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고 건강한 시니어 ‘소비자’ 시대…기업들, 전략 확 바꿔라”[ESF 2023]

by이다원 기자
2023.05.30 05:05:00

이동우 고려대 고령사회연구원 특임교수 인터뷰
韓 베이비부머 퇴직 시대…고령화 가속도
‘고령자’ 아닌 ‘경험·구매력’ 갖춘 고객의 등장
기업들, ‘노인’ 딱지 떼고 마케팅 전략 세워야

[이데일리 이다원 기자]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나이 드는 나라입니다. 앞으로 20년간 매년 100만명에 달하는 은퇴자가 나오고 노인 인구도 늘어날 테죠. 하지만 지금은 전과 달리 젊고 활동적인 노인, 경험과 구매력을 갖춘 고급 소비자들의 시대입니다. 이들을 위한 새로운 경영 전략이 필요합니다.”

제14회 이데일리 전략포럼 연사로 나서는 이동우 고려대 고령사회연구원 특임교수가 이데일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영훈 기자)
이동우 고려대 고령사회연구원 특임교수는 26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며 “경영계가 ‘시니어’(노인)에 대한 생각을 확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다. 이 교수는 “대표적 고령 국가로 꼽히는 일본이 고령 사회가 되기까지 25년 걸렸지만 한국은 20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며 “우리나라가 2~3년 안에 일본 (고령화 속도를) 추월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낮은 출산율에 대한 우려도 있다. 이 교수는 “많은 인구학자가 0명대 출산율은 나오지 않을 것으로 예측했지만 한국은 지난해 합계출산율 0.78명을 기록했다”며 “전 세계적으로 이런 상황에서 출산율이 반등한 사례가 없다”고 짚었다. 단순히 숫자만으로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가 오고 있다는 설명이다.

경제와 산업 분야에서는 저출산·고령화를 피부로 느끼게 된다. 고령 인구가 늘고 젊은 인구가 줄어들면서 일할 사람이 점차 줄어들게 된다. 그럴 수록 기업들은 생산성을 담보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돈 버는 사람이 없으면 돈을 쓸 시장도 자연스레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반면 젊은 세대가 부양해야 할 노인이 많아지니 세금 부담은 커진다.

이 교수는 “통계청에서는 2060년에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43.9%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했다”며 “이제는 국가 경제와 국내총생산(GDP), 생산가능인구, 경제활동인구의 미래 시나리오를 그려야 하는데 암울한 이야기만 나오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경제보다 심각한 문제는 나라가 소멸해가고 있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이 교수는 경제 발전의 주축이던 한국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으로 퇴직하기 시작한 점을 지적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55년부터 1974년까지 20년간 매년 90만~100만명이 태어났다. 이제 산업 현장에서 이들이 본격적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이 교수는 “앞으로 20년 동안 매년 아직 너무나 건강한 이들이 최소 70만명에서 100만명이 은퇴하게 된다”며 “똑똑하고 부지런한 한국인들이 경제 성장에만 몰두하다 보니 (인구 문제에 대한) 미래적 대안을 갖고 준비하지 못했다”는 진단을 내렸다. 아직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 퇴직자가 되면서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변화가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그렇다면 노인 인구가 늘어날수록 한국의 경제·산업 활력은 떨어지게 될까? 이 교수의 답은 ‘아니다’였다. 그는 “시니어, 즉 노인들에 대한 지금까지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는 조언을 내놨다.



연약하고 힘없고 부양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닌 새로운 경제 주체로서의 노인이 떠오르고 있다. 이미 전 세계 60~70대 인구는 의학의 발달과 환경·식습관의 변화로 앞선 세대보다 건강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이른바 액티브(Active·능동적인) 시니어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 교수는 “장년층 기업인들을 만나면 집에 가서 같은 나이 때의 부모님 사진을 보고 누가 더 나이 들어 보이는지를 살펴보라고 한다”며 “십중팔구 지금 사람들이 훨씬 젊다”고 했다.

제14회 이데일리 전략포럼 연사로 나서는 이동우 고려대 고령사회연구원 특임교수가 이데일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영훈 기자)
그럼에도 기업들은 여전히 노인들을 홀로 생활하기 힘든 ‘패시브(Passive·수동적인) 시니어’로 본다. 이 교수는 “기업들은 아직 너무 젊은 65세 이상 사람들을 관습적 노인으로 가정하고 이에 맞는 비즈니스를 하려고 한다”며 “이는 완전히 어긋난 선택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인구 구조 변화의 시대를 맞아 이 교수는 “고객중심주의적 차원에서 노인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객중심주의’는 최근 전 세계적 대세로 떠오른 신(新) 경영전략이다. 고객이 어떤 사람이며, 어떤 것을 원하는지를 분석해 이를 공략하는 것이다.

이제 노인은 ‘경험과 구매력을 갖춘 고급 소비자’로 새롭게 정의할 수 있다. 이 교수는 “구매력 있는 시니어들은 이미 좋은 것을 먹고, 입고, 써 본 사람들”이라며 “이들을 그저 ‘노인’으로 딱지 붙여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미 고령 고객은 새로운 비즈니스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미국 홈트레이닝 플랫폼 기업 ‘펠로톤’과 캐나다 스포츠 기업 ‘룰루레몬’이 대표적이다. 펠로톤은 집에서 자체 애플리케이션과 실내 자전거를 활용해 다양한 운동을 할 수 있도록 한 신생 기업이다. 요가복을 판매하는 룰루레몬은 일명 ‘레깅스계의 샤넬’로 불린다. 젊은 세대가 주 소비층일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들은 전 세계 시니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들이 전 세계 1위에 올라선 기반이 노인 소비자였던 셈이다.

이 교수는 “이들 기업은 시니어들에게 사랑받고 있지만 그들을 위한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펼치지는 않는다”는 점을 짚었다. ‘노인’ 딱지를 붙인 마케팅의 허점을 지적한 것이다.

제14회 이데일리 전략포럼 연사로 나서는 이동우 고려대 고령사회연구원 특임교수가 이데일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영훈 기자)
그는 “노인들도 노인, 시니어란 단어를 별로 안 좋아한다. 지금 자기가 나이 들었다고 생각하는 노인은 많지 않다”며 “이제부터는 고령 인구가 압도적인 고객층으로 등장할 테다. 모든 비즈니스에서 다 ‘시니어’를 강조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노인을 위한 새로운 산업과 비즈니스 전략이 필요한 셈이다. 이 교수는 오는 6월 21~22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리는 제14회 이데일리 전략포럼 ‘인구절벽 넘어, 지속가능한 미래로’에 참석해 변화하는 경제·산업 트렌드와 전략을 제시한다. 그는 “산업계에서부터 세대 구분론이 사라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며 “MZ세대, 베이비붐 세대를 구분하지 않고 고객이 원하는 것을 줄 수 있는 경영 전략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이동우 교수는

△한림대 법학과 △연세대 저널리즘 석사 △前 경희대 경영대학원 스타트업 비즈니스 MBA 겸임교수 △이동우콘텐츠연구소 소장 △고려대 고령사회연구원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