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목판과 만났을 때, 풍경질감이 나무질감 입었을 때

by오현주 기자
2022.01.03 03:30:01

△아트사이드갤러리서 ''겨울 실루엣'' 전 연 작가 임수진
판화로 세상풍경 새기는 작가의 겨울정취
희끗할 점 대신 흐릿한 선 들어간 목판화
선별 이미지에 온기 심고 정서 얹어 찍어

임수진 ‘그녀’(2021), 목판화, 20×30㎝(사진=아트사이드갤러리)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어느 겨울날 전경. 먼지처럼 눈이 내리는 하늘을 한 소녀가 올려다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어쩌면 흔하다 할 이 전경에는 흔치 않은 장치가 있는데, 마땅히 희끗희끗할 점 대신 흐릿흐릿한 선을 넣어 ‘눈’을 표현한 거다. 맞다. 이 풍경에서 도드라진 건 매끈하지 않은 ‘면’에 있다.

작가 임수진(30)은 판화로 세상 풍경을 그려낸다. 겨울 정취 물씬 담은 신작 중 ‘그녀’(Her·2021)는 다색의 수성 목판화 작품. 늘 보던 일상을 새로운 감각과 기법으로 걸러낸 건데. 작가는 대학과 대학원까지 올곧게 판화를 전공하고 실험해 왔다.



주로 파스텔톤의 순한 장면에 서정적인 감성을 적셔내는데. 그 분위기를 위해 작가는 필름카메라로 찍은 현장이나 잡지·영화 스틸컷의 이미지를 선별하고 회화로 쓸 만한 장면을 골라낸단다. 그 위에 때론 온기를, 때론 정서를 심고 얹어 찍어내는데.

예전에는 되레 많았으나 이젠 드문 작업이 돼버린 목판은 작가에겐 기본기이기도 하다. “느낌이 막연하거나 뭔가 있지만 그게 뭔지 모를 때 조각도로 판목을 내고 물감을 칠한다”고 하니. 그렇게 풍경의 질감은 나무의 질감을 만났다. 있는 그대로보다 보고 싶은 그대로를 새겼다는 게 맞을 거다.

서울 종로구 통의동 아트사이드갤러리서 여는 개인전 ‘겨울 실루엣’에서 볼 수 있다. 전시는 15일까지.

임수진 ‘겨울’(2021), 목판화, 30×45㎝(사진=아트사이드갤러리)
임수진 ‘북극의 밤’(Polar Night·2021), 캔버스에 오일, 116.8×91.0㎝(사진=아트사이드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