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성 달러 매수, '도박판' 따로 없다"…외환당국도 '쏠림 현상' 인정
by이윤화 기자
2022.09.15 05:00:01
원·달러 환율 13년 6개월 만에 1390원대 돌파
환율 급등에 최근 역내외 투기적 매매 영향↑
정부, 외환시장 선진화 추진 "접근성 높일 것"
선진화 만으로 투기 세력 방어될까 의구심도
[이데일리 이윤화 기자] 원·달러 환율이 1400원 턱밑까지 치솟은 가운데 외환당국은 환율 급등(원화 절하)에 달러 투기 매매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당국의 경고도 ‘무지성’ 달러 매수 분위기로 쏠린 외환시장 분위기를 바꾸진 못하는 분위기다. 정부는 외환시장 선진화 추진 등을 통해 투기세력의 영향을 최소화한다는 입장이지만, 시장에선 실효성이 있을지 두고 봐야 한다는 반응이다.
14일 외환시장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9월들어 단 8거래일 만에 50원 이상 오를 정도로 상승 속도가 가팔랐다. 원·달러 환율은 이날도 미국의 긴축 공포를 재료로 장중 고가 기준 1395.5원까지 급등해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1390원대를 뚫고 올라섰다. 종가 기준으로도 전일(1373.6원) 대비 17.3원 오른 1390.9원에 마감했다.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환율 급등에 대해 미국의 통화긴축에 따른 달러화 강세 영향도 있지만, 달러 투기 매매 세력에 의해 과도하게 낙폭이 커지는 측면도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외환시장 관계자는 “그야말로 (달러 매수에 몰린) 도박판”이라면서 “투기 매수, 쏠림 현상 없이 이렇게 가파른 원화 추락은 힘들다”고 말했다.
외환당국에서도 투기적 매매에 따른 쏠림 현상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투기적 매매 수요를 정확히 구분해내긴 어렵지만, 모니터링을 하다보면 외환시장 내 쏠림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면서 “최근 그런(투기 성향의 매매) 움직임이 더 확대된 것은 맞다”고 말했다.
당국은 역내외 투기 매매 현상에 대한 경고 수위를 높이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글로벌 달러 강세 등 대외 여건에 편승해 역외 투기적 거래가 확대될 가능성에 대해 관계기관 간 긴밀한 공조를 통해 경각심을 갖고 모니터링을 강화해 나가겠다”면서 ‘역외 투기적 거래’를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지난 8일엔 이상형 한은 부총재보가 “원·달러 환율은 달러화 강세 영향으로 상승하는 게 기조적 흐름이지만 현재 일부 달러 쏠림현상도 나타나고 있다고 판단한다”면서 “달러 쏠림이 확실하다고 판단되면 시장안정을 위한 정책대응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환율 급등세가 이어지면서 시장 동향 점검이나 일회성 개입을 넘어 구체적인 정책 대응이 필요하단 지적이 나오자, 정부에선 외환시장 선진화 카드를 대응책 중 하나로 제시했다. 외환시장 환경 자체를 개선해 원화의 취약성을 보완하려는 것이다. 외환시장 운영시간을 단계적으로 늘려 24시간까지 확대하고, 국내 은행과 증권사 위주로 참여하는 국내 외환시장에 해외 금융기관의 참여를 늘려 특정 투기 세력이 환율 방향성을 좌우할 수 없게 하겠단 방침이다.
다만, 외환시장 선진화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크다. 시장접근성을 높여주는 측면은 긍정적이지만, 투기 매매 자체를 직접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환율 변동성을 키우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단 것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외환시장 내에서) 매매가격의 차이가 예상될 때 이를 이용해서 이익을 얻으려는 투자자들을 적대시하는 방식으로는 문제의 해결이 어렵다”면서 “외환시장 선진화 이슈로 대응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한미 금리 역전이 심화하지 않도록 우리 기준금리를 인상하거나, 금리 역전이 장기화하지 않을 수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