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로 '감사인 해임·상폐' 해도 제재 못해…투자자 보호수단 필요

by이명철 기자
2019.04.29 05:35:00

中기업, 일정 이견 이유 감사인 해임…감사보고서 못내
외감법, 해임 요건 엄격히 제한하지만 상장규정엔 미비
악의적 사용 시 대응 못해…유사사례 있었지만 넘어가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코스닥 상장사인 이스트아시아홀딩스(900110)(이하 EAH)가 기한 내 감사보고서 제출 여부 불투명으로 상장폐지 위기에 몰렸다. 결산 시기에 외부감사인이 없어 감사보고서를 내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지만 외부감사법과 상장 규정 사이 사각지대에서 발생해 어느 누구도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 지난해에도 비슷한 사례가 나왔던 것으로 알려져 미리 예방할 수 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2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중국기업인 EAH는 기존 외부감사인을 해임한 상황에서 신규 선임이 완료되지 않아 감사보고서를 제출 기한인 이달 22일까지 내지 못했다.

한국거래소 상장 규정에 따르면 외국기업(12월 결산)의 경우 감사보고서를 갖춘 사업보고서 제출 기한은 국내법인보다 30일 늦은 4월말까지다. EAH는 4월 30일 정기주주총회가 예정돼 일주일 전인 22일까지 감사보고서를 제출해야 했다. 감사보고서 미제출은 감사의견 ‘비적정’보다 제재 수위가 더 높다. 제출 기한 10일이 지난 내달 10일까지도 감사보고서를 내지 않으면 즉각 상장폐지 조치되며 이의신청도 불가하다. 회사 입장에서는 약 보름의 기간 동안 새로 감사인을 선임해 감사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상황이다.

회사가 감사인을 해임한 이유는 일정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았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과 업계에 따르면 EAH는 감사인인 신한회계법인에게 사전에 정해놓은 감사 일정 변경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감사인측은 다른 기업 감사 일정의 촉박함 등을 이유로 일정 변경에 난색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회사는 신규 감사인을 선임하려고 했지만 계약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감사인 공백 상태가 발생했다.

감사보고서 제출은 상장 유지 여부와 직결되기 때문에 감사인 존재 자체는 투자자 보호에 있어서도 중요한 사안이다. 이에 외부감사법은 외부감사대상인 회사가 정해진 요건에 의해서만 감사인을 해임할 수 있도록 강력하게 규제했다. 해임 요건은 △공인회계사법(직무제한 등) 위반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직무상 의무 위반 등) 등이다. 감사인을 해임하면 즉시 증권선물위원회에 보고하고 두달 내 새 감사인을 선임해야 한다.

EAH가 자유롭게 감사인을 해임할 수 있던 이유는 법 규제가 아닌 거래소 상장 규정을 따르고 있어서다. 국적이 중국인 EAH는 한국의 외감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대신 한국 증시에 상장했기 때문에 한국거래소의 상장 규정을 준용한다. 규정을 보면 외국기업은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 국제회계기준(IFRS), 미국일반기업회계기준(US-GAAP) 중 하나를 선택 가능하며 규정에 부합하는 외부감사인을 선임토록 하고 있다. 거래소 관계자는 “외감법은 국내 법인만 해당하는 것이고 외국기업은 정관을 통해 상장 규정을 따르도록 하고 있다”며 “제도가 다르긴 하지만 감사·사업보고서 의무 제출 같은 기본적인 사항들은 외감법과 규정이 비슷한 방식으로 운영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국내 기업이 적용 받는 외감법과 달리 상장 규정상에는 외국기업의 감사인 해임에 대해 아무런 제약이 없다는 것이다. 거래소 역시 코스닥 공시·상장관리 해설집을 통해 ‘국내기업은 법에서 정한 경우를 제외하고 외부감사인과 계약 해지가 불가하나 상장외국법인은 자유로운 계약 해지가 가능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때 회사 경영상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을 감안해 수시 공시를 유도하고 있지만 의무 사항은 아니다. 감사인 해임 사안을 공시로 알리지 않더라도 별다른 제재가 없는 것이다.

만약 회사가 고의로 상장폐지를 위해 감사인을 해임하고 감사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마땅한 대응 방안이 없다. 현행 규정상 고의 상장폐지와 관련해 거래소의 별다른 제재 조항은 전무하다. 또 다른 거래소 관계자는 “고의 상장폐지 여부를 단정하기가 매우 어렵다”며 “설사 고의 상장폐지로 투자자가 피해를 입었다고 하더라고 민사 소송 등이 현실적인 대책일 것”이라고 전했다.

애초에 외감법처럼 대안 없는 감사인 해임을 막는 규정이 있었다면 이 같은 혼란을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이미 지난해에 EAH처럼 외국기업이 감사인을 해임했던 사례가 있어 사전에 대비할 시간도 충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금투업계에 따르면 중국기업 C사는 지난해 8월께 반기보고서 감사인인 S회계법인을 해임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감사인으로 W회계법인을 선임하면서 반기보고서는 무리 없이 제출했다. 이 과정에서 감사인 해임이나 선임 등에 대한 별도 공시 등은 없었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상장 규정이 외감법 등 법령들을 상당 부분 차용했는데 이 과정에서 촘촘한 규제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며 “투자자 보호를 위한 법 규제와 자본시장의 글로벌화라는 목표가 상충하면서 틈이 생긴 것”이라고 풀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