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한 '이사 충실의무 확대' 기준…기업 혼란 키운다

by조민정 기자
2024.09.23 05:30:00

[스페셜리포트]상법 개정안 논란①
곽관훈 한국경제법학회장(선문대 교수)
주주까지 대상 확대, 기준도 애매모호
주주별 이익 달라 개미 우선 어려워
소송 남발에 기업 사법 리스크만 커져
부작용 고려해 더 신중한 논의 필요

[곽관훈 한국경제법학회장(선문대 법·경찰학과 교수)] 최근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까지 확대하자는 상법 개정안이 논란이 되고 있다. 현행법상 이사가 ‘주의의무 내지 충실의무’를 부담해야 할 대상은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그 범위를 주주로 확대하자는 것이다. 현재는 이사가 회사의 이익만을 고려하기 때문에 소액주주의 피해가 발생하고 있으니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새롭게 규정해 주주를 보호하자는 취지다.

곽관훈 한국경제법학회장(선문대 법·경찰학과 교수). (사진=본인 제공)
그러나 우리 법은 이미 주주의 이익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다. 대부분 상법 교과서와 판례에서 법인인 회사의 이익은 결국 ‘주주 전체의 이익’이라고 보고 있다. 주주 전체의 손해는 회사에 손해이며, 따라서 이사는 그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

회사와 주주의 이익이 충돌하거나 지배주주와 소액주주의 이익이 충돌하는 경우엔 이사가 합법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했는지를 따져야 할 문제다. 충실의무를 도입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상법을 개정한다고 해도 이사가 무조건 소액주주의 이익만을 고려할 수는 없다. 법의 테두리 내에서 합리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것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현재 발의된 개정안은 경영진이 준수해야 할 충실의무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일반규정으로 충실의무를 도입하는 순간 기업은 큰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또 주주가 갖는 기대와 달리 충실의무 확대에 따라 법원의 판단이 변화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판례에서 이미 이사가 추구해야 할 회사의 이익을 ‘전체 주주의 이익’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주주들은 손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면 적극적으로 소송을 제기하겠지만, 법원의 판단은 지금과 크게 달라지지 않는 남소(濫訴·소송 남발)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정부는 아직 입장을 뚜렷하게 정하지 못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11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기업 경영 환경을 위축시킨다는 우려도 있어 여러 의견을 듣고 있다”며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충실의무 적용 확대는 부작용이 더 크다. 밸류업을 위한 법 제도 개선은 필요하지만 무조건적인 확대보다는 더 신중한 논의가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