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기 "70년 된 낡은 노동법 올가미에...MZ세대 창의자본 싹 못 틔워"[송길호의 파워인터뷰]

by송길호 기자
2023.03.02 05:50:00

김 중앙노동위원장
규제 중심 임금·근로시간 경직된 고용관계
자율·분권에 기초한 디지털 시대에 역행
10%만을 위한 특권노조도 인적자본 발목
노동개혁은 중산층 두껍게 하는 윈윈 게임
시대에 뒤진 법체계로는 지속성장 어려워
개혁으로 도약 이룬 선진국, 교과서 삼기를

김태기 중앙노동위원장은 “노동이 단순 생산 요소가 아닌 인적자본 내지 창의자본이 될 수 있도록 제도와 관행을 뒷받침해야 한다”며 “자율과 분권의 기조아래 글로벌 스탠더드에 따라 70년 낡은 노동법제를 현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길호 이데일리 논설위원 겸 에디터]윤석열 대통령이 올해를 노동개혁 추진 원년으로 삼고 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특권노조의 일탈과 비리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면서 개혁의 목소리는 그 어느때보다 높다. 법치 수호를 위한 정부의 원칙적이고 단호한 대응이 국민 지지를 이끌어내며 동력도 살아나고 있다. 하지만 당위성에 대한 공감대는 확산되고 있지만 실행방안에 대한 논란은 분분하다. 전체적인 컨센서스는 모아지지 않은채 부분적 산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모습이다

개혁의 발판은 마련했지만 구체적인 청사진이 나오지 않은 이때, 전체적인 로드맵은 어떻게 짜야할까. 시대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70년 낡은 법제는 어떻게 개편해야할까. 퇴행적 노동운동, 후진적 노사관행은 어떻게 개선할까.

김태기 중앙노동위원장에게 노동개혁의 갈 길을 물었다. 노동조합과 노사관계 분야를 오래 연구해온 그는 김영삼정부시절부터 30여년간 각종 노동 관련 위원회의 공익위원 또는 분과별 위원장을 맡으며 노사 대립과 갈등의 현장을 생생히 경험한 노동경제학계의 석학이다.

김 위원장은 최근 서울 정부청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노동개혁과 관련, “국가차원에선 생산수단으로서의 노동을 인적자본으로 확장, 생산성을 높여 불평등을 줄이고, 개인 차원에선 양질의 일자리와 이동성의 기회를 확대하는 일”이라며 “결국 취약계층을 끌어올려 중산층을 두껍게 하는 모두의 윈윈게임”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동법치를 확립하고 노동법제를 자율· 분권의 기조 아래 글로벌스탠더드에 따라 현대화해야 한다”며 “시대착오적 노동법 체계로는 노동력의 확장도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개선도 지속적인 성장도 이룰 수 없다”고 강조했다.

-노조의 회계공개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는데요. 노조의 약점을 정확히 짚은 것 같습니다.

“과거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노동조합의 회계에 대해 정부가 사실상 강력한 감독 권한이 있었어요. 그런데 민주화 이후 (이런 권한이)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 수단이 될 수 있다며 제한했어요. 그래서 ‘회계장부를 요구할 수 있다’는 정도의 근거조항만 남겨두었죠. 부작용을 막을 제도적 장치가 약했던 셈이에요. 문제는 국민 세금이 노조에 지원된다는 건데 어떻게 쓰이는지 모른다면 말이 안 되는 거죠. 조합원들이 낸 돈도 투명하게 알 권리가 있잖아요. 그러지 않으면 노동조합의 기본 원칙 ‘조합 민주주의’에 반하는 거예요. 특정 노동단체에 세금을 지원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어요.”

-민주노총 지도부에는 종북노선을 추종하는 세력도 있습니다.

“미국도 비슷한 경로를 거쳤어요. 산업혁명 이후 2차 대전을 치르면서 미국의 노동 운동에도 공산주의자들이 침투합니다. 특히 우리나라 민주노총격인 CIO(산업별조합회의)의 경우 국익보다는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식이었어요. 그래서 안보 위협이 발생해요. 여기에 산별노조들이 마피아와 손을 잡고 검은 돈을 거래합니다. 비리가 터지기 시작하죠. 여론이 들끓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민주·공화 양당이 함께 법을 만들어 대응합니다. 1947년 태프트·하틀리법(Taft - Hartley Act)으로 불린 노사 관계법이 그렇게 제정됐어요. 미국에선 적어도 안보위협, 노조비리에 대해선 초당적으로 협력합니다.이후 노동계도 위기감을 느껴 돌파구를 찾으려고 했어요. 1955년 양대 노총인 AFL(노동총연맹)과 CIO가 합쳐 AFL-CIO가 탄생한 배경이에요.”

러시아 공산혁명 2년 후인 1919년 출범한 미 공산당(CPUSA)은 소련과 유기적으로 내통하며 노조와 결탁, 1936년 대선까지 참여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제정된 태프트 · 하틀리법은 노조의 예산· 결산 공개를 강제하고 노조의 정치헌금을 금지시켰을 뿐 아니라 노조 지도자들이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는 점을 선언하도록 의무화했다.

-노동단체의 전횡과 일탈은 선진국도 마찬가지군요.

“노동조합 정치, 이른바 노동정치(Labor Politics)는 어느 나라에나 있죠. 정상적인 노동 정치라면 노조가 국회나 정부를 설득해 근로자에게 유리한 정책이 나오도록 하는거예요. 하지만 노조가 정치자금이나 선거자금을 통해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파업 등 물리적 힘을 동원해 기득권을 지키려 하면 민의를 왜곡하게 되죠. 민주주의의 마이너스 요인이에요. 그런 일들이 실제 산업혁명 이후 선진국에서 나타났지만 대부분 극복했어요. 지금 우리나라에서 겪는 문제들은 이미 선진국이 거쳐갔던 일들입니다. 미국의 경우는 40년대 후반∼ 50년대, 유럽은 대략 70년대 대략 마무리됩니다.”

-우리나라 노동운동이 여전히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원인은.

“선진국들은 시대변화에 따라 노동법을 계속 진화 발전시켰어요. 미국은 40∼50년대 노동의 과보호 규정을 없앴고 90년대 클린턴 시대엔 직업훈련, 능력개발, 디지털 격차에 따른 소외계층해소 문제를 어젠다로 삼았죠. 오바마 시대엔 직업교육의 중추를 고교차원에서 전문대 차원으로 높입니다. 이런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통해 노동개혁의 수준을 계속 끌어올린 거예요. 미국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건 노동법을 글로벌 스탠더드가 될 수 있도록 잘 만들었기 때문이에요. 유럽도 90년대 영국, 스웨덴을 필두로 덴마크 노르웨이 독일이 차례로 노동법을 개정했어요. 남유럽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10년대 들어서야 착수했죠. 결국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노동법을 현대화한 나라가 지속적인 성장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어요.”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의 노동법은 답보상태라는 거군요.

“김영삼 정부시절 노동법 파동 이후 발목이 잡혔어요. 1996년말 당시 노동법을 통과시켜놓고도 야당의 결사반대와 정치선동으로 번복했는데 결정적 실수예요. 당시 노동법 파동을 주도한 DJ는 집권후 IMF의 압박으로 정리해고 법제화 등에 나섰지만 사실 별 진전된 내용은 없습니다. 해고 요건에 대한 정비부터 안 돼 있어요. 1990년대 디지털시대로 접어들면서 각국은 고용관계에 대한 정부 개입을 축소하는 등 노동의 자유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노동법 개정에 나섰지만 우리는 반대방향으로 간 거에요. 노동법이 시대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노사관행도 여전히 구태에 머물러 있는 셈이죠.”

-낡은 노동법이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유발하는 거죠.

“노동시장 건전성의 척도는 이동성(mobility)이에요.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중소기업 근로자가 대기업 근로자로 쉽게 전환될 수 있어야 해요. 디지털 시대로 전환되면서 노동이동이 매우 왕성해야 할텐데 각종 산업규제와 노동규제로 막혀 있어요. 근로시간 규제 때문에 일을 더 하고 싶어도 못해요. 노동법이 전체 근로자의 12%에 불과한 대기업 정규직을 과도하게 보호하고 있잖아요. 여기에 양대노총의 주축인 강성노조의 전횡이 이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어요. 이는 결국 노동력을 제대로 활용 못 한다는 의미이고 생산성 하락으로 이어져요. 경제의 활력은 떨어지고 불평등도 그만큼 커지게 되는 거예요.”

-올해로 노동법 제정 70주년인데 이젠 재설계할 때가 됐습니다.



“노동법은 시대의 산물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입법배경이 다른 나라와 다르죠. 제헌헌법이 이례적으로 노동기본권을 보장했는데 노동조합법을 통해 그 한계를 정할 필요가 있었어요. 1953년 노동조합법, 노동쟁의 조정법, 노동위원회법, 근로기준법을 차례로 제정했으니 일반법의 기초인 민법(1958년)보다 먼저 만든 셈이에요. 주목할 점은 근로기준법보다 노동조합법을 먼저 마련했다는 점이에요. 당시 주요 산업기반이 되는 공장의 노동조합을 공산주의자들이 장악하면서 노조를 적화 수단으로 삼았던 겁니다. 이들이 총파업을 하면 산업 전체가 마비되는 거에요. 체제위협을 느낀 이승만정부로선 서둘러 노동조합법을 제정해 이를 통제할 필요가 있었던 거죠.”

-노동조합의 정치적 성격은 역사적 연원이 있었군요.

“노동조합법의 이런 입법배경 때문에 노조가 파업을 하면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정상파업인지 정치파업인지를 민감하게 보게 됩니다. 우리나라 노조는 태생적으로 정치적이고 노동법은 정치적 요인에 의해 결정적 영향을 받은 셈이죠. 지난 70여년간 노조가 정치투쟁에 몰두하고 성역화하면서 특권의식을 가지게 된 건 이런 역사적 상황과도 무관치 않아요. 1953년 노조법이 처음 제정된 후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노조의 활동과 쟁의행위를 억제하는데 초점을 맞췄어요. 1987년 민주화 이후엔 노조의 자유를 확대하는 쪽으로 나아갑니다. 그 기조가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데 문제는 도를 넘기 시작했다는거예요. 노란봉투법을 보세요. 친노동정권을 표방했던 문재인정부조차 문제점을 인식하고 뭉갰던 법이에요. 그런데 지금 정치적 이유로 갑자기 민주당의 제 1 민생과제가 됐어요.”

-노동자의 일할 자유는 억제하면서 노조 활동의 자유만 확대하는 꼴이군요.

“법이 재산권을 보호해주고 법치를 확립해야 거래관계나 고용관계에서 신뢰가 형성돼요. 노란봉투법처럼 법이 재산권을 보호해주지 않고 노사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진다면 법치와 신뢰 모두 무너집니다. 중대재해처벌법도 마찬가지예요. 규제와 처벌 중심의 법은 실효성이 없어요. 산업 안전을 명분으로 한다지만 사실상 기업에 부담만 주는 법입니다. 규제와 처벌에 치중하면 불신이 생기고 그 불신 때문에 더 이상한 규제가 나오게 마련입니다. 규제의 악순환이에요. 그 덫에 걸리면 나라 경제는 흔들리는거죠. 정치경제학 원론중의 원론입니다.”

-노동법은 결국 자율과 분권의 기조에 따라 업그레이드해야겠군요.

“디지털 시대에 맞춰 개정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정보화 수준과 교육수준이 가장 높은 나라예요. 노동력이 단순 생산 요소를 넘어 인적자본 내지 창의자본으로 빛을 발할 수 있는 만큼 노동법이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는 겁니다. 과거 노동은 자본과 기계에 붙는 생산요소, 종속 노동이었던 만큼 규제가 필요했겠죠. 지금은 인적자본으로서 혁신의 주체예요. 자율을 보장해야 합니다. 근로시간, 임금 모두 고용인과의 자율적 계약이 생명이에요. 왜 이 모든 기준을 정부가 획일적으로 정합니까. 그러면에서 문재인정부 시절 거꾸로 갔던 임금· 근로시간 규정부터 반드시 되돌려야 해요.”

-노사정 삼자 내지 노사공 3자 회의라는 사회적 협의기구는 제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사회적 협의체는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집단지성을 발휘해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민주노총이 완전히 대화의 문을 닫아놓고 있는 현실에선 사회적 합의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외환위기때 IMF의 압박으로 노사정위원회를 출범시켰지만 그후 제대로 역할을 한게 거의 없잖아요. 사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노동법을 개혁한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사회적 대화는 필요하지만 합의로 법을 만들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런 면에서 노동법 개정의 주체는 정부예요. 노사와 충분히 대화를 하고 한발 더 나아가 국민 의견을 잘 수렴해야 합니다. 특히 현 노동체제의 희생자인 청년들의 목소리를 잘 들어야 합니다.”

-최근 MZ세대 노조의 출범도 이런 시대적 흐름과 맥을 같이하는 거겠죠.

“MZ세대는 기술과 경제 사회 환경의 변화속에서 나타난 디지털 세대에요. 단순히 청년노조라는 차원에서만 볼 수는 없습니다. 자율과 분권의 기조를 노동조합도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선진국 노동운동이 조합원들의 개별 니즈에 충실하려고 하잖아요. 집단서비스나 정치투쟁과는 거리를 두고 있어요. 이런 면에서 디지털 시대 MZ노조의 목소리는 점점 커질 겁니다. 다만 기존 노조를 대체하는데는 시기상조예요. 노조는 공동체의 가치를 전제로 성립해요. 단순히 이익을 얻기 위한 도구로선 존속하기 어렵습니다. 상식과 공정 뿐 아니라 그들이 내세우는 가치와 철학, 비전을 더욱 명확히 제시할 필요가 있어요.”

-지금은 노동운동의 전환기라고 볼 수 있겠군요.

“노동조합의 대전제(본분)는 사회적 책임이에요. 헌법이 노동기본권이란 특권을 보장해준 만큼 그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어려운 근로자들을 위해 낮은 곳으로 임해야 하죠.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노조는 이익단체나 정치단체처럼 행동해요. 대기업 공기업의 정규직, 상위 10%만을 위한 특권노조 아닌가요. 일반 근로자 대부분이 노조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건 노동 기본권에 역행하는 일이에요. 그런 면에서 노동운동은 지금 대변혁기에 들어섰어요. 모순은 언젠가 무너집니다. 예컨대 디지털 인프라가 가장 강한 나라, 젊은이들의 학력 수준이 가장 높은 나라에서 지금 우리 청년들이 가장 어렵게 살아요. 청년 3분의2가 비정규직이에요. 양대 노총이 기득권 유지를 위해 친자본 프레임을 걸고 노동개혁에 저항하면 할 수록 국민과는 더 멀어집니다.”

-노동개혁의 전체적인 로드맵은 어떻게 마련해야 할까요

“노동개혁의 목적은 국가 차원에선 노동력을 확장, 생산성을 높이고 불평등을 줄이는 일입니다. 개인 차원에선 양질의 일자리를 찾고 이동성의 확대를 통해 기회를 늘려가는 일이죠. 결국 취약계층을 끌어올려 중산층을 두껍게 하는 일입니다. 정부가 노동법치를 확립하고 노동법 개정을 통해 노동력의 가치를 단순 생산요소를 넘어 혁신을 이끄는 인적자본으로 키우게 되면 노동이동이 촉진되고 취약계층의 일자리와 소득은 올라갑니다. 여기에 선진화된 노사관행이 노동현장에 자리잡으면 지속 성장이 가능하겠죠. 모두가 윈윈하는 길입니다.”

-노동개혁의 마지막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지금 노동개혁에 대한 지지가 높아 다행이지만 여전히 40∼50년대 미국, 80∼90년대 유럽 등과 비교해 개혁의 절박함은 잘 보이지 않아요. 대통령은 저 멀리 앞서나가는데 당도 정부도 못 따라가는 것 같아요. 국민들도 이대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 박수는 치고 있지만 개혁의 방향에 대한 컨센서스는 아직 모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개혁에 대한 반대는 시대착오적이에요. 영국은 보수당의 대처 뿐 아니라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시절 노동개혁이 가장 활발했어요. 독일에서도 하르츠 개혁을 완수한 슈레더는 사회민주당 골수에요. 노동개혁엔 여도 야도, 진보도 보수도 따로 없습니다.”

△1956년 부산 출생 △경동고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아이오와대 경제학 석·박사 △한국노동연구원 동향분석실장 △대통령 비서실 행정관 △중앙노동위원회 공익위원 △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 위원장 △경사노위 임금근로시간제 개선위원장 △한국노동경제학회장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현)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