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퇴근길 교통대란 뻔해도 집회 허가, 현실 고민해 봤나

by논설 위원
2023.07.13 05:00:00

폭우가 서울을 덮친 10일 저녁 민노총이 광화문 일대 도심에서 총파업 결의대회와 행진을 벌여 퇴근길 시민들이 통행에 큰 불편을 겪었다. 참가자들은 파이낸스센터 앞 인도 약 100m를 점거하고 오후 7시부터 집회를 시작했지만 오후 8시부터는 약 100명이 세종대로 1개 차로와 경복궁 옆 사직로 1개 차로를 역방향으로 점거하며 행진했다. 차량이 많이 몰리는 퇴근 시간대에 차로까지 줄었음을 감안하면 교통 혼잡이 어떠했을지 훤히 짐작할 수 있다.

경찰은 집회에 앞서 퇴근 시간대인 오후 5~8시 부분에 대해 금지 통고를 했다고 한다. 그러자 민노총이 경찰 금지 통고의 효력을 정지해 달라는 신청을 서울행정법원에 냈고, 행정법원은 민노총의 손을 들어줬다. 경찰이 서울 고법에 항고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퇴근 시간대에 상당한 교통 정체가 발생하고 시민들에게 불편을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두 법원이 모두 집회의 자유를 앞세운 것이다. 행정법원 재판부는 경찰이 제출한 교통량 조사 자료 등의 내용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 결정으로 민노총은 14일에도 같은 시간대 집회를 할 수 있어 시민들이 또 교통 대란과 불편을 겪게 됐다.



집회·시위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이다.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는 유엔 자유권규약도 평화적 집회의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헌법상 권리라며 막무가내로 진행하는 민폐 집회·시위 때문에 똑같이 헌법에 보장된 다른 사람의 권리가 침해받는 현실을 우리는 수없이 접하고 있다. 무분별하게 열리는 집회·시위가 쾌적한 생활 환경을 누릴 환경권(헌법 35조)을 침해하고 일상을 망가뜨리는 일이 빈발하고 있는 것이다.

법관윤리강령은 “법관은 사법권을 법과 양심에 따라 엄정하게 행사해 민주적 기본질서와 법치주의를 확립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하는 법관에게 질서와 법치수호 의무를 부여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번 결정은 남에게 피해를 주는 시위와 시민 일상의 자유의 균형을 놓고 법원이 제대로 고민했는지 심각한 의문을 갖게 한다. “법원 앞 서초동 한복판 도로를 막고 집회한다는 것을 상상해 보라”는 한 경찰관의 지적은 법관들이 현실을 모르는 것 같다는 쓴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