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연애 모두 실패했던 재호에게 간계밥이란…'백수세끼'[툰터뷰]
by김혜미 기자
2024.10.27 08:00:00
네이버웹툰 '백수세끼'의 치즈 작가 인터뷰
백수였던 재호의 성장스토리와 함께 맛보는 음식들
"재호 이야기의 70%는 경험담…'곱창'은 특별한 음식"
"정 대리는 살아움직이는 캐릭터…이젠 알아서 행동"
[이데일리 김혜미 기자] 꽤 괜찮은 대학을 다녔고 캠퍼스 커플(CC)로 알콩달콩 연애까지 했다. 행복한 대학 시절을 보냈지만 졸업 후에는 거듭 취직에 실패한데다 여자친구와도 헤어졌다. 우울한 나날을 보내는 그가 선택한 것은 여자친구와 즐겨 먹었던 반숙 계란프라이를 덮은 김치볶음밥. 한 숟가락 가득 퍼서 입에 담은 김치볶음밥은 너무 맛있어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 네이버웹툰 백수세끼 대표 이미지.(이미지=네이버웹툰) |
|
치즈 작가의 ‘백수세끼’는 주인공 재호의 인간적·사회적 성장과 함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웹툰이다. 백수였던 재호가 여자친구와의 추억을 되새기면서 하나둘 등장한 음식들은 재호와 전 여자친구인 수정이의 사회생활이 진행되며 다채로워진다. 연재 초반부에는 백수인 재호의 경제 사정 때문에 떡볶이나 라면 같은 비교적 저렴한 분식들이 등장했다면, 점차 직장인이 된 재호와 수정이의 경제력을 반영한 소고기 생갈비나 양갈비 같은 음식들로 메뉴도 진화한다. 백수세끼가 수많은 음식툰 중에서도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백수세끼의 묘미는 때론 다 읽고 난 뒤 ‘음식이 등장했었나’ 싶을 정도로 인물의 스토리가 강력하다는 데 있다. 취업에도 연애에도 실패했던 재호가 조금씩 이런 저런 사회에 적응해가면서 보여주는 삶에 대한 태도 변화가 웹툰을 이끌어가는 큰 줄기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일부 독자들이 ‘음식은 그저 끼워팔기 아니냐’라고 하는 데 작가도 일부 동의하고 있다.
지난 7월 이후 휴재에 들어간 치즈 작가를 여전히 무더웠던 9월 말 만났다. 10화에서 수정이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등장했던 김치볶음밥 위의 갈라진 두 개의 계란프라이는 휴재 직전 화에서 온전한 하트 모양으로 되살아났다. 이를 기억해 준 독자들은 ‘이제 부부세끼 연재하시는 거죠?’, ‘결혼세끼 신혼세끼 노년세끼 다양하게 하시죠’ 등 센스있게 제목을 변형한 댓글을 달며 연재 재개를 기다리고 있다.
다음은 일문 일답.
제가 웹툰에 도전할 당시에는 ‘네 글자’로 제목을 지으면 대박 난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당시 인기 있었던 웹툰으로 인생존망, 싸움독학 같은 것들이 있는데요, 그때 작품 제목을 고민하다 불현듯 무한도전에 등장했던 명수세끼가 떠올랐어요. 백수에다 ‘세끼’를 넣으면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으니까 재미도 있고 중의적인 의미이기도 해서 결정했습니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계란과 치즈입니다. 작가명이 치즈인 이유도 그 때문인데요, 사실 초반에 나온 음식들도 다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었어요.
중간 중간에는 제 아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등장시켰는데요, 재호가 수정이의 로망이라고 해서 억지로 곱창을 먹다 뛰쳐나갔던 장면은 제 경험담입니다. 곱창은 처음 먹었을 땐 고무 씹는 것 같고 이상했는데 정말 맛있는 곳에서 먹었더니 괜찮았어요. 곱창은 제게 좀 특별한 음식이기도 한데요, ‘곱창’화를 그리고 나서 네이버 웹툰에서 정식 연재 제안을 받았습니다. 곱창을 현실감있게 잘 그렸다고 주변에서 그러더군요. 웹툰 작가인 아내가 자기 덕분이라고 으쓱해하기도 했습니다.
초반부에 등장한 김치볶음밥이 제 레시피가 들어간 음식이었어요. 제가 음식 전공자는 아니라서 요리실력은 중간 정도인 것 같은데요, 요리를 잘 못하는 사람이 요리를 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치킨스톡을 한 스푼 넣으면 다 해결되는 것 같습니다. 하하.
두바이 초콜릿이나 카이막 같은 음식은 지금 그리지 않으면 나중에는 쓸 수 없는 아이템들이죠. 그런 음식들은 메인 스토리가 중요하지만 음식이 부실해질 때 등장시켜서 균형을 맞추는 편입니다. 음식과 스토리 중에 어떤 것을 먼저 정해두고 하느냐는 그때그때 다릅니다. 예를 들면 간장계란밥 같은 건 백수도 적은 재료로 쉽게 먹을 수 있고 계란 한 판을 다 먹을 때까지 취직하겠다는 다짐을 담은 음식이기에 음식이 중심이었던 일화라고 할 수 있죠.
홀로된 어머니가 아들을 두고 새로 시집을 가서 혼자 남게 된 재호의 가족관계는 지인의 이야기였는데 그 분 성함이 김문세 님이었습니다. 주인공 재호가 다니는 회사 이름이 문세컴퍼니인 이유도 이 때문이죠. 그 분의 자수성가 스토리가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김문세 님은 자수성가한 분이셨는데 제가 백수로 한창 힘들 때 일하면서 웹툰을 준비할 수 있게 해주셨어요. 그 덕에 작가 지망생 시절 입시미술 학원 강사를 하면서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는 사실 재호 이야기의 70%가 제 이야기입니다. 어릴 때 재호가 집에서 혼자 떡만두국을 시켜먹던 이야기도 제 경험담이죠. 어머니께서 당시 보험회사를 다니셨는데 TV 위에 매일 만 원을 두고 나가시면 형이랑 같이 떡만두국을 시켜먹곤 했어요. 그때 너무 먹어서 지금도 떡만두국을 안좋아할 정도입니다. 결혼 준비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도 제 이야기입니다.
정 대리는 문세 컴퍼니 외에는 갈 데 없는 30대 중반의 캐릭터인데 재호와 대립하면 재밌을 것 같았습니다. 사실 정 대리는 아내가 인턴사원으로 일할 때 겪었던 진상들을 총망라해서 만들었어요. 목을 찌른다든가, 질투를 한다던가 하는 것들요. 그래서 초반에 독자님들이 정 대리 빨리 참교육시키자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셨는데 저는 왠지 정이 많이 가는 캐릭터였어요.
데뷔 전에 다른 작가님들이 ‘캐릭터가 알아서 이야기를 만든다, 통제할 수 없는 시기가 온다’는 이야기를 하셨었는데요, 바로 정 대리가 그런 캐릭터 같습니다. 캐릭터성이 강해서 언제부턴가 굳이 설정하지 않아도 알아서 행동하는 느낌이 있어요. 어떤 상황에서 알아서 행동하죠. 정 대리 표정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인데, 사실 제 얼굴 표정을 보고 따라 그리다보니 이제는 제 얼굴을 닮은 듯합니다.
연재기간이 길어지다보니 재호에게도 후임이 생기면 재밌겠다 싶어서 만든 캐릭터가 태진입니다. 사람들이 그냥 욕하는 캐릭터는 너무 뻔한 듯해서 이유가 있는 MZ를 만들어주려고 했어요. 태진이가 전 직장에서 겪었던 일들 때문에 인간관계를 중시하지 않고 일만 하는 캐릭터가 된 거죠.
사랑이는 재호와 초반에 갈등을 일으켰는데, 재호가 회사를 나가게 되면 독자님들이 엄청나게 반발하실 것 같았습니다. 하하… 그래서 사랑이가 도와주는 역할을 해보자고 생각했죠. 그리고 가족이 없는 재호가 사랑이의 등장으로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나가는 환경도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지금 작업 중인데요, 태진이가 위협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수정이네 회사에도 한 명 더 등장하고요.
신혼세끼, 부부세끼 등도 하고 싶은데, 새로운 것으로 하려면 연재를 종료하고 도전만화에 재도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고는 싶은데 고민 중이예요. 특히 결혼은 하기 전에는 몰랐던 부분들이 많은데 단순했던 인간관계는 더 넓어지고 생각할 것들도 더 많아지죠. 이런 것들을 재호와 수정이를 통해 풀어가고 싶고 또 부부세끼나 자식세끼도 해보고 싶습니다.
운동도 하고 여행도 다니고 있는데요. 특히 제주도나 일본에 가서 사진도 찍어오고 평소 먹어볼 수 없었던 것들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휴재 기간이 생각보다 길어질 것 같은데 다양한 음식을 위한 빌드업이라고 생각해주시고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중간 중간 인스타툰을 올릴 예정인데요, 그걸 보면서 기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