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조선일보 기자
2005.08.01 07:29:11
[조선일보 제공] 뉴욕 맨해튼 중서부의 첼시 지역에 사는 변호사 벤저민 브래들리는 지난달 은행 대출을 받아 남부 플로리다 휴양지에 방 2개짜리 아파트를 50만달러(5억원)에 샀다. 맨해튼의 집도 모기지 융자(주택담보대출)가 30만달러나 남아 있지만 주택 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고 보고 또 융자를 받아 투자했다. 그는 “집값은 자꾸 오르는데 직접 가볼 시간이 없어서 인터넷과 이메일로 즉석 계약했다”고 말했다.
LA 교외에 사는 토니 귄타 부부는 올 초 아파트를 45만달러에 팔고는 두 건의 대출을 더 받아 63만달러짜리 집으로 이사했다. 맨해튼의 부동산중개업자 데이비드 울프는 그동안 셋방살이를 해 오다 올 들어 맨해튼 북서쪽의 방 2개짜리 연립주택을 80만달러 주고 샀다.
미국 주택가격이 폭등하면서 대대적인 주택투자 붐이 일고 있다. 자기 돈 한 푼도 없이 대출로 새 집을 사는가 하면, 값이 오른 주택을 팔고 전망이 밝은 변두리 지역으로 `옮겨 타는` 사람도 증가추세다.
전미부동산협회(NAR)에 따르면 지난 6월의 기존주택 평균판매가격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4.7% 상승한 21만9000달러를 기록했다. 1980년 11월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부동산 매매건수도 지난달 733만 가구(연간 기준)로 사상 최고치다.
맨해튼의 아파트 가격도 지난 2분기(4~6월) 평균 132만달러를 기록, 1분기에 비해 8.5%, 1년 전에 비해 30%나 급등했다. 1980년대 후반에 서부 샌디에이고의 집을 한 채 팔면 동부 뉴욕주 시러큐스의 집을 두 채 살 수 있었지만, 지금은 여섯 채를 살 수 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니 집값이 폭등하는 뉴욕·LA·샌프란시스코·샌디에이고 등 미국 일부 도시에서는 투기붐마저 불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중개업소에는 무조건 사달라는 매입주문이 끊이지 않고, 건축 허가가 나기도 전에 분양이 끝나는 기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LA 부동산 업자는 “완공 전에 전매(轉賣) 차익을 노리고 팔려는 투기자금이 몰리면서 100만달러가 넘는 아파트가 분양 당일 매진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주택 가격이 폭등하는 이유는 부동산 담보대출(모기지) 금리가 매우 낮기 때문. 30년 모기지 금리는 4년 전 8~9%에 달했으나 지금은 평균 5~6%에 불과하다. 뉴저지주(州) 중개업체 리맥스의 데니스 리 부사장은 “홍콩·동구 이민자가 급증한 5~6년 전에는 임대주택을 구하기 어려웠으나, 지금은 저금리 덕택에 모두 집을 사기 때문에 임대가 나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중 은행들이 경쟁적으로 모기지론의 대출조건을 완화하는 것도 집값 폭등의 한 원인이다. 최근 JP모건 체이스는 20만달러 이하의 주택담보대출에서 소득증명서류 요건을 면제했고, 웰스파고 은행은 주거용 주택에만 적용하던 `이자만 상환(Interest Only) 대출`을 지난달부터 투자용 건물 구입에도 확대했다.
대출조건 완화 덕분에 지난해 최초 주택구입자의 42%, 전체 매입자의 25%가 자기 돈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전액을 대출 받아 집을 샀다. 집값이 자꾸 오르니 일단 돈을 빌려 집부터 사고 보자는 계산이다. 사실상 부동산 투기붐이다.
맨해튼에 살면서 뉴욕 교외에 77만5000달러짜리 집을 산 존 론씨는 “7년 뒤에는 자녀가 대학을 졸업하기 때문에 그때 가서 이 집을 팔아 원금을 갚고 차익은 은퇴자금으로 쓸 생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주택가격이 하락하면 그는 큰 빚을 지게 된다.
이 때문에 미국 금융당국의 고민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앨런 그린스펀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도 최근 의회 청문회에서 “일부 금융기관들의 비정상적인 대출 방식이 주택경기 거품을 부추기고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