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 울려퍼진 고교생들 함성

by오마이뉴스 기자
2005.05.08 10:07:05

"바보같이 억눌려온 시대 끝내야"
400여명 참가... 평화적으로 마무리

[오마이뉴스 제공] 진혼굿이 끝난 뒤 입시 경쟁의 압박에 시달리는 상황을 그린 "우리들의 현실"이라는 노래공연이 이어졌다. 노래공연을 한 "엑기스"가 "청/소/년/이/ 주/인/이/다"라는 8자 구호를 제안하자 400여명으로 늘어난 참석자들은 촛불을 들고 함께 구호를 외쳤다. 추모행사장은 너울거리는 촛불과 자신이 주인임을 외치는 청소년들의 함성으로 가득찼다. "나보다 먼저, 나를 대신해 떠난 친구들에게 조의를 표한다" 이어 참석자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영등포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김은형 교사는 "강압적 입시교육에 시달리는 학생들을 살리기 위해 참교육 운동에 나섰다가 두 차례 해직되고 수감된 적도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뒤 "아직도 아이들이 죽어가는 모습에 억장이 무너지고 한편으로는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한 여학생은 "어른들이 일방적으로 결정한 내용에 바보같이 억눌려온 시대의 종말을 선포하기 위해 우리가 모인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한 뒤 "언제까지 두발 단속당하고 발목 양말 벗겨지는 일을 감수하며 숨 죽이고 살 수 없으니 학교로 돌아가 뜻을 모으자"고 외쳤다. "(고교생이 아니기에) 이 자리에 올 자격이 없을 수도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한 재수생은 "나보다 먼저, 나를 대신해 세상을 떠난 친구들에게 삼가 조의를 표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다"고 소회를 밝혔다. 수원에서 올라왔다는 남학생 차모군은 "교육부는 어제(6일) 어느 한 과목의 중간고사 시험 한 번이 대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도 안 된다고 말도 안 되는 해명을 했고 서울시교육청은 교사를 동원해 우리 요구를 묵살하고 있다"며 교육당국을 강하게 질타했다. 멀리 전남 영광에서 5시간 걸려 올라왔다는 남학생 하모군은 "다음 주 토요일(14일) 이 자리에서 두발 규제 철폐 문화제가 있으니 그 때 또 보자"며 학생 인권 신장을 위해 계속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교사와 학생들에 이어 저녁 8시 무렵 학교 폭력 때문에 자녀들을 먼저 떠나보내야 했던 어머니들이 발언했다. 한 어머니는 "자식을 이 가슴에 묻어야 했다"고 운을 뗀 뒤 "이야기 들어줄 수 있는 친구 하나만 있어도 아이들은 죽지 않는다"며 입시 경쟁 속에서도 서로 배려해 줄 것을 당부했다. 또다른 어머니는 "식물인간이어도 좋으니 살아서 숨만 쉬어달라는 게 어머니 마음"이라고 전한 뒤 "(자살 같은) 절대 나쁜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학생들에게 호소했다. 학생들은 어머니들의 간곡한 호소에 "어머니, 힘내세요!"라는 외침으로 화답했다. 발언이 계속되는 동안 학생들 사이에서는 각자 하고픈 말을 적은 글을 모으는 종이함이 돌았다. "21세기 청소년공동체 희망" 관계자는 "여러분이 못다 한 말을 모아 교육부에 전달하고 한 달 내로 책임있는 답변을 할 것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발언이 모두 끝난 뒤 참석자들은 저녁 8시 10분경 "청소년이 주인이다"라는 8자 구호를 다시 한 번 연호하며 행사장을 청소년들의 작은 해방구로 만들었다. 학생들은 저녁 8시 20분경 "각 학교로 돌아가 힘내서 열심히 살자"고 다짐하며 추모제를 마쳤다. 또한 보수 성향 단체인 자유청년연대가 "추모제"가 열린 교보빌딩 인근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주최한 "공교육 살리기 촛불 기도회"에는 학생들이 거의 모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