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7년 이후 제작 시기 확인"…모국에서 되살아난 '곽분양행락도'

by이윤정 기자
2022.06.07 05:30:06

시카고미술관 소장품
10개월간 국내서 보존처리 작업
필치 고르고 색채 잘 남아있어
"화풍·구도 왕실 장식회화와 흡사"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조선 후기 병풍 ‘곽분양행락도’의 그림 뒤에 겹겹이 덧댄 배접지(표지에 덧붙인 종이)를 뜯어보니 ‘증산현갑자식남정안’(1864)과 ‘정묘사월군색소식’(1867)의 일부였다. ‘증산현갑자식남정안’은 평안남도 증산현에 거주하는 남정들의 군역을 조사한 호구 단자로 품관, 성명, 나이, 출생년 등이 수록된 지방 공식문서다. 1860년대 행정 문서가 배접지로 활용됐다는 사실을 통해 ‘곽분양행락도’의 제작 시기가 1867년 이후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미국 시카고미술관이 소장한 조선 후기 병풍 ‘곽분양행락도’(사진=국외소재문화재재단).
80년 이상 미국 시카고미술관 수장고에 보관돼 있던 ‘곽분양행락도’가 모국에서 새 얼굴을 찾았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보존처리 작업을 통해 색이 바랜 화면은 클리닝을 거쳤고, 벌레 먹은 부분은 수작업으로 꼼꼼히 메웠다. 병풍 옆면의 금속 장식인 장석도 당시 아연, 구리 등의 함량 비율대로 다시 만들어 붙였다. 작업 진행 과정에서 1880년 이후 병풍 하부 손상 부분을 한 차례 수리한 사실도 찾아냈다.

약 10개월의 보존 처리 작업을 진두지휘한 박지선 용인대 문화재학과 교수는 “국외 소재 문화재의 경우 수리를 자주 하지 않아 오히려 원형 그대로 유지된 경우가 많다”며 “의궤 등의 기록을 토대로 조선 후기 쓰였던 재료를 최대한 그대로 사용해 복원했다”고 설명했다.

‘곽분양행락도’는 19세기 후반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8폭 병풍이다. 크기는 가로 430.8㎝, 세로 187.1㎝로 중국에서 근무했던 변호사 윌리엄 캘훈(1848∼1916)의 유족이 1940년 시카고미술관에 기증했다. 중국 당나라 시기에 부귀영화를 누린 무장 곽자의(697∼781)가 호화로운 저택에서 가족과 팔순 잔치를 즐기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다.



곽자의는 ‘안사의 난’을 진압한 명장으로 슬하에 8남 8녀를 두는 등 자손도 번창해 부귀와 무병장수를 상징하는 인물로 여겨졌다. 병풍에 그려진 학, 원앙, 사슴 등이 모두 쌍을 이루고 있는 것은 다산을 기원하는 의미에서다. 조선시대 사대부와 왕실에서는 ‘곽분양행락도’를 만들어 소장하는 것이 유행했으며 혼례 등 잔치 때 장식 용도로 사용됐다.

현재 ‘곽분양행락도’는 국내외에 47점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공개된 병풍은 필치가 고르고 우수하며 색채도 잘 남아 있는 편에 속한다. 누각 안 여인의 뒤에 걸린 ‘그림 속 그림’까지 정교할 정도로 섬세한 필치가 돋보인다.

화면의 전체적인 구도와 색감, 인물 묘법, 각종 장식적 요소를 보면 왕실에서 사용됐다고 짐작할 만큼 격식과 수준을 갖췄다는 평가다. 박 교수는 “연회 장면뿐 아니라 화풍이나 구도가 조선 왕실의 장식회화와 흡사하다”며 “곽자의를 부각하는 대신 여성은 작게 그려 넣는 중국과 달리 화폭의 절반 가까이 여성을 그리는 데 할애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한국식 곽분양행락도’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병풍은 6월 13일 미국으로 돌아가며 7월 2일부터 9월 25일까지 시카고미술관 한국실에서 만나볼 수 있다.

‘곽분양행락도’에서 주인공 곽자의가 80세 생일잔치를 맞아 후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세부 모습(사진=국외소재문화재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