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성수 기자
2023.03.09 05:00:00
[정부 입김 커진 국민연금]
주주대표소송 권한 수책위로 일원화, 결론 못 내려
"소송남발·책임회피 우려" vs "1년 1회 이상 어려워"
[이데일리 김성수 기자] 국민연금공단의 주주대표소송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활활’ 타오를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이 주주대표소송 개시 결정 권한을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수책위)로 일원화할지 여부를 결론 맺지 못하고 다시금 논의가 보류돼서다.
주주대표소송이란 대주주나 경영진이 회사에 손실을 끼쳤을 때 회사가 소송을 제기하지 않으면 주주가 대신 청구하는 제도다. 재계는 수책위가 주주대표소송 권한을 가지면 정치·여론에 의해 소송이 남발될 것을 우려하는 반면 이같은 우려가 지나치다는 보는 시각도 있다.
8일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전날 열린 2023년도 제1차 기금운용위원회(기금위)는 주주대표소송 결정 주체를 수책위로 일원하는 안건을 수탁자책임활동 지침 개정(안)에 포함시키지 못했다.
수책위는 기금위 산하 기구다. 국민연금기금이 보유한 상장주식에 대한 주주권 및 의결권 행사와 책임투자 관련 주요 사안을 검토·결정하기 위해 설치됐다.
수책위 인원은 위원장 1명과 위원 8명 등 총 9명으로 구성된다. 수책위 1기가 활동했던 지난 3년간은 상근위원 3명, 비상근위원 6명을 사용자단체, 근로자단체, 지역가입자단체가 각각 3명씩 추천하는 방식이었다. 전날 기금위에서는 이 3곳 단체 추천 인사를 1명씩 줄여서 총 6명으로 제한하고 나머지 3명을 금융·투자전문가로 채우기로 결정했다.
또한 이번 기금위에서는 국민연금의 주주대표소송 권한을 수책위에 일원화할지를 논의 및 결정하려 했었다. 하지만 위원들 간 의견차가 있어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이에 따라 현행대로 대표소송은 기금운용본부 내 투자위원회가 행사하고 ‘예외적 사안’에 한해 수책위가 결정하게끔 됐다.
이 때 ‘예외적 사안’이란 △투자위원회나 기금운용본부장이 의결권 행사 방향을 판단하기 어렵다고 결정한 경우거나 △수책위 위원 3분의 1 이상의 요청이 있는 경우를 말한다.
그런데 앞서 보건복지부는 지난 2021년 12월 24일 주주대표소송 결정 주체를 수책위로 일원화하는 지침 개정안을 상정했다. 국민연금기금이 보유한 주식의 가치가 장기적으로 훼손되지 않으려면 보유 주식에 대해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커졌다.
다만 재계는 주주대표소송 결정 권한이 수책위로 일원화되는 것에 반대한다. 이유는 크게 2가지다. 우선 기업 경영을 좌우할 수 있는 주주대표 소송이 정치·사회적 이해관계나 여론에 따라 움직이면서 남발될 수 있다는 우려다.
수책위 구성원 중에는 노동·시민사회단체 추천 위원도 포함돼 있다. 이에 주주대표소송이 정치적으로 활용될 소지가 있다는 의견이다. 또한 수책위는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비상설 기구라서 소송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이유도 있다.
기금운용본부는 내부 투자위원회 등을 통해 소송이 타당한지, 향후 투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다각도로 분석한다. 소송 결과에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이에 재계는 현행처럼 기금운용본부에서 주주대표소송 여부를 결정하고 예외적인 사안만 수책위에 맡기면 된다고 주장한다.
국민연금과 같은 거대한 기관투자자가 주주대표소송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경우 경영진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 자산규모는 약 890조원에 달해 세계 3대 연기금에 속한다. 또한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국내 회사는 313곳에 이른다.
국내에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하려면 상장회사의 소수주주가 총 발행주식의 0.01%를 6개월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사실상 한국 주요 기업 대부분이 주주대표소송 영향권에 들어가는 셈이다. 실제로 국민연금 수책위로부터 기업가치 훼손 사건 등에 대한 사실관계를 묻는 주주서한을 받은 기업은 삼성그룹 계열사, 현대자동차, 현대제철, 롯데하이마트 등 20여곳으로 전해졌다.
다만 소송이 남발될 것이라는 재계의 우려가 과도하다는 의견도 있다. 주주대표소송은 해당 기업 경영진이 회사에 끼친 손해를 책임지게 하기 위해 국민연금이 다른 주주들을 대표해서 제기하는 것인 만큼 1년에 1건 이상 나오기 어려운 구조라는 이유에서다. 기금위에서 주주대표소송 권한을 놓고 명확한 결론이 나오기 전까지는 이같은 논란이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대표소송에 이기면 국민연금이 돈을 받는 게 아니라 그 임원이 저지른 손해에 대해 기업이 배상받는 구조”라며 “실질적으로 국민연금의 대표소송 회수가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재계 측 우려가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