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CIO 왕관의 무게를 견뎌라…기대와 우려의 시선

by김대연 기자
2022.12.31 08:00:00

[주간LP동향]
서원주 신임 CIO의 행보 초관심사
취임 첫날 KT·포스코 등 기업 저격
"시대의 흐름 잘 파악해 향후 기대"
VS "투자 전략과 성과에 집중해야"

[이데일리 김대연 기자] 서원주 신임 국민연금 기금이사(기금운용본부장·CIO)의 행보에 기대와 우려의 시선이 공존하고 있다. ‘자본시장 대통령’으로 불리는 국민연금 CIO가 취임 첫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소유 분산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선임 과정에 대한 비판을 쏟아낸 것과 관련, 업계에서는 내부 절차를 뛰어넘은 그의 직관적 발언에 숨겨진 의도가 있을 수 있다며 쓴소리를 냈다. 전 세계적으로 녹록지 않은 시장 환경에서 900조원의 자산을 굴려야 하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수장인 만큼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업계의 이목이 주목될 수밖에 없다.

31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서 CIO가 취임 첫날인 지난 27일 기자간담회에서 KT와 포스코, 금융지주 등 국민연금이 투자한 소유 분산기업의 인사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 것에 대해 자본시장 관계자들이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올해 급격한 금리 인상에 따른 경기 침체 우려가 지속하면서 내년에 후폭풍이 가시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서 CIO가 이를 극복할 대응 방안이나 투자 전략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삼간 채 개별 기업의 지배구조를 공개적으로 저격했기 때문이다.

이번 서 CIO의 간담회 내용은 지난 8일 열린 김태현 국민연금 이사장의 기자회견 발언과 일맥상통했다는 점에서도 이목을 끈다. 국민연금 이사장과 CIO는 공식석상에 함께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드물 정도로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관계다.

하지만 서 CIO는 김 이사장의 발언에 동의를 표하며 개별 소유기업의 CEO 선출 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서 CIO는 이날 간담회에서 “KT나 포스코, 금융지주 등 소유분산 기업들의 CEO가 객관적이고 투명하고 합리적인 기준 및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불공정한 경쟁이나 ‘셀프·황제 연임’ 우려가 해소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서 김 이사장도 새 본부장에게 KT·금융지주 등 소유 분산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당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국민연금은 KT 이사회가 구현모 KT CEO 대표의 연임을 결정하자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경선의 기본 원칙에 부합하지 못한다”며 “앞으로 의결권 행사 등 수탁자 책임활동 이행 과정에서 이런 사항을 충분히 고려할 것”이라며 사실상 반대 의견을 냈다. 국민연금은 지난 9월 말 기준 KT 지분 10.74%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이에 대해 한 운용사 관계자는 “시대의 흐름을 잘 파악했다”며 “CIO라는 막중한 책임감이 부여된 자리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한 중요한 발언으로 해석된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한 기관투자가 관계자는 “국민연금 CIO가 됐으면 시장 상황이 안 좋은 만큼 취임 첫날엔 수익률이나 자산배분과 관련된 견해를 밝혀야 했다”며 “그런데 취임 일성으로 지난번 김 이사장이 한 말을 앵무새처럼 읊고 있는 모습은 다소 실망스러웠다”며 우려를 표했다.

실제로 국민연금의 올해 운용수익률은 계속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 지난 10월까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전체 수익률은 -5.29%로 잠정 집계됐다. 이는 전월인 지난 9월 말 수익률 -7.06%보다는 1.77%포인트 개선된 수치다. 자산별 수익률(금액가중수익률 기준)은 △국내주식 -20.45% △해외주식 -4.84% △국내채권 -8.21% △해외채권 4.74% △대체투자 15.64%로 나타났다. 기금 규모는 지난 10월 말 기준 915조3360억원으로 전월대비 18조7360억원 늘었다.

앞서 안효준 전 CIO는 풍부한 유동성 시대에 힘입어 3년 동안 운용수익률 10%대의 높은 성과 기록하고 지난 10월 퇴임했다. 안 전 CIO는 지난 2018년 10월 취임한 이후 2020년 10월까지 2년 임기를 채운 뒤 1년씩 두 번 연임하며 최장수 CIO 타이틀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서 CIO가 맞이하는 내년 시장은 올해와 비슷하게 경기 침체 우려와 불확실성이 커 자산운용에도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업계에서 서 CIO가 소유분산 기업의 CEO 인사를 직접 거론하기보다 수익률과 투자 성과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고질적인 인력 이탈 문제 등도 서 CIO가 해결해야할 숙제다.

다른 기관투자가 관계자는 “물론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의결권 행사가 필요하다고 보지만, 그 과정에서 CIO가 내부 절차를 건너뛰고 민간 기업 CEO 인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발언을 한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국민연금이 주주로서 공식적으로 주주총회 안건에 반대 의사를 밝히면 되는 일인데, 정부의 입맛대로 소유분산 기업 CEO 인사에 의결권을 행사하지는 않을까 우려를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