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오파문 대해부]어정쩡한 건강기능식품 제도 이대로 괜찮나

by천승현 기자
2015.06.29 03:00:00

건강기능식품 효능보다 광고 효과로 인기제품 교체
대다수 제품 2·3등급 분로 '효능 있을 수도 있음'
3전문가들 "허술한 기능성 부여로 소비자들 혼선 가중"

[이데일리 천승현 기자] 전문가들은 건강기능식품제도의 취지가 변질되면서 소비자들의 혼선만 가중되고 있다고 경고한다.

지난 2003년 건강기능식품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본격적으로 건강기능식품 제도가 시행됐다. 건강기능식품의 안전성 확보 및 품질향상과 건전한 유통·판매를 도모함으로써 국민의 건강증진과 소비자보호에 기여하겠다는 게 건강기능식품법의 도입 취지다. 건강 관련 식품에 대한 무분별한 정보의 범람으로 소비자들이 혼선을 빚지 않도록 정부가 기능성을 인정해준 제품만 건강기능식품으로 인정하겠다는 의도로 출범했다.

명승권 국제암대학원대학교 암관리정책학과 교수는 “정부가 건강기능식품 산업 육성을 위해 불확실한 기능성을 부여하고 소비자들이 건강기능식품을 의약품처럼 신뢰하고 복용하면서 제도 자체의 취지가 변질됐다”고 지적했다.

건강기능식품의 기능성은 근거자료의 정도에 따라 등급이 총 4가지로 구분된다. 맨 윗 등급은 ‘질병 발병 위험 감소 기능’으로 표현 그대로 특정 질병 위험 감소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인정받은 성분이다. 이어 1등급(○○에 도움을 줌), 2등급은 (○○에 도움을 줄 수 있음), 3등급 (○○에 도움을 줄 수 있으나 관련 인체적용시험이 미흡함) 등으로 세분화된다.

현재 기능성을 인정받은 건강기능식품 313개 성분(중복 포함) 대부분은 2·3등급으로 분류됐다. 시중에 팔리는 건강기능식품은 대부분 특정 질병에 도움을 줄 수도 있고,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번에 가짜 원료 문제가 불거진 백수오등복합추출물은 ‘갱년기 여성의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음’ 이라는 2등급 기능성을 받았다. 최근 어린이 키성장 건강기능식품으로 각광받는 황기추출물 등 복합물도 ‘어린이 키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음’이라는 2등급 기능성 원료다. 홍삼, 오메가-3, 유산균 등 대부분의 건강기능식품은 2등급에 해당한다.

이마저도 건강기능식품의 기능성 인증 절차가 엄격하지 않아 근거가 확실치 않은 제품들이 건강기능식품 인증을 받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명 교수는 “200여종의 건강기능식품 중 질병발생 위험감소 기능을 인증받은 성분은 자일리톨, 칼슘, 비타민D 뿐인데 이마저도 임상연구가 신뢰할 수준은 아니다”면서 “의약품처럼 엄격한 수준의 평가를 통해 근거가 부족한 건강기능식품은 퇴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건강기능식품은 영업자가 기능성 및 안전성 자료를 제출하면 식약처가 그 자료를 검토한 후 기능성을 부여한다. 질병발생 위험감소 기능의 경우 해당 건강기능식품과 질병 발생의 위험과의 관계를 표시하는데, 원칙적으로 근거 자료가 과학적으로 인정받을 수준이라고 판단되면 인정한다. 생리기능향상 3등급은 인체의 정상기능이나 생물학적 활동에 특별한 효과가 있어 건강상의 기여나 기능향상 또는 건강유지·개선을 나타냈다고 인정됐을 때 기능성을 부여한다. 이때 건강기능식품 업체 주도로 작성한 연구 한 두 건만으로 기능성을 인증받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식약처가 2등급 인증을 부여해도 소비자들은 건강기능식품을 의약품인 것처럼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상당수 건강기능식품의 판매가 광고 규제의 감시망을 벗어난 방문판매를 통해 이뤄지면서 식약처 기능성만 강조한 무분별한 과대광고에 노출됐다는 시각도 많다.



조정진 한림대동탄성심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정부는 인체 효능 여부를 판단하는 의약품을 제외하고는 불확실한 기능에 대해 평가해서는 안된다”면서 “건강기능식품의 기능성은 충분하지 않은 연구를 근거로 주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보건당국이 근거가 미약한데도 건강기능식품 기능성을 부여하면서 시장 확대를 견인했다는 설명이다. 이에 반해 미국의 경우 국내 건강기능식품과 유사한 식이보충제(Dietary Supplement)가 있는데, 건강기능식품처럼 별도의 분류체계가 아닌 식품의 한 유형으로 분류된다. 식이보충제는 주로 영양소 함량 정보, 건강정보 등을 표시하고 기능성은 제조업체가 자율적으로 표시한다. 우리나라처럼 정부가 기능성을 부여하지 않는 방식이다.

국내 건강기능식품 시장은 정부 인증을 바탕으로 강력한 마케팅을 벌인 결과 건강기능식품 시장은 빠른 속도로 확대됐다.

연도별 국내 건강기능식품 시장 규모(단위: 억원, 자료: 식품의약품안전처)
지난해 국내 건강기능식품 시장 규모는 1조7920억원으로 2009년 1조1600억원보다 54.5% 늘었다. 같은 기간 수입 규모도 2417억원에서 3854억원으로 59.5% 증가했다. 국산 원료 조달이 어렵다고 알려진 오메가-3는 2013년 한해 동안 1423억원어치 수입됐다.

국내에서 생산된 건강기능식품은 대부분 내수 시장을 겨냥했다. 2013년 국내에서 생산된 1조4820억원어치 건강기능식품 중 5.1%만 해외에서 팔렸다.

건강기능식품 제조업체는 2005년 310곳에서 2013년 449곳으로 44.8% 늘었고 수입업체는 1635곳에서 2139곳으로 92.0% 증가했다.

2013년 한해 동안 생산된 건강기능식품 품목 수만 1만4281건에 달했다. 비타민 및 무기질의 종류는 4217건, 홍삼은 2164건, 프로바이오틱스는 1153건이 생산될 정도로 시장은 과열됐다.

건강기능식품 제조업체 및 수입업체 수(자료: 식품의약품안전처)
건강기능식품이 상대적으로 광고가 엄격한 일반의약품 시장을 잠식했다는 시각도 있다. 같은 기간 일반의약품의 생산실적은 2조5233억원에서 2조3717억원으로 감소세를 나타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지만 유독 일반의약품 시장은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는 셈이다.

제약사 한 관계자는 “임상연구를 통해 효능과 안전성을 인정받은 일반의약품은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소비자들이 외면하지만 건강기능식품은 효능 뿐만 아니라 가격도 거품이 있는데도 광고를 통해 무분별하게 판매가 이뤄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백수오 사건을 계기로 원료 관리 강화 뿐만 아니라 허위과대광고에 대한 단속도 강화할 계획이다”면서 “건강기능식품 등급 개편을 포함해 건강기능식품 제도 전반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개선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