.
이러한 언급은 사(私)보다 공(公)을 중요시 여기는 그의 특성을 보여준다.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도 박 당선자에 대해 ”탐욕스럽지 않아 지도자로 적합하다“고 평가한 바 있다. 어려서 밥상머리 앞에서 아버지(박 전 대통령)의 가뭄 걱정을 듣고 비를 내리게 해달라는 기도를 했다는 그의 성장배경이 자연스럽게 ‘공평무사적 태도’를 탄생 시킨 셈이다.
◇ ‘원칙’으로 신뢰 이끌어 내
박 당선자의 공적 우위 리더십은 원칙과 신뢰를 통해 운영된다.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원칙을 강조하는 박 당선자의 모습이 여러 차례 쌓여가면서 신뢰감이 형성되는 식이다.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이미지가 아니라서 대중에게 받아들여지는 무게감이 크다.
그는 한나라당 대표로 재임할 때 주요 권한 중 하나로 여겨지는 공천권을 포기하고 상향식 공천제를 도입했다. 측근들로부터 큰 반대를 받았던 홍준표 당 혁신위원장의 혁신안을 받은 것도 박 당선자 본인의 결단에 의해서였다.
박 당선자의 ‘원칙적 태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 2005년 말 2006년 초의 ‘사학법 장외 투쟁’이다.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의 사학법 개정안에 맞서 그는 53일 동안 장외 투쟁을 하며 맞섰다.
여론은 여당의 개정안에 지지를 보였지만 그는 ‘우리 아이들의 앞날과 교육의 미래가 걸려 있다’며 굽히지 않았고 결국 재개정안을 이끌어 냈다. 당시 박 당선자는 ”사학법을 갖고 싸우는 것이 정치적으로 손해가 좀 난다고 해서 두 눈을 질끈 감고 넘어갔다면 내 양심에 큰 상처가 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당선자의 원칙은 대중으로부터 ‘믿을 수 있다’는 신뢰를 이끌어 낸다. 실제로 그는 자신이 한 말을 쉽게 뒤집지 않는다. 2010년 세종시 수정안 논쟁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수정안’에 맞서 원안을 고집했던 것도 자신이 세종시 법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에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에서 출발했다.
4·11 총선에서 초반 열세를 뒤집고 원내 과반정당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약속은 지키는 정치“라는 박 당선자의 주장이 공감을 얻었다는 분석이 많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도 그는 ”공약을 꼭 지키겠다“며 예의 ‘신뢰’를 내세웠고 대중은 그의 주장에 동감했다.
◇또다른 무기 ‘절제’
박 당선자가 대중으로부터 신뢰를 이끌어내는 또다른 무기는 ‘절제’다. 그는 정제된 화법을 구사한다. 그의 어법은 길게 말을 하지 않지만 핵심을 담는다.
2006년 지방선거 당시 박 당선자가 피습 이후 처음 했다는 ”대전은요?“는 한나라당의 대승을 이끌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망을 안 뒤 처음으로 했다는 ”전방은 이상이 없습니까?“라는 말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헌법 개정 제안에 ”참 나쁜 대통령“이라는 말로 일축해 버린 것 또한 압축된 표현으로 정치적 의미를 강하게 표현하는 리더십을 보여준다.
박 당선자의 ‘절제’는 행동에서도 드러나곤 한다. 그는 한여름에도 몇 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거나 의전상황에서도 쉽사리 돌출행동을 하지 않는다. 이러한 그의 어법과 행동은 때론 ‘불통’ 이미지로 비쳐지기도 했지만, 반대로 지도자로서 철저하게 예측 가능한 행보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예측과 파격 사이.. 대탕평 인사는
예측 가능한 행보를 보여주는 만큼 박 후보는 인사스타일에서도 크게 튀지 않는다. 주위 인물을 신뢰하는 성향이 짙다. 정치입문 때부터 같이한 보좌관들이 한 때 논란의 중심에 섰던 것도 같은 맥락에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멀리 떨어진 인물을 기용하는 데도 크게 주저하지 않는다. 당 비상대책위원회 시절 등용해 선대위까지 함께한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둘은 몇 차례 충돌하기도 했지만 박 당선자는 김 위원장을 내치지 않았다.
안대희 정치쇄신특별위원장도 박 당선자와 별다른 인연이 없지만 대선 국면 내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았고 결국 대선 승리의 주역이 되었다. 이밖에 이준석 전 비대위원·이상돈 정치쇄신특위원도 중용 케이스에 해당한다.
‘예측’과 ‘파격’을 오고 가는 박 당선자의 인사스타일의 첫 작품은 결국 인수위와 초대 조각에서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박 당선자는 대선 유세 도중 여러 차례 ‘대탕평 인사’를 공언했다. 한화갑·한광옥 등 동교동계 인사들의 지지를 받은 것도 대탕평 사례의 하나로 언급된다. ‘원칙’을 중요시하는 박 당선자의 성향상 대탕평 인사는 이번에도 지켜질 확률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