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로드] 15가지 자연산 버섯으로 끓인 탕…해남의 맛
by김명상 기자
2023.03.10 05:00:00
영양 가득한 버섯 15종 넣고 ‘팔팔’
감칠맛 좋고 칼칼함에 절로 해장이
밑반찬 14가지 진수성찬에 감탄만
[이데일리 김명상 기자] “호불호가 확실히 갈리는 곳입니다. 어르신들은 최고라고 엄지를 치켜들지만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심심하다는 반응을 보이더라고요.”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 음식촌에 있는 ‘호남식당’으로 가는 길에 들은 말이다. 호기심이 치솟는 이야기다. 대체 어떤 음식이길래 연령대에 따라 반응이 제각각이란 것인지. 가리는 게 많은 ‘초딩입맛’에 가까운 터라 걱정은 됐지만 건강식이라는 말에 그대로 가봤다.
호남식당은 직접 채취한 자연산 버섯 15가지를 넣어 만든 탕을 선보이고 있다. 아직 ‘어르신’의 대열에 끼고 싶지 않아서인지 맛은 별로 기대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버섯탕의 비주얼을 보고 깜짝 놀랐다. 버섯 종류가 이렇게 많았던가. 팽이버섯, 표고버섯 등 3~4가지나 겨우 떠올리던 무지렁이로서는 넓은 버섯의 세계를 접하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자극적인 맛보다 자연 그대로의 향취를 경험하고 싶은 이들에게 버섯탕은 최고의 요리다. 소고기국 같은 농도의 국물은 짭쪼름한데 감칠맛이 좋다. 진한 국물이 목구멍을 뜨겁게 적시자 다양한 버섯이 뒤섞인 향이 은은한데 절로 입맛을 돌게 한다. 무엇보다 향긋함이 기분을 좋게 해준다. 기대를 하지 않아서 오히려 좋게 느껴진 것은 아니었다. 일행 중 젊은 여성도 있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괜찮다며 감탄사를 터트렸다.
호남식당의 밑반찬은 무척 푸짐하다. 시기에 따라 다르지만 방문한 날에 나온 밑반찬은 14가지였다. 가장 맛있게 먹었던 것은 6년산 더덕을 사용한 더덕장아찌. 이외에도 도라지, 죽순, 고사리, 굴젓, 해파리무침 등이 있어서 한 젓가락씩 집어 먹다 보면 밥 한 공기가 금세 사라진다.
반찬에 곁들여 버섯탕 국물을 몇 번 더 마시니 칼칼했다. 술을 먹지 않았으나 해장이 되는 듯한 묘한 기분이다. 걸쭉한 탕수육 소스에 물을 좀 부은 듯한 착각마저 드는 진한 국물은 버섯 외에 한우, 고추, 소금, 양파만 넣고 끓인 것이다.
| 두륜산에서 자연산 버섯을 직접 따는 모습을 찍은 사진. 식당 내에 전시돼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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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산 버섯으로만 만든다고 하니 재료 구하기가 힘들 것 같았다. 지나가는 주인분께 어쩌다 버섯탕을 만들게 됐는지 묻자 “먹고 살려고”라는 말이 돌아온다. “돈이 없어서 두륜산에서 버섯 따서 팔기 시작한 게 40년이 넘었어. 전부 산에 올라가서 직접 따는 거지. 새벽부터 산을 가는데 많으면 다섯 번도 더 갔다 내려와. 당연히 힘들지. 그러니 자연 버섯탕집 찾기가 어렵고. 언젠가 방송국 기자가 버섯 따는 걸 보고 싶다고 해서 같이 나섰는데 산을 가던 중 힘들다고 퍼지더라니까.”
호남식당의 간판 메뉴는 능이버섯탕인데 12만원으로 좀 비싼 편이다. 능이버섯은 항암효과에 좋다고 알려져있다. 인공 재배가 어려운 능이버섯은 두륜산에 풍부했지만 점점 구하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예전에는 능이버섯이 많았는데 지금은 일 년에 50㎏도 안 나와. 날씨 때문인가 싶어. 자연산 버섯을 구하기가 점점 힘들어지는데 앞으로 계속 주문을 받을 수 있을까 모르겠네. 그래도 계속할 거야. 사실 원래 무릎이 안 좋았는데 하도 산을 타서 그런지 수술도 안 하고 나아버렸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