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당첨, 건강과 부 보장 못한다

by조선일보 기자
2009.01.26 18:26:02

[조선일보 제공] 지난달 한 여성 포털 사이트가 네티즌 2367명을 대상으로 '새해 소원'을 물었더니 응답자의 72%가 로또 당첨을 소원으로 꼽았다고 한다.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유난히 힘든 이번 설에는 인생 역전을 노리며 로또를 사러 가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실제로 로또 판매액은 2003년 이후 매년 10% 이상 줄었지만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닥친 지난해 9월부터는 전년 대비 4%가량 판매액이 늘어나는 등 증가세로 돌아섰다고 한다.

하지만 일주일의 작은 희망을 위해서라면 모를까 지나친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듯하다. 최근 미국과 영국에서 로또 당첨자가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건강한 삶을 살지도 못하고 재정적 안전도 보장 받지 못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프랑스 파리경제대의 앤드류 클락(Clark)과 베네딕트 아푸이(Apouey) 박사팀은 1994년에서 2005년 사이 영국에서 로또에 당첨된 8000명의 설문 조사 결과를 토대로 로또 당첨과 건강 사이의 관계를 분석했다. 부유해지면 건강 상태도 좋아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실제로는 건강이 좋아지는 효과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로또 당첨 이후 흡연과 음주가 늘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클락 박사는 영국의 과학대중지 뉴사이언티스트(Newscientist)지와의 인터뷰에서 “로또 당첨은 신체건강에는 좋지 않았다”며 “파티를 너무 많이 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연구진은 곧 이번 연구결과를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술자리가 많아지면 몸은 축나겠지만 그 많은 당첨금이 어디 갈까. 하지만 미국 플로리다주의 로또 당첨자를 보면 꼭 그렇지는 않았다.



미 캔터키대의 스코트 핸킨스(Hankins) 박사는 1993~2002년 사이 플로리다주에서 5만~15만달러 사이의 고액 로또 당첨자와 1만달러 이하 소액 당첨자의 연도별 재정상태를 분석했다. 예상대로라면 고액 당첨자의 재정상태가 소액 당첨자보다 훨씬 좋아야 한다.

하지만 분석결과는 그 반대였다. 당첨 후 2년 안에는 고액 당첨자가 파산한 비율은 전체 당첨자 평균보다 50%나 낮았다. 하지만 그 후에는 파산율이 높아졌다. 당첨 후 5년 안에는 두 그룹 모두 5%가 파산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첨 후 2년 내 로또 당첨자의 평균 파산율은 2.16%이었다.

물론 대부분의 당첨자는 파산하지 않았다. 하지만 흥청망청 쓰다 보면 아무리 큰 돈도 눈 녹듯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은 확실히 알 수 있다. 실제로 파산한 사람들의 빚은 처음 받았던 당첨금보다 많지 않았다. 분석 결과 파산 당첨자의 당첨금은 평균 6만5000달러로 파산 당시 빚보다 1만달러 이상 많았다. 당첨금을 제대로만 관리했다면 파산에 이르지 않을 수 있었던 것.

연구진은 논문에서 “고액 당첨자일수록 사치에 빠져 재정상태가 악화되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기 쉽다”며 “세금 환급처럼 한 번에 많은 돈을 주는 정책이 꼭 재정적 안전을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미국경제학회(AEA) 정기학술대회에서 발표됐다.

얼마 전 TV에서 로또 당첨 이후 행복이 오기는커녕 이웃이나 친지와 소원해지고 심지어 가족 내부에서도 분열이 오는 불행을 겪은 사람들을 보도하기도 했다. 최근엔 남편의 복권 당첨금 18억원을 자기 명의 계좌에 보관하던 30대 주부가 남편의 반환 요구에 응하지 않고 버티다 구속됐다. 로또 당첨금 19억원을 1년 만에 탕진한 20대는 다시 도둑질을 일삼다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일확천금을 꿈꾸다 ‘로또의 저주’를 받기 보다는 일상의 행복을 느끼며 성실히 살아가는 것이 더 큰 인생의 당첨금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