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속·불량 규제 양산 막으려면 국회내 입법 품질관리 장치 필요”[만났습니다]①

by조용석 기자
2022.09.13 05:00:01

[만났습니다]김종석 규제개혁위원회 민간위원장
국회·학계 넘나든 규제개혁론자…4번째 규개위 참여
“체감성과 내기 위해 성역화된 덩어리 규제 정비”
“규제개혁해야 외부위기 버텨…전담 차관조직 필요”

“수도권규제나 환경규제와 같은 덩어리규제는 한쪽에서는 ‘정책’으로 불리기도 하고 당위성도 있습니다. 폐지의 관점에서만 접근할 것이 아니라 다른 대안이나 정책을 찾는 노력을 우선해야 합니다. 또 21대 국회에서는 불량규제 양산을 막고 의원들이 국민에게 최고의 입법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라도 규제영향분석이 반드시 도입돼야 합니다.

[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김종석 규제개혁위원장 인터뷰
김종석 신임 규제개혁위원회(규개위) 민간위원장은 최근 서울 중구 이데일리 본사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규개위는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8년 행정규제기본법에 따라 설립된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 기구로, 김 위원장은 국무총리와 함께 공동위원장을 맡는다. 규개위와 인연이 깊은 그는 김대중(DJ),노무현, 박근혜 정부까지 3차례 민간위원으로 참여한 데 이어, 이번엔 위원장직을 수행해 규개위를 이끈다.

경제학자이자 20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 위원장은 그동안 국회와 학계 정부를 넘나들며 평생 규제개선 과제를 풀어온 이다. 그가 국회에 입성한 이후 1호로 발의한 법안 역시 중요규제에 해당하는 의원입법의 경우 규제영향분석을 받도록 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이었다. 그가 민간위원장으로 임명됐을 때 많은 이들이 ‘적임자’라고 고개를 끄덕인 것도 이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어려운 규제개선 과제일수록 ‘폐지 또는 존속’처럼 흑백으로 결론낼 것이 아니라, 규제의 목적을 살리면서도 관련자 다수가 만족하는 대안을 찾을 것을 주문했다. 최근 논란이 된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 역시 이같은 접근을 통해 해법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또 의원입법의 규제영향분석 도입에 대해서는 “정세균 전 총리도 국회 시정연설에서 요청했다”며 21대 국회에서는 반드시 입법화 되길 바랐다.

그는 “규제경제학을 전공한 학자로서 30년 가까이 정부 규제개혁 작업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는데, 대한민국 기업환경이나 규제품질은 여전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해 책임을 느낀다”며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 모두 규제개혁에 대한 의지가 강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각오를 다졌다.

다음은 김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DJ 정부 때 3만개의 규제를 1만 5000개로 절반 줄였다. 당시는 규개위 정부측 위원장이 고(故) 김종필 국무총리였기 때문에 힘이 셌고, IMF(국제통화기금)의 외부압박도 거세 시장개방형 규제개혁이 진행됐다. 역대 정부 중 가장 규제개혁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은 초반 규제개혁 의지는 있었으나 광우병 파동 촛불시위, 세월호 사태 등으로 관심에서 멀어졌다. 공무원 조직은 대통령의 관심이 없으면 열의가 식게 된다. 노무현, 문재인 전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시장은 불공정하다는 인식이 있어 규제를 푼다는 것에 매우 소극적이었다.

△맞다. 앞으로 가시적 체감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성역화된 덩어리 규제를 정비해야 한다. 수도권규제, 환경규제, 금산분리, 원격의료, 모빌리티, 산업안전 규제 등이 대표적 덩어리 규제다. 다만 이런 규제는 ‘정책’으로 불리기도 하고 정당한 목적도 있어 전면 폐지가 능사가 아니다. 다른 대안정책 수단을 모색해야 하고, 소통·타협하고 절충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진영논리나 떼쓰기가 아닌 과학과 증거, 데이터에 기반해 합리적으로 타협하는 전통이 필요하다.

△대표적으로 중대재해처벌법과 최저임금제도가 그렇다. 비현실적인 기준과 절차를 요구하거나 이를 집행할 의사나 능력도 없으면서 명분과 당위성만으로 도입됐다. 최저임금제도만 해도 전체 근로자의 15%가 최저임금 이하를 받고 있다. 불량규제다. 이상론에 치우쳐 규제기준을 올려버리니 점점 감당하기 어려운 선의의 법범자들이 생기는 거다. 잘 지킬 수 있는 최소규제를 만들어야 규제 입법취지도 제대로 확보된다.

△중요하고 어려운 규제일수록 조심스럽고 지루하게 풀어야 한다. 피해를 보는 집단이 강하게 저항할 때 일방적으로 밀어 붙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의무휴업 규제 역시 푼다 안푼다 양자택일이 접근하기 보다는 소비자와 재래시장 모두에게 이득이 되고, 모두가 동의하는 윈윈(WIN-WIN) 해법을 찾아야 한다. 지역에 따라 소상공인, 재래시장이 요구하는 것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지역별로 차별화하는 방안도 고민할 수 있다.





△신설되거나 강화되는 규제의 80~90%는 의원이 만든다. 20대 국회의원 당시 국민 부담이 100억원 이상 또는 규제 대상자 100만명 이상인 중요규제의 의원입법은 규제영향분석을 받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으나 결국은 임기만료로 폐기 됐다.(행정부는 규제를 신설하거나 강화할 때 반드시 규제영향분석을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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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국민을 위해 ‘법’이라는 상품을 만드는 제조업자라고 생각해보자. 국회가 법을 만들 때 품질 관리를 위해 규제영향분석을 받도록 하는 것은 국회의원이 일을 더 잘 하도록 돕는 것인데 이게 왜 입법권 침해인가. 삼성전자도 휴대폰을 만들 때 품질관리를 회사에서 직접 하지 않나. 규제영향분석을 입법권 침해라고 보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국회의 본래 기능을 더 잘하겠다는 서비스 정신으로 생각해야 한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0년 7월 제정법률안 등 주요법안은 입법영향 분석보고서 제출을 의무화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도 2020년 8월 주요규제를 포함하는 의원입법은 규제영향분석서를 함께 제출토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정세균 전 국무총리도 2020년 6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의원발의 규제법안의 사전규제심사 도입을 요청하기도 했다. 여야 모두 공감대가 있다. 나도 뒤에서 충분히 서포트하고 싶다.

△규제관리는 저수지 수질관리와 똑같다. 한번 하고 끝이 아니라 끊임없이 들어오는 나쁜 규제를 막고, 내부에서 썩어가는 규제를 내보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규제개혁에 대한 전문성을 가진 상근 공무원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총리실 산하에는 규제조정실장(고위공무원 가급)을 정점으로 아래 국·과장이 있으나 모두 규제개혁 전담인원이 아닌 순환보직이다. 규제개혁의 전문성과 의지를 축적하기가 어려운 시스템이다. 규제개혁을 전담하는 차관급 조직을 만들고 내부에서 순환하며 전문성을 키우는 승진트랙을 만들어야 한다.

△현재 한국의 경제적 위기는 외부에서 왔다. 코로나19로 인한 서플라이 체인 붕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곡물가격 상승 등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다만 증가된 외부부담을 내부의 비효율과 낭비를 줄여 상쇄할 수 있다. 규제혁신을 통해 생산성을 10% 올리면 원자재 값이 10% 오른 상승요인을 없앨 수 있지 않나. 규제개혁을 통해 비효율과 낭비 요인을 줄이는 것으로도 충분히 물가 안정 효과가 있고 일자리 창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1955년 서울 출생 △경기고 △서울대 경제학 학사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 석·박사 △미국 다트머스대 교수 △홍익대 경영학부 교수 △한국규제학회장 △규제개혁위원회 민간위원(3회)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여의도연구원장 △20대 국회의원(비례대표) △한국뉴욕주립대 석좌교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