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준칙은 파탄 막기 위한 필요조건…늦을수록 고통스러울 것"[만났습니다]②

by이지은 기자
2023.02.21 05:00:00

"한국, 재정 빗장 이미 열려…정치권·국민 무감각"
저출산·고령화 지적…"자녀 다키운 부모와 비교 못해"
"尹 정부, 추경 편성 기대 낮춘 것만 해도 큰 역할"
"재정준칙이 곧 재정건전 아냐…파탄 막는 필요조건"

[세종=이데일리 이지은 조용석 기자] “이대로라면 미래 세대는 공공에 의한 ‘폰지사기’를 당하는 것이다.”

폰지사기는 일종의 ‘돌려막기’다. 이윤이 날 수 없는 수익구조에서 신규투자자들을 유치해 그들의 투자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수익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다단계 사기 수법에서 주로 드러난다. 오는 4월 한국재정학회장에 취임하는 이철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난 15일 이데일리를 만나 정부의 재정운영 방식을 이런 폰지사기에 빗대 설명했다. 그는 “희생자가 된 젊은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는 건 시간 문제”라고 말했다.

이철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차기 재정학회장). (사진=김태형 기자)
이 교수는 “재정 빗장은 이미 열렸다”고 우려했다. 지난 2017년부터 매년 200조원씩 더 지출하는 추세가 형성됐고, 이중 절반은 세금을 더 걷는 방식으로 대응해왔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정치권과 국민이 정부가 과거보다 돈을 더 쓰는 데 무감각해졌고, 이젠 이에 대한 비판마저 나오기 힘든 상황”이라며 “개혁 시기를 늦출수록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의 우려는 급격하게 진행되는 저출산·고령화와 맞닿아 있다. 한국의 초고령사회 진입은 불과 3년 앞으로 다가왔지만, 합계 출산율은 0.7명대까지 떨어졌다. 이 교수는 “사실상 재정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연금과 의료서비스로, 모두 고령화가 가장 결정적 요인”이라며 “우리나라는 저출산 문제까지 있어 이대로라면 미래 세대가 소득 절반 이상을 조세 및 사회보장기여금을 위해 지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국가부채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이하라는 점을 근거로 안정적이라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강하게 반박했다. 이 교수는 “자녀를 다 키운 부모와 자녀를 키우기 전 부모의 재산이 동일하다고 같은 형편으로 보면 되냐”며 “저출산이 완만하게 왔고 이미 고령화에 적응한 국가와는 달리, 우린 돈 쓸 데가 천지”라고 강조했다.

그런 측면에서 이 교수는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를 줄인 것만 해도 큰 역할을 한 것”이라며, 윤석열 정부가 앞세우는 건전재정 운영 기조를 긍정로 평가했다.

법제화가 지연되고 있는 재정준칙와 관련해선 “재정준칙은 재정이 너무 파탄나는 걸 막기 위한 필요 조건”이라며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고, 정치적 타협의 대상도 아니다. 반대하는 사람이 있대도 누군가 문만 열어주면 쓸려가듯 도입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이철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차기 재정학회장). (사진=김태형 기자)
△매년 관리대상수지 5% 이상이 부채로 쌓이고 있고 국가부채 증가율은 3.5%씩 증가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2070년 부채비율은 193%에 달한다는 국회예산처 장기재정전망은 그나마 낮게 잡은 거다. 조세를 높게 징수하면 재정 수요를 감당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조세를 미래세대가 감당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매순간이 마지노선이다. 복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재정 여력이 있다는 이야기를 계속 하고 있고, 이게 진영으로 갈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이를 믿고 있다. 적게 걷고 많이 쓴다는 건 모순되는 얘기다. 얼마 안되는 미래 세대들이 부담이 너무 커진다.

△주요 에너지원 해외로부터 수입해서 쓰는 상황이다. 원자재 가격의 상승이 항구적이라면 정부 재정으로 모두 대응할 순 없다. 일부 저소득층 중심으로 재정 투입을 한정하고 대비해야 한다. 재원 마련은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서 이뤄져야 한다.

-△기존에 부처에서 쓰는 예산 중 불요불급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전용의 여지를 둬야 한다. 불용액이나 추경보다는 재원의 일정부분을 남겨서 예비비나 세계잉여금 형태로 두고 긴급사태 지원하는 게 그나마 정부가 재정건전성을 지키며 할 일을 하는 것이다.



△추경을 너무 남발해왔다. 경제에 충격이 오면 추경밖에 안 되는 틀을 깨야 한다. 국가가 막무가내로 쓰고 남아도는 것을 국민에 전가하는 형태는 안된다. 지출을 철저히 줄이고 불가피한 부분에 대해 죄송하다고 하는 게 최선이다.

△재정 문제가 불거진 상황에서도 그 계층까지 직접 지원은 과한 측면이 있다. 물론 정치적 행위이기 때문에 지금도 행해질 수 있겠지만,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연초부터 추경을 말하면 지난해 예산 편성할 때는 뭘 한 건가. 이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지난해 5월부터 시작됐고 물가가 오르는 것도 경험했다. 예산에 더 자리가 없다고 변명하겠지만 그 안에서 노력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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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스쳐는 좋아 보인다. 언젠간 하더라도 안 하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도저히 안될 때 하겠다는 건 그나마 건전 재정을 지켜가는 방향이다. 지금부터 메시지를 던지지 않으면 추경 얘기는 계속 나올 것이다.

△물가와 금리로 인한 충격이 상반기에 제일 힘들고 하반기에 풀릴 거라고 예상하는 듯하다. 상반기 유동성을 풀면 좋은 역할을 하게 돼 하반기 약간만 운영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나름 장밋빛 시나리오다. 문제는 지금 충격이 하반기 계속된다면 실효성이 떨어질 거라는 거다. 추경 방향으로 갈 수 있다.

이철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차기 재정학회장). (사진=김태형 기자)
△사실 재정준칙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빚을 적게 내면 된다는 것 뿐이다. 재정준칙이 법제화되면 국회가 재정을 막 쓸 수가 없다. 재정준칙 법제화는 재정이 너무 파탄나는 것을 막는 필요조건이다. 이는 국회의원의 쪽지예산에도 압력으로 작용하고, 재정지출 자체에 대한 제약으로도 작용할 것으로 본다. 선진국도 이미 도입했고, 한국은 재정문제가 심각해서 재정준칙 법제화는 정치적 타협의 대상도 아니다. 스스로 (재정을)유지하기 위해 등 떠밀려서라도 도입할 거라고 본다. 반대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누군가 물꼬만 터주면 만들어질 수 있다.

-△돈을 적게 걷어서 적게 쓰는 정부, 그리고 크게 걷어서 크게 쓰는 정부 있다. 선택의 문제다. 하지만 재정을 많이 걷어서 적게 쓴다는 건 횡령이고, 미래세대가 알아서 막아주라는 방식은 지속될 수 없다. 개인적으로 재정준칙 법제화는 시간문제라고 본다.

-4△모두가 재정건전성을 말하지만 그 의미를 진짜 느끼는 사람은 별로 없다. 진영이 다른 사람들은 아예 귀도 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재정을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이라도 환기시키는 데 마중물 역할을 하고 싶다. 연금·의료개혁, 재정 안전성 등 후속세대 지속가능성의 관점에서 노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