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민 앞에 드러난 총체적 부실...경찰, 존재 이유 뭔가

by논설 위원
2022.11.08 05:00:00

경찰이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 사전 대비도, 현장 대응도 제대로 하지 못한 데 그치지 않고 사후 증거 인멸까지 시도한 정황이 다수 드러났다. 이태원을 관할하는 서울 용산경찰서의 정보과에선 참사 이전에 안전사고 가능성을 경고한 내부 보고서가 참사 이후에 과장 주도로 삭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청 특별수사본부는 용산서 정보과 과장과 계장의 보고서 삭제 지시 또는 회유 혐의를 조사하고 있다.

담당 정보관은 이태원에 대규모 인파가 몰려 안전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으니 별도의 경찰 인력 지원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포함된 보고서를 정보계장을 거쳐 정보과장에게 올렸다고 한다. 하지만 과장은 인력 지원 관련 부분을 빼고 나머지만 내부망에 올리도록 했다. 이후 156명이 압사하는 참사가 일어나자 정보과장과 정보계장이 담당 정보관에게 인력 지원 관련 부분이 들어있는 보고서 원본을 삭제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범죄조직도 아닌 경찰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니 탄식을 금할 수 없다.



경찰 지휘부의 무사안일은 더 개탄스럽다.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은 참사 발생 후 관용차를 타고 현장에서 도보로 10분 거리 앞에 도착한 뒤 차 안에서 1시간가량을 허비했다. 차에서 내린 후에는 뒷짐을 진 채 천천히 걷는 모습이 CCTV에 잡히기도 했다. 사고 수습을 지휘할 책임자의 자세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이런데도 경찰청 상황보고에는 이 전 서장이 참사 25분 전에 현장에 도착해 지휘를 시작했다고 돼있다. 명백한 허위 보고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지방에서 등산 후 캠핑장에서 잠든 탓에 참사 발생 후 2시간 가까이 뒤에야 보고를 받았다는 것도 어이가 없다.

지도부의 기강이 이 모양이니 현장 대응이 똑바로 될 리 만무다. 무사 안일에 젖은 것도 모자라 보고와 지휘 체계의 난맥상을 고스란히 노출한 이런 경찰에 국민이 어떻게 안전을 믿고 맡길 수 있나. 윤 대통령이 어제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책임을 엄정히 묻겠다”면서 국민에 사과한 후 이 전 서장 등 경찰 4명이 피의자로 입건됐지만 이 정도 조치로 경찰이 정신을 차릴지 의문이다. 경찰은 뼈까지 도려내는 개혁을 통해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된다. 국민의 신뢰를 잃은 경찰은 존재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