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2시간제 유연화, 설문조사로는 한계…사회적 대화 나서라"
by최정훈 기자
2023.09.19 05:00:00
[만났습니다]이채필 일자리연대 상임대표①
“근로시간제도 개편 설문조사, 소홀했던 국민의견 수렴 우회로”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주 연장근로 10시간 등 실익 있어야”
“노동계, 김문수 경사노위 위원장 사퇴 요구 번지수 잘못 찾아”
“노조 회계 투명성 당당하면, 국민에 공개 꺼릴 이유 없어”
[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근로시간 제도 개편을 설문조사만으로 완성도를 높이는 건 한계가 있습니다. 이번 설문조사도 그동안 소홀히 했던 국민적 의견 수렴을 보완하기 위한 하나의 우회로로 보입니다. 차라리 먼저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를 정착시키거나, 1주일 연장근로시간을 10시간으로 줄이는 방안을 고려해야 합니다.”
| 이채필 일자리연대 상임대표(전 고용노동부 장관)이 18일 이데일리TV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사진=이데일리TV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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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필 일자리연대 상임대표는 18일 이데일리TV와의 인터뷰에서 “개혁은 원래 내용도 훌륭해야 하지만, 과정도 관리가 잘되어야 한다”며 이 같이 밝혔다. 이 전 장관은 이명박 정부 시절 고용부 장관을 지냈다. 일자리연대는 노사관계 및 고용창출 관련 학계, 법조계, 노동계, 정부, 언론계 출신 등 전문가 60여 명이 참여하고 있는 시민단체다.
고용부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에 대한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를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앞서 지난 3월 고용부는 개편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개편안에 따라 일주일 최대 69시간까지 근무가 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청년층을 중심으로 ‘과로사조장법’이라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이에 윤석열 대통령은 “주 60시간 근로는 무리”라며 보완지시를 내렸다.
이후 고용부는 입법예고 기간이 끝난 뒤 6~7월 국민 6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그룹별 심층면접(FGI)을 실시했다. 설문은 현재의 주 52시간 제도에 대한 평가, 문제점, 개선 방향 등 세 가지를 중점적으로 진행했다. 설문 결과가 공개된 이후 새로운 개편안은 오는 10월쯤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이어 “그러나 주 69시간 논란으로 몰아서 일하는 것은 되면서, 몰아서 쉬는 건 어려운 것처럼 인식됐고, 노동자들은 과연 우리가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겠냐는 불신도 있었다”며 “그러나 정부는 그 불신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개편안이 정상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노동계가 참여한 사회적 대화가 필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그동안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던 한국노총도 3개월째 대화를 중단한 상태다. 노동계 일부에선 김문수 위원장이 사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대표는 이에 대해 “과거 김문수 위원장의 발언 등을 이유로 사퇴를 요구하는 건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고 생각한다”며 “노조의 불법 행위나 노조 회계 투명성 요구는 고용부를 비롯한 정부 당국의 일이기 때문에 김 위원장의 사퇴를 이유로 사회적 대화를 참여하지 않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또 회계 투명성에 협조하지 않는 노조에 대해 정부가 보조금을 폐지하기로 한 것에 대해 동의하기도 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노동권은 헌법 33조로 굉장히 강하게 보고하고 있고, 보호한다는 건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하는 것이기도 하다”며 “그러려면 노조도 법적인 기준을 다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 대표와 일문일답이다.
△사실 근로시간 단축은 노동운동의 역사라고 할 만큼 굉장히 중요한 과제다. 우리나라에서 1953년에 일주일 법정 근로시간을 48시간으로 시작했고, 2004년에 주 40시간이 됐다. 8시간을 줄이는데 50년 이상 걸린 것.
2018년부터 연장근로 12시간을 포함해 주 52시간으로 줄였고,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탄력적인 조정 장치가 부족했다. 이에 현장에서 적용을 잘할 수 있도록 이번에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주 단위에서 월 단위, 분기 단위, 반기 단위, 연 단위로 늘려서 관리하는 걸 추진했다. 이번 방안은 근로시간의 선택권을 노사 모두에게 주는 것이기도 했다.
△문제는 주 69시간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자는 취지였지만, 몰아서 일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몰아서 쉬는 건 잘 안 되는 것처럼 인식됐다. 사실 이번 개편안은 연장근로시간을 분기나 반기, 연 단위로 바꾸면 월 단위에 비해 근로시간 총량이 90~70%가량 줄어든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이 봤을 땐 과연 우리가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겠느냐는 불신이 싹텄다. 그러나 정부는 그 불신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
△설문조사만으로 개편안 전체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개혁이라는 건 내용도 훌륭해야 하지만, 과정 관리도 잘해야 한다. 그래서 개혁 과정에서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를 잘 수렴하고 전문가들의 논의도 거쳐야 하는 것. 그러나 개편안은 전문가들의 논의만 가지고 정책을 추진했다.
노사입장에서 자기들이 얘기할 기회가 생략된 채 성급하게 결론부터 나왔다. 한 마디로 개혁의 과정 관리가 부족했던 것. 소통을 통해 현실적 대안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잃었다. 이번 설문조사도 그동안 소홀히 했던 국민적인 의견수렴과 이해관계자와의 소통을 보완하기 위한 우회로처럼 보인다.
△근로시간 저축계좌제처럼 바쁠 때는 일한 시간을 모았다가 불경기나 일이 적을 때 활용할 수 있는 장치를 실질적으로 작동하게 해야 한다. 또 사실은 주 12시간 연장근로라는 것이 주 6일 근무 시절 하루에 2시간씩 6일을 상정했던 것. 이제는 주 5일이니까 연장근로시간도 주 10시간으로 줄일 수도 있다.
△김문수 위원장은 워낙 노동운동 경험도 있고 또 정치도 하신 사회 원로다. 그분의 발언을 이유로 사퇴를 요구한다는 것은 번지 수를 잘못 찾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법 집행 과정에서 불법 행위를 한 노조에 대한 공권력의 집행이나 노조 회계 투명성 요구 이런 일들은 고용부를 비롯해서 정부 당국의 일이다.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사위의 임무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노동권은 헌법 33조로 굉장히 강하게 보호하고 있고, 보호한다는 건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려면 노조도 법적인 기준을 다 지켜야 한다. 노조가 자신들 내부에 충분히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다면 국민에게도 자신 있게 공개해야 한다. 세금을 통해 지원과 면세가 되는 조직이 국민에 공개하지 못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1956년 울산 출생 △영남대 행정학과 △서울대 행정학 석사 △행정고시 25회 △고용노동부 장관 △現 고려대 노동대학원 노동복지 정책학과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