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예전의 전라도가 아니랑께"…격전지 된 순천·곡성

by정다슬 기자
2014.07.25 06:01:00

[전남 순천·곡성 =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예전의 전라도가 아니랑께”

순천에서 20년째 택시기사를 하는 김승완(65)씨는 최근 분위기를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이번 7·30 순천 재선거에서 이정현 새누리당 후보를 뽑겠다는 이가 꽤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아무래도 여기가 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의 전신) 텃밭이니깐 ‘그래도 서갑원’하는 분도 있지만, 난 그 얘기가 나온다는 자체가 참 신통방통해”라고 덧붙였다.

지난 22일 순천 아랫장에 이정현 새누리당 후보와 서갑원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의 현수막이 걸려있다
지난 22일, 선거를 약 일주일 앞두고 찾은 순천에 부는 바람이 심상찮다. 아랫장에서 열린 이 후보의 유세장에는 이를 보기 위한 사람들이 50여명 정도 모였다. 빨간 조끼를 입은 이 후보가 “저 이정현과 순천시민 여러분, 우리가 순천을 바꿉시다”라고 목소리를 높이자, “옳소”하는 함성과 함께 박수가 울려퍼졌다.

이 후보의 유세가 끝나자마자 뒤에 있던 서갑원 새정치연합 후보의 유세차에서 응원가가 울려퍼졌다. ‘나성에 가면’을 개사한 “아이들의 생명을 포기한 무능정권, 곡성·순천 주민들이 심판해줘요”라는 노래에 맞춰 상인들이 어깨춤을 췄다.

순천·곡성에서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은 지난 6·4지방선거에서 보여줬던 여야의 모습을 맞바꿔 연출했다.

△이정현후보캠프 제공
이 후보는 국회의원들의 의원직 상실로 6년 동안 선거가 4차례 이뤄졌다고 하면서 ‘심판론’을 강조했다. 서 후보가 지난 2011년 정치자금법으로 의원직이 상실해 보선을 하게 한 원인 중 하나라는 점도 중요 공략 포인트였다.

이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는 이용철(40) 씨는 “지역민을 위해서 뽑아놓은 사람들이 다 전과자라 순천민들 마음이 보통 어수선한 게 아니다”라면서 “지금 시장도 유치장 다녀온 사람인데 국회의원까지 그러면 어찌되겠냐면서 바꾸자고 말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이 후보가 “집권여당 인사로서 지역에 예산을 폭탄처럼 투하하겠다”고 공언하는 가운데, 이번 재선 의원직 임기가 1년 8개월에 불과하다는 것 역시 순천·곡성 주민들의 마음을 일부 가볍게하는 듯했다. 상인 서경래(58)씨는 “이 후보가 추진력이 더 좋은 것 같다”며 “이 후보가 잘못하면 (2016년 총선에서) 바꾸면 되잖나”고 말했다. 김 씨도 “자식가진 여성분들이 아무래도 의대 유치나 대기업 일자리 창출같은 이 후보의 공약에 솔깃한 것 같더라”고 민심을 전했다.



한 현지기자는 이같은 ‘변화의 조짐’에 대해 “‘사통팔달’ 순천은 외지인들의 비율도 높고 지역주민의 연령대도 낮다”면서 “‘묻지마 2번’ 호남정서가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지난 18대 국회에서 재선을 통해 입성한 김선동 통합진보당 전 의원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민주당 텃밭’이라는 인식도 과거에 비해 희미해졌다는 분석도 나왔다.

△서갑원후보캠프 제공
반면, 서 후보는 “2016년 정권 교체를 위해서는 순천·곡성을 지켜야 한다”며 읍소론을 펼쳤다. 노무현 대통령 비서관 출신인 서 후보는 박근혜정부 들어 호남 출신들이 보직에 한 명도 없다고 강조하며 “정권을 교체해 우리 전라도 사람들이 기펴고 살게 하겠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순천시민들에게 익숙한 인물은 서 후보였다. 아랫장에서 만난 장 모(60)씨는 “서 후보가 감옥 간 것은(실제, 서 후보는 징역형이 아닌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MB정부에서 미움받아서 그렇다”며 “서민적이고 인물도 좋다”고 치켜세웠다. 서 후보가 “도와달라”며 유세인사를 돈 순천 동부상설시장에서는 서 후보와 악수를 한 상인이 동료 상인에게 “저렇게 나오면 서갑원 찍어야지~”라고 말을 건네는 것이 들렸다.

세월호 참사, 연이은 인사참사 등 박근혜정부의 실정도 서 후보에게는 호재였다. 순천 한국병원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한 모(50)씨는 “세월호 참사 이전이면 이 후보가 됐을 수도 있는데 이후라서 안된다”면서 “박근혜정부가 이렇게 못하고 있는데 어떻게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되냐”면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요동치는 순천 민심은 여론조사로도 반영되고 있다. ‘순천투데이’ 조사(17∼20일 1541명 대상,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2.53%포인트)에서 이 후보(45.5%)는 서 후보(35.8%)를 앞섰다. 여수MBC와 순천KBS가 지난 20~21일에 걸쳐 지역주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포인트)에서도 이 후보는 38.4%, 서 후보는 33.7%의 지지율을 얻었다.

서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이정현 돌풍이 거세다는 것을 인정한다. 자신을 새정치연합 당원이라고 밝힌 김 모(55)씨는 “시민들이 외부 사람들에 대한 기대가 높다”며 “이번에 도박이라도 한다는 심정으로 이 후보에게 표를 던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우려했다. 다만 그는 “박빙으로 간다면 우리 서 후보가 이길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후보와 서 후보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면 결국 ‘기호 2번’에게 표를 던지게 돼있다는 것이다.

실제 여론조사의 결과를 뒤집고 결국 새정치연합 후보가 당선된 사례가 적지 않다. 지난 6·4지방선거에서도 여론조사에서는 약세를 보이던 윤장현 새정치연합 후보가 강운태 무소속 후보를 26.1%포인트의 격차로 대승했다. 지난 18대 총선에서 광주 서구을에 출마했던 이 후보는 당시에도 막판까지 여론조사에서는 앞섰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자 12.7%포인트 차로 오병윤 통합진보당 후보에게 패했다.

혹자는 정권재창출을 꿈꾸는 호남사람들의 열망이 결국 야권에 표를 던지게 한다고 말한다. 실제 만나본 순천 시민 중에서는 ‘호남의 안방’에서 여당 후보가 당선된다는 것에 대한 정치적 의미를 생각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이 후보에게 맘이 끌린다면서도 아직 찍을 후보를 고르지 못했다는 금옥녀(47·여)씨는 “부산에서 노무현이 당선된 것만큼 큰일인데, 박근혜의 복심(服心)을 순천에서 당선시킨다는 것에 대해서 거부감이 없겠냐”면서 복잡한 심경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