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도적적 해이 DIP, 더는 안 된다"
by이준기 기자
2012.08.27 06:16:00
은행권 "살릴 수 있는 데도 경영권 유지해 자구노력 뒷전"
하도급업체 상거래 채권도 동결
사법당국에 문제제기.."내부 검토중" 답변만
[이데일리 이준기 기자] 채권은행인 우리은행이 법원의 오리엔트조선 기업회생계획 인가 결정에 항고한 것은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DIP가 악용되는 선례를 더는 남기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오리엔트조선은 2009년 1월 신용위험평가 결과 B등급을 받고 채권단 자율의 패스트트랙 프로그램(FTP:FastTrack Program)을 통해 경영정상화 작업에 나섰다가 2010년 8월 갑자기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우리은행은 “법정관리 제도를 이용해 부채를 동결하면서도 경영권을 유지하려는 대주주의 부도덕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2006년 시행된 통합도산법에서 채택한 DIP를 활용해 원칙적으로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어 의도적으로 법정관리 행을 선택했다는 얘기다.
통합도산법 시행으로 과거 10년 이상 걸리던 회생절차가 짧아졌고 지난해 3월부터 최소 6개월 내에 법정관리를 졸업할 수 있는 ‘패스트트랙’까지 도입되면서 법정관리를 택하는 기업들은 많아지는 추세다.
실제로 2006년까지만 해도 76건에 불과했던 법정관리 신청이 DIP 도입 직후인 2007년에는 116건으로 늘었고 2008년과 2009년에는 각각 366건, 669건으로 폭증했다. 지난해에만 월드건설 LIG건설 동양건설 범양건영 임관토건 등 5개 건설사가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올해 들어서도 삼환기업 등 5곳이 합세했다.
문제는 ‘경영권 방패막이’로 법을 악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 기존 경영진이 경영권을 유지하다 보니 자구노력은 뒷전으로 밀리고 결국 회생 기회를 놓쳐 파산에 이르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기업회생절차를 밟는 회사 10곳 중 9곳 정도에서 기존 경영자가 관리인으로 선임되고 있다”며 “그러다 보니 구조조정이나 인수·합병(M&A)을 통한 회생
방법은 회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권 채권뿐만 아니라 하도급업체와의 상거래 채권까지 모두 동결된다는 점도 문제다. 은행권 관계자는 “삼환기업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700개에 달하는 하도급업체의 공사대금을 10% 정도만 줘 이들 업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임광토건이 지난 5월 패스트트랙을 적용받아 회생절차 인가를 받은 지 2개월 만에 법정관리를 졸업하는 등 일부 성과도 있었지만, 부작용이 더 크다는 게 금융당국과 금융권의 지적이다.
금융당국과 금융권은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법무부에 법 개정 필요성을 전달했지만, 사법당국은 특별한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사법당국이 이를 영업 다툼으로 보는 것 같다”고 말했고, 사법당국 관계자는 “DIP의 문제점에 대해선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준기 기자 jeke1@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