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1년)④상생의 퇴직연금..日산덴의 교훈

by오상용 기자
2006.11.30 13:30:00

"시간걸려도 노사대화로 상생 모색해야"
"사내 투자교육 중요..스스로 선택 바람직"

[이데일리 오상용기자] "퇴직 후의 삶을 하루에 몇번이나 그려보십니까? 퇴직연금은 노후 삶의 질을 결정함은 물론, 미래 사회의 얼굴 표정까지 바꿔놓을 수 있습니다. 노사는 지금의 선택이 갖는 무게를 곱씹어 봐야 합니다."

퇴직연금이 탄생 한 돌을 맞았다. 공적연금의 한계를 보완하고 노동자의 퇴직후 삶의 안정을 위해 도입된 제도지만, 아직은 걸음마 단계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만 기업과 노동자 모두 여전히 생경스러워 하는 모습이다.

최근 서울서 만난 일본 산덴(SANDEN)의 하타조지(秦 穰治) 총무인사부장()은 들려주고 싶은 말이 많았다. 자동차 부품업체인 산덴은 `일본판 401k`라 불리는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을 일본에서 선도적으로 도입한 기업.

하타 부장은 2년여에 걸쳐 노조를 설득, DC형 퇴직연금을 도입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지금은 틈틈이 일본과 해외를 오가며 당시의 노하우와 DC형 퇴직연금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전도사로도 활약하고 있다. 2002년 이후 산덴의 퇴직연금은 40%가 DB형으로 60%가 DC형으로 운용되고 있다.

"노동자들은 운용성과에 따라 급여가 달라지는 DC형 퇴직연금에 불안을 느낄 수 밖에 없을 거에요. 운용리스크를 왜 직원들에게 지우냐고 하죠. 하지만 사실은 알고 보면 회사와 직원 모두가 윈윈하는 길인데 말이죠"

실제 DB형을 도입한 기업의 경우 퇴직연금 채무 부담으로 경영이 위협받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기업의 존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사원들의 미래라고 안정적일 수는 없다. 아울러 사람들의 정년후 수명이 길어지는 추세를 감안하면 DB형 퇴직연금으로는 인플레이션을 좇아 가기에도 벅찬 시점이 오게 된다.

"DC형 퇴직연금 도입은 이제 큰 조류입니다. 특히 글로벌화 되고 있는 한국의 기업 상황을 놓고 볼때 어떤 형태의 퇴직연금을 도입할 것인가는 단순히 사내 복지 문제로 머물지 않습니다. 외국의 사례에서 처럼 자칫 기업의 생사를 좌우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하타 부장의 이같은 지적은 실제 미국내 철강 및 자동차회사와 항공사 등을 통해 확인된다. 지난 2004년을 전후해 유나이티드에어라인 등 DB(확정급여)형 연금 방식을 채택했던 일부 기업들이 과도한 연금채무를 막지 못해 기업회생 절차를 밟았다.



그는 "DB형의 퇴직연금은 연금채무가 운용환경 변화에 따라 급증할 수 있는 구조로 회계상의 `우발채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운용실적이 직원들에게 주기로 했던 퇴직급여에 못미칠 경우 회사가 이를 충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에 따라 외생 변수에서 좀 더 자유로울 수 있는 재무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DC형 중심으로 퇴직연금을 도입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외국의 사례를 보면 상거래나 금융기관 거래시 상대방 기업의 퇴직연금 상태가 재무 안전성을 살피는 하나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하타 부장은 "다국적기업으로 변신하고 있는 한국의 기업들도 이같은 추세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DC형 퇴직연금에 대한 직원들의 불신을 씻고 회사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열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사내 투자 교육이 가장 중요합니다. DC형 퇴직연금의 경우 도입초기에는 실감을 하지 못하지만 직원들의 개별 계좌로 매달 퇴직급여분이 입금되고 운용수익이 쌓여가면서 직원들의 관심도 덩달아 높아지게 되죠."

그는 사원들이 최상의 투자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회사는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기관들의 눈치를 살필 필요도 없다. 금융회사들을 경쟁시켜 직원들에게 최상의 투자정보를 제공하도록 하고 그들의 미래 설계를 돕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퇴직연금 도입 1년을 맞은 한국에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성공적인 퇴직연금 정착을 위해서는 회사와 노조가 얼마의 시간이 걸리든 대화를 통해 상생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산덴 역시 DC형 퇴직연금제 도입의 필요성을 설득하는데 2년이 걸렸어요. 지금은 직원들이 회사의 가장 든든한 우군이죠."

그는 또 "직원 개개인이 DC형 또는 DB형 가운데 어느 하나를 양자택일 하도록 하는 것 보다는 제도적으로 개인이 동시에 두가지 방식 모두를 채택할 수 있는 길을 터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각자의 성향에 따라 노후를 설계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초기에는 사원들이 DB형과 DC형의 배분을 8대 2정도로 해보다가, 차차 투자가 이런 것이구나라는 안목이 트이면 합리적으로 자산운용을 조절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