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이명철 기자
2023.08.29 05:00:00
외교부장 취임 한달여만…아세안·남아공 등 국제무대 누벼
브릭스 확장 성공하며 시주석 주창하는 ‘다극 외교’ 성과
미국 견제&관계 개선 동시 해결해야…11월 정상회담 관건
[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는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등 6개국을 신규 회원국으로 끌어들이면서 세력을 크게 키웠다. 남아공에서 브릭스 정상회의가 열렸던 지난주, 사실상 브릭스 확장을 주도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주변에는 예리한 눈빛의 왕이 외교부장(외교부 장관)이 항상 함께하고 있었다.
왕이 부장이 다시 취임한 지 한달이 지났다. 중국 외교의 ‘구원투수’로 등장한 그는 시 주석이 주창하는 다자주의를 실천해나갈 적임자라는 평가다. 꼬일 대로 꼬인 미국과의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나갈지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왕이 부장은 지난달 25일 친강 전 장관이 면직된 후 전격 임명됐다. 친강 전 장관은 건강 이상설 등이 퍼지며 자취를 감췄다가 약 반년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왕이 부장은 적극적인 외교 활동에 나섰다. 먼저 취임 직후인 25일(현지시간) 브릭스 고위급 안보 회의가 열리는 남아공 요하네스버그를 찾아 글로벌 사우스(저위도에 위치한 신흥개발국) 협력 강화를 촉구하며 브릭스 확장을 위한 사전 포석을 깔았다.
남중국해를 둘러싼 중국과 미국간 갈등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이달 11~13일에는 싱가포르·말레이시아·캄보디아를 잇따라 방문했다. 동남아 국가들과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이곳에서 점차 커지는 미국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됐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왕이 부장은 순방 과정에서 “미국과 일부 세력은 남중국해에서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킨다”며 “중국은 남중국해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는 데 주도권을 쥘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브릭스가 처음으로 가입국을 확대한 것은 중국의 외교 성과로 볼 수 있다. 중국은 러시아와 함께 특정 세력에 치우치지 않는 다극외교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브릭스 확장을 요구했다. 지금까지는 일부 회원국 반대에 부딪혔지만 이번에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지지까지 받으며 중동과 아프리카 국가들을 브릭스로 품게 됐다.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중국이 거둔 성과는 크게 두가지다. 먼저 국제유가를 통해 전세계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를 같은 경제 블록으로 묶었다. 중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경제 시스템에 대응하기 위해 ‘탈달러화’를 주창하고 있는데 이때 원유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
영향력 확대를 위해 공들이고 있는 아프리카와 연대를 강화한 것도 중국 입장에선 긍정적이다. 아프리카는 중국과 서방국간 주도권 주도권 경쟁이 치열한 지역이다.
브릭스 회의가 열렸던 남아공에서는 중국과 아프리카 정상회담이 개최됐다. 시 주석은 이 자리에서 “중국은 항상 아프리카의 현대화 경로를 지지했고 기꺼이 동반자가 될 용의가 있다”며 “아프리카의 발전과 국제적 지위를 개선을 계속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8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아프리카 순방 성과를 두고 “중국-아프리카 연대와 협력을 위한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하고 포괄적·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발전에 추진력을 불어넣었다”고 평가했다.
왕이 부장 체제에서 1개월 동안 거둔 성과들은 시 주석의 다극 외교를 다지는 데 도움이 됐다는 평가다.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은 “시 주석이 목표하는 다극화된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중국 외교를 견인하는 사람이 왕이 부장”이라고 지목했다.
왕이 부장을 필두로 한 중국 외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미국에 의한 영향력 확대를 차단함과 동시에 미국과의 관계 개선으로 꼽힌다.
실제 왕이 부장은 미국의 수출·투자 제한이나 남중국해 등 현안과 관련해 강한 어조로 미국을 비판하고 있다. 반면 한편에서는 앞으로 있을지 모를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사전 조율을 해야 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올해 11월 미국에서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리는데 이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 주석이 만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 국무부는 지난 1일(현지시간) 양타오 중국 외교부 미대양주국장을 통해 왕이 부장의 미국 방문을 공식 초청했다. 아직 중국의 공식 답변 소식은 없지만 양국간 정상 만남을 앞두고 안건을 미리 결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닛케이신문은 “수출·투자 등 대중 규제에 타격을 주기 때문에 중국에 있어서 미국과 추가 관계 악화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미·중은 가을 정상회담을 모색하고 있고, 왕이 부장은 대미 견제와 관계 개선 모색이라는 복잡한 임무를 졌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