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되는' 포르쉐코리아 놓고 외국자본끼리 '주도권 다툼'

by김형욱 기자
2013.06.28 06:30:53

獨본사 vs 中화교재벌, 한국법인 신설 놓고 힘겨루기
이권 걸린 양측 줄다리기에 국내 소비자는 '뒷전'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내달 독일 폭스바겐그룹 계열사인 ‘포르쉐 한국법인’의 설립을 앞두고 독일 포르쉐 본사와 중국 화교자본의 이권 다툼이 치열하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독일 포르쉐 본사와 기존 수입·판매사인 스투트가르트 스포츠카는 포르쉐코리아의 사업 주도권을 쥐기 위한 막판 협상을 벌이고 있다.

포르쉐는 2005년 5월 스투트가르트 스포츠카가 판권을 사온 첫해 136대를 판매한 이래 지난해 1516대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같은기간 매출도 102억원에서 1836억원으로 18배 성장했다.

포르쉐는 국내 판매가 급격히 늘어난 2010년을 전후로 국내 직접 진출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후 기존 수입원 스투트가르트 스포츠카와 협상을 벌였으나 지분 구조나 대표이사 선임, 딜러권 등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2년 이상을 법인설립이 지연됐다. 포르쉐코리아가 설립되면 스투트가르트 스포츠카는 기존의 기득권을 잃고 딜러사 중 하나로 전락한다.

최근 스투트가르트 스포츠카는 독일 본사와의 협의 끝에 앞으로 5년간 포르쉐코리아 지분 25%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본사의 양보로 지난해 말 협상 때의 지분율 20%에서 5%포인트 더 늘렸다.

(왼쪽부터) 마이클 베터 스투트가르트 스포츠카 사장, 김근탁 포르쉐코리아 사장 내정자
포르쉐 본사는 포르쉐코리아 대표 선임도 일부 양보했다. 포르쉐는 애초에 본사 인물 파견을 추진했고, 스투트가르트 스포츠카는 마이클 베터 사장 등 자사측 인물을 초대 대표로 내세웠다. 결국 양측 모두 절충을 통해 새 인물로 김근탁 전(前) GM코리아 사장을 내정했다.

‘갑’의 입장이어야 할 포르쉐 본사가 ‘을’ 격인 스투트가르트 스포츠카에 휘둘리는 것은 이 회사가 든든한 화교 자본을 배경으로 뒀기 때문이다. 스투트가르트 스포츠카는 말레이시아 화교 재벌 레이싱홍이 계열 부동산개발사인 애스캠피언(Ascampian Sdn.Bhd.)을 통해 지분 100%를 갖고 있다.

레이싱홍은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대대적으로 독일계 수입차 사업을 벌이고 있는 ‘큰 손’이다.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아시아를 배경으로 포르쉐의 모회사인 폭스바겐을 포함한 여러 독일 자동차그룹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일례로 같은 레이싱홍 계열의 한성자동차는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지분 49%와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지분 20%를 보유하고 있으며, 국내 주요 지역의 판권도 장악했다.

‘을’인 딜러사가 오히려 수입원 지분을 보유한 것은 벤츠코리아가 유일하다. 한성자동차의 지난해 매출 7813억원은 웬만한 수입차 한국법인의 규모를 훌쩍 넘는다.



레이싱홍그룹은 포르쉐 국내 법인 진출 얘기가 나오던 시점부터 포르쉐 국내 사업 주도권을 잡기 위해 물밑 작업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진다.

스투트가르트 스포츠카는 지난해 말부터 인천과 서초, 분당(제2지점) 3개 전시장을 신설했다. 기존 3곳(서울 대치·분당·부산)에 이어 총 6곳이다. 특히 서울·부산의 주요 수입차 판매지역은 모두 장악했다. 업계는 한 지역 내 같은 브랜드 전시장이 들어설 수 없는 점을 이용한 일종의 ‘알박기’로 보고 있다.

이에 맞서 포르쉐 측도 비슷한 시기에 KCC 계열의 딜러사인 아우토슈타트에 대구와 대전의 판권을 넘기며 대응 세력으로 키웠다.

이달 문 연 대구 전시장은 첫달 15대를 파는 등 성과도 냈다. 하지만 스투트가르트 스포츠카가 장악한 주요 대도시 지역에 비하면 미미한 판매실적이다.



양측의 이권 다툼 속에 국내 소비자는 뒷전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소비자들은 포르쉐의 직접 진출 소식이 알려지며 가격 인하나 서비스 개선을 내심 기대했다. 하지만 양측의 이권다툼은 오히려 반대의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

스투트가르트 스포츠카는 지난해말 수입원과 판매딜러사 사이의 수수료 마진을 기존 10%에서 13%로 인상했다. 포르쉐코리아가 출범하면 수입원 지위를 잃고 개별 딜러사가 되기 때문에 미리 수익성을 높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수입·판매를 겸하는 지금으로썬 아무 의미가 없을 뿐더러, ‘갑’인 수입원이 ‘을’인 판매딜러사의 마진을 높여주는 일은 흔치 않다.

이는 결국 소비자 가격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여파로 2011년 이후 유럽산 수입차의 가격은 약 2~3%씩 낮아졌나, 포르쉐의 인하율은 그 절반인 1% 전후에 그쳤다.

실제로 인기 모델인 ‘카이엔’ 가격의 경우 2011년형이 8900만~1억5540만원에서 2013년형 8800만~1억5200만으로 별반 차이가 없다. 같은 기간 유럽산 수입차에 대한 관세는 8%에서 3.2%로 4.8%포인트 줄었다.
올 1월 출시한 포르쉐 파나메라 플래티넘. 포르쉐 제공
소비자 금융 서비스 방식도 아직 확정하지 못했다. 모회사인 폭스바겐그룹을 기반으로 이미 국내에서 사업을 펼치고 있는 폭스바겐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와 손을 잡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예상이다. 하지만 직접 금융사업에 참여하기를 바라는 스투트가르트 스포츠카의 대주주인 레이싱홍 측은 난색을 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레이싱홍은 각국에서 수입차 판매와 부동산·금융을 연계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통해 빠르게 성장해 온 회사다.

사실상 두 조직이 주도권 다툼을 벌이면서 직원 구성에서 불협화음도 감지된다. 포르쉐코리아는 지난해 말 서울 강남지역에 사무소를 갖추고 현재까지 30여명의 직원을 뽑았다. 이 과정에서 이재원 마케팅 이사를 비롯해 애프터서비스·세관부문 등 기존 스투트가르트 스포츠카 임직원이 포르쉐코리아로 합류했다. 조직 안팎에서 양측의 주도권 다툼이 심화될 경우 자칫 포르쉐코리아 설립 자체가 또다시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