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ENS 금융사기..."여신심사 기본만 지켰어도…"

by김보리 기자
2014.02.19 06:00:00

[이데일리 김보리 기자] KT ENS 직원과 협력업체들이 연루된 3000억원대 대출 사기는 금융회사의 대출 관련 내부 통제 시스템의 허점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KT ENS 내부 직원 A씨와 조직적으로 가담한 협력업체 관계자들이 여러 금융회사를 돌며 사기행각을 벌였지만 사고 은행의 여신심사 시스템은 문제를 인지하지도 못한 채 거액의 여신을 제공했다.

이번 대출 사기는 해당 금융사의 인재(人災 )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하나은행, 국민은행, 농협은행의 경우 대출 사기 사건에 휘말렸지만, 우리은행, IBK기업은행, 동부화재 등은 ‘심사 대상이 아니다’, ‘위험 요인이 많다’며 대출 불가 결정을 내렸다. 같은 조건에서 사고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은행 내부 통제 시스템의 차이를 보여준다.

사고 은행의 경우 여신 심사 기능이 요식 절차에 지나지 않았음을 그대로 입증했다. 가장 많은 대출을 실행한 하나은행은 여신 절차가 농협이나 국민은행보다 훨씬 간단했다. 하나은행은 심사자격을 갖춘 RM 겸임 지점장의 전결로 투자 및 여신 결정이 이뤄지는 구조로 이번 KT ENS건의 경우 규모가 커 여신심사위원회를 거쳤지만, 농협이나 국민은행이 심사부를 거친 것과 달리 홍대입구역 지점장이 심사까지 도맡았다. 부행장과 임원 등 실무자 7명으로 구성된 여신심사위원회에서도 문제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실사 등은 전혀 고려하지도 않았다.

이번 대출 사건은 여신심사의 기본만 지켰더라도 막을 수 있는 여지가 다분히 많다는 게 업계의 목소리다. 은행들은 대출 시 공시 이외의 정보를 알기 위해서 실사 등을 실시하지만, 이번 대출에서는 공시 정보 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KT ENS 측은 휴대전화 판매 관련으로 대출을 요구했지만 공시 자료를 보면 KT ENS의 휴대전화 판매 관련 매출은 2011년과 2012년 각각 400억원에 불과했다. 지난해 휴대전화 관련 매출이 ‘제로’였다는 사업보고서만 확인했어도 KT ENS의 휴대전화 판매 사업이 큰 매출을 올리기 쉽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 전자방식이 아니어서 수기(手記)로 된 세금계산서 등을 통한 사기대출 위험이 큰 이유도 있다.



이번 대출 사기 사건을 계기로 은행들은 여신심사 기능 강화에 나섰다. 먼저 농협은행은 대출심사의 핵심인 매출채권의 진위여부 확인시스템을 강화키로 했다. 이를 위해 자산담보부 대출을 해줄 때 현장실사 및 담당자 더블체크 등을 여신심사 과정에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이번 ABL대출이 본사가 아닌 영업점에서 이뤄진 만큼 영업점에서 ABL대출의 취급 금지 조치도 고려하고 있다. 대출여부를 부행장 6명이 최종결정하는 여신심사위원회 책임도 강화할 방침이다. 국민은행은 신디케이트론 등 공동 형식으로 대출을 해주는 여신방식 참여를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은행들은 은행원의 윤리 의식 고취 방안도 고민 중에 있다. 한 시중 은행 관계자는 “윤리의식 강화 프로그램을 비정기적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이를 상시화할 수 있는 방안을 고려 중에 있다”면서 “결국 이번 문제도 인재였던 만큼 윤리의식과 여신 관리 교육 등을 강화하는 것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성 없는 구조화 여신 검사도 이번 사건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사건에 연류된 협력업체들은 지난 2008년부터 대출사기를 감행해왔지만, 대형 시중은행들은 이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피해 규모도 저축은행의 3배에 이른다.

통상 여신 심사 관련검사는 여신 대상, 한도, 담보, 대출 절차 등의 적정성을 평가하기 때문에 구조화 여신의 문제점을 간파하기 어려운 것도 문제를 키웠다. 구조화여신의 경우 대출 대상이 중소기업 1곳이 아니라 이들이 모인 SPC라 위험부담이 줄고, 이자 연체도 없어 의심을 피해갈 수 있었다. 담보 역시 대기업 자회사의 매출 채권이라 신뢰도가 높은 편이었다. 은행에서 협력업체들이 왜 이례적으로 SPC를 통해 대출했는지, 은행들이 매출채권 진위 즉 실제 매출이 발생 여부를 확인하지 않으면 서류 상으로는 여신의 문제를 알아채기 어렵기 때문이다.

은행 관계자는 “이번 사기대출 사건은 진짜 법인인감으로 판명된 수기 세금계산서를 통해 대출이 이뤄졌지만 이를 판독할 방법이 없었다”며 “아직 많은 중소기업 대출 거래 등이 수기 세금계약서 등에 의존하고 있어서 제도적 장치 없이는 대출 사기는 얼마든지 재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