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남궁 덕 기자
2014.09.26 06:00:00
[남궁 덕 칼럼]10년 전 일이다. 가족과 함께 한강 유람선을 탔는데 주변을 소개하는 선상 방송을 듣고 기가 막혔다. “전방에 보이는 다리는 성수대교입니다. 1994년 붕괴사고가 난 뒤 새로 놓았습니다. 다음엔 동호대교…한남대교….”유람선이라는데 도대체 뭘 유람(遊覽)하라는 건지. 함께 승선했던 구미에서 온 외국인들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순간 기자의 얼굴이 붉어졌다. 왜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관통하는 한강 주변엔 아파트숲만 있을 까. 기자가 그날 자괴감을 느낀 건 바로 한강 유람선을 타기 바로 직전 방문했던 프랑스 세느강에서 받은 강한 인상 때문이다. 세느강 주변엔 에펠탑, 루브르 박물관, 노트르담 성당, 꽁꼬르드 광장 등 명소가 즐비하다. 세느강엔 마치 프랑스 역사가 함께 흐르는 것 같았다.
일주일 전 현대자동차그룹이 10조5500억 원이라는 통큰 배팅으로 서울 삼성동 한전부지를 품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기자는 10여년 전 한강 유람선에서의 ‘충격’이 떠올랐다. 이제서야 한강 변에 우리 시대가 남겨줄 유산이 들어서는구나. “전방에 보이는 건물은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인 현대차의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로 연간 20만 명의 해외 관광객이 다녀갑니다….한국 경제의 압축 성장을 상징하는 건물입니다. ”이런 선상 방송이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현대차는 우리 시대의 유산을 만들겠다는 각오로 신사옥 건립 차원의 GBC건립 계획을 몇 단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한전 본사 부지는 규모(7만9341㎡)가 엄청난 데다 강남 역세권의 한 중심에 있어 다방면으로 활용도가 높다. 특히 잠실 종합운동장까지 이어지는 서울시의 개발계획과 맞물려 있다. GBC 대상부지 주변엔 한국 불교문화의 원형을 체험할 수 있는 봉은사, 글로벌 산업 트렌드를 볼 수 있는 코엑스, 광(狂)적 프로야구 응원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잠실야구장 등이 도보 거리에 있다. 이 지역을 이끌 명실상부한 헤드쿼터가 들어선다는 콘셉트를 갖고 ‘그랜드 플랜’을 짜야 한다. 서울시는 한강 변모의 핵(核) 역할을 하는 현대차 계획에 딴지를 걸면 곤란하다. 인허가 단계에서 ‘갑(甲)질’을 하면서 사업계획을 울퉁불퉁하게 만들면 안된다는 얘기다.
GBC는 벤치마킹 대상인 독일 폭스바겐의 아우토슈타트(Autostadt·자동차도시)를 능가하는 복합공간으로 태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GBC는 100층 짜리 쌍둥이 빌딩도 가능하다는데, 하늘 위에서 한강쪽으로 자동차를 타고 달려 나가는 느낌의 가칭 ‘스카이 드라이브’같은 걸 만들면 어떨까.
현대차는 구미 각국과 일본 자동차메이커들이 군웅할거하던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어 세계 5위로 올라선 압축 성장의 스토리를 갖고있다. 브랜드 가치를 인정받아 차 값도 꾸준히 올라가고 있다. 현대차는 도전과 빠른 추격, 시장 제패 라는 성공 방정식을 만든 ‘한국형 산업혁명’의 한 주역이다. 이 스토리가 담긴 기업상(像)을 한강변에 세운다는 소명의식으로 GBC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면 좋겠다.
이런 동시대적 통찰이 있어야 GBC가 서울시청사, 서울역 같이 우리 시대의 슬픈 자화상 같은 엉뚱한 모습으로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 기욤 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 아래로/ 세느강은 흐르고/우리네 사랑도 흐른다…“처럼 ”GBC 아래로 한강은 흐르고/21세기 코리아의 꿈도 흐르네…“ 이런 절창이 나왔으면 좋으련만. 도시에 문화의 뿌리를 심는 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아닐까. <총괄부국장 겸 산업1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