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부상하는 `강만수 경질론`..고민하는 청와대

by이진우 기자
2008.10.29 08:00:07

[이데일리 이진우기자]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한 경질 요구가 높아지는 가운데 청와대의 고민도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야당은 물론이고 이제는 여당 내부에서도 시기가 문제일 뿐이라는 목소리가 가감없이 흘러나온다. 급기야는 경실련 등 시민단체까지 강만수 교체를 요구하고 나섰다. 전국민이 '강만수 퇴진'을 외치는 양상이다.

그동안 '제 얼굴에 침뱉기'라는 이유로 언급을 꺼렸던 여당 수뇌부들도 경질이 불가피하지 않겠느냐는 쪽으로 기운 것이 최근 가장 눈에 띄는 변화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이헌재 같은 분을 기용해야 한다'면서 사실상 후임 인선까지 언급하는 뉘앙스의 발언도 했다.

'경제 리더십 강화를 위해 경제 부총리제를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는 임태희 정책위의장의 발언도 현재 경제팀의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평가로 해석된다. 



청와대의 반응도 눈에 띄게 달라지는 분위기다. '전쟁 중에 장수를 바꾸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다'거나 '외부환경에 의해 위기가 초래된 것일 뿐'이라고 반박하던 입장에서 '묵묵부답'이나 '노코멘트'로 바뀌는 기류가 감지된다.

반복적인 지적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강 장관이 사실상 '공공의 적'으로 인식되는 상황에서 청와대가 계속 감싸고 돌 경우 불똥이 청와대로 튈 수도 있다는 판단도 작용한 듯하다.

한 달 전만해도 청와대 관계자들은 강 장관의 경질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지만, 최근에는 "인사권자의 몫"이라거나 "대통령이 결정할 문제"라고 한발 빼는 경우가 많아졌다.

무엇보다 최근 경제위기 속에서 한국이 주가나 환율 면에서 유독 더 흔들리는 원인이 '정부에 대한 시장의 신뢰 부족'이라는 질타가 가장 큰 부담이다. 현 정부의 경제팀이 시장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오히려 끌려다닌다는 지적은 경제팀의 '반장' 역할을 맡은 강만수 장관을 향한 화살로 날아들고 있다. 



미국발 경제위기에 대처하는 과정에서도 강만수 경제팀은 점수를 크게 깎아먹었다. 은행들에 대한 정부의 지급보증이나 금리인하 등 중요한 정책카드를 꺼내든 시점이 늘 다른 나라들보다 늦었다. 물론 그 원인을 따져보면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나 박병원 경제수석 등 주요 경제 포스트들과의 의견조율에 시간이 걸린 탓도 크지만 어쨌든 경제팀의 총 책임자인 강만수 장관이 져야할 몫이 됐다.



다른 나라들은 일사불란하게 정책 카드를 꺼내드는데 한국의 경제팀에는 여전히 불협화음만 들린다는 목소리가 높다.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의 주도세력들이 정부를 만만하게 보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청와대 일각에서는 '억울하다'는 반응도 여전히 나온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강 장관이) 의욕이 앞서다보니 다소 흥분하는 경향이 있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다들 왜 그렇게 일사불란하게 씹어대는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다른 나라들보다 먼저 은행들의 거래를 나라가 보증해주자고 했거나, 다른 나라들보다 먼저 금리를 내리자고 했으면 국회나 한국은행이 오케이했겠냐"면서 한국의 정서나 상황이 한발 앞선 선제 대응을 어렵게 하는 측면도 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이런 해명 역시 '강장관의 리더십이 떨어진다는 반증'이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해외 언론들까지 '리만 브라더스'라며 대통령과 경제수장을 싸잡아 희화화하는 상황으로 번진 것은 청와대의 입장에서 보면 뼈아픈 대목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강만수 장관이 언론의 타깃이 되면서 대통령이 경제문제 책임론에서 다소 물러날 수 있었던 게 사실"이라면서 "강 장관과 대통령이 같이 묶여버리거나 강 장관 경질 여론에 대해 대통령 혼자 버티고 고집한다는 이미지를 주는 건 좋지 않다"고 고민을 드러냈다. 



강만수 장관의 경질 카드를 꺼내기에 앞서 먼저 치워야 할 걸림돌이 많다는 것도 문제다.

우선 강만수 장관이 곽승준 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과 함께 MB노믹스를 설계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강만수 장관의 불명예 퇴진은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부담이다. 청와대 일각에서 '바꾸더라도 위기가 가라앉은 후에 자연스럽게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외생변수로 인해 어려워진 경제상황이지만 어쨌든 분위기를 바꿔보려면 희생양이 필요하다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강 장관이 그 역할을 맡으라는 것 같다"고도 했다.

국회일정도 문제다. 야당이 장관 교체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상황에서 차기 장관이 결정되더라도 청문회 등 거쳐야 할 난관이 많다. 하루하루가 위기인 상황에서 경제수장을 한달씩 공석으로 놔둘수는 없다는 게 가장 큰 고민이다.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것도 고민이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후임 장관 후보로 거론되는 인사들이 있긴 하지만 본인이 검증한 인물을 선호하는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에는 대부분 부합하지 않는다.
 
시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대응하는 시스템이 없다는 지적도 뼈아프게 들린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강만수 장관의 진퇴 문제는 대통령이 결정할 문제겠지만 무엇보다 시장이 요구하는 처방이나 목소리가 청와대로 잘 흘러가고 있는지부터 의심스럽다"면서 "시장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강 장관을 왜 바꿔야 하는지도 잘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