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스톰 삼성-현대차]'빨리빨리' 방식 깨고 '기득권 안주' 문화 버려야

by김혜미 기자
2016.10.17 04:00:00

삼성전자, 존슨앤드존슨 배워라
납품사 검수 강화 등 시스템 정비를
현대차, 도요타처럼 일어서라
낡은 조직·노조의 파업 관행 개선을

[이데일리 김혜미 임성영 기자] ‘갤럭시 노트7과 YF쏘나타’. 한국을 대표하는 2대 기업인 삼성전자(005930)와 현대자동차(005380)가 동시에 맞닥뜨린 대표 제품의 품질 위기는 그동안 곪아있던 한국 기업들의 총체적인 위기가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 ‘빨리빨리’ 해야 한다는 기업 문화와 변화의 부재가 품질 관리 문제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하지만 이들 기업의 사례는 한국 사회 전반의 변화를 요구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순히 두 기업의 문제만이 아니라 변화를 가로막는 사회 분위기 등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갤럭시 노트7 단종 사례를 두고 위기 경영의 성공사례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은 지난 1982년 타이레놀(Tyrenol) 사건이다. 당시 시카고에서는 청산가리를 주입한 타이레놀을 복용한 7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타이레놀 주가는 곤두박질쳤고, 모기업인 존슨 앤 존슨(J&J)은 소비자들에게 해당 제품을 복용하지 말 것을 권하면서 약 1억 달러(한화 약 1134억원)의비용을 들여 3100만여개의 타이레놀 병제품을 모두 수거하고 교환해줬다.

당시 제임스 버크 J&J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미디어에 대응했던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버크 CEO는 투명한 접근방식을 채택하는 것은 물론 제품 판매를 중지하고 이전보다 포장을 강화한 제품을 내놨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J&J의 위기대응 비용 1억 달러를 매출에 대비해 비교하면 삼성전자가 약 35억 달러(약 3조9700억원)의 비용을 들이게 될 것으로 추산하기도 했다.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7 교환 및 환불이 시작된 13일 서울 종로구 LG유플러스 휴대폰 매장에 교환받은 갤럭시노트7 박스들이 쌓여 있다. 교환과 환불은 연말까지 최초 구매한 매장에서 진행되며 살 때 받았던 기어핏2 등 사은품은 반납하지 않아도 된다. 사진=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취해야 할 위기대응 방식도 결국 J&J와 같다고 보고 있다. 뉴욕 소재 기업 컨설팅업체 파크 스트래티지스의 션 킹 부사장은 타이레놀이 소비자 ‘사망’이라는 최악의 경우를 겪었음에도 살아날 수 있었던 것처럼 삼성전자 역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갤럭시 노트7 자체는 위기지만 삼성전자 자체 문제는 아니다”라면서 “삼성전자는 앞으로 배터리 외에 다른 납품업체들의 부품 검수를 강화하는 등의 대책을 마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PR기업인 호프먼 에이전시의 스티브 버크하트 IT팀장은 “삼성전자 제품을 둘러싼 안전 문제가 계속되는 한 기업 이미지에 타격은 불가피하다”면서도 “일단 삼성전자가 안전 문제를 해결했음을 입증하고 나면 기업 이미지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현대차는 지난 2009년 급발진 결함으로 리콜을 추진했던 도요타 자동차의 시장 재기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시 도요타 자동차는 글로벌 시장에서 960만대 리콜을 실시했지만 결함 사실을 은폐하는 등의 대처로 추락했지만, 지속적인 품질 개선 노력으로 이미지 쇄신에 성공했다.



현대차와 관련해서는 대표모델인 YF쏘나타를 둘러싼 위기가 내부적으로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조직 문화와 관행, 외부적으로는 미흡한 현행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품질 하자에 대해 징벌적 보상을 하는 미국과 달리 국내에서는 무상수리를 해 온 관행이 몸에 배어 ‘적당히 해도 괜찮다’는 사고 방식이 자리잡은 탓”이라고 지적했다.

현대차 울산 3공장 생산라인 모습. 현대차 제공
현대차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해외 자동차 업체들이 생존위협에 처해있던 틈을 타 빠르게 사세를 확장했지만 기업 규모의 빠른 확장을 조직이 따르지 못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특히 매년 임금단체협상에서 파업을 관행적으로 거쳐야 하는 후진적 노사관계는 시급히 개선돼야 할 과제로 꼽힌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박사는 “사업 모델은 마켓 리더를 추격할 때와 마켓 리더가 됐을 때가 달라야 하는데 현대차는 여전히 과거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면서 “품질 경영 시스템과 기본 가이드라인 등을 전면적으로 마켓 리더에 맞게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현대차의 위기가 지나치게 대기업에 쏠린 한국의 경제 구조와 오너에 집중된 경영구도 등을 지목하는 시각도 나온다.

삼성전자나 현대차가 그동안 성장 산업에 종사하며 국가 경제에 많이 기여해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신산업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게 했던 사회적 분위기가 이들의 변화를 가로막았을 수 있다. 3세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막중한 책임감을 지고 있는 만큼 경영승계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감도 다시 생각해볼 문제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10년 전부터 신수종 사업에 대한 투자를 적극적으로 했어야 하는데 선언만 해놓고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이들 두 기업은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얻어 성장해왔다는 점에서 수익을 낼 수 있는 사업보다는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투자에 대한 종용이 있었다. 그러다보니 이익을 낼 수 있는 투자를 할 수 없었던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필상 서울대 경영학과 초빙교수는 “해외에서 잘 하고 있는 기업들의 지배구조나 경영문화, 조직구조 등을 연구해서 한국 문화에 맞게 혁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