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일 때 사놓자...엔화 쓸어담는 개미들[돈창]
by전선형 기자
2022.12.05 05:30:00
달러에서 엔으로...달라진 외화투자
4대은행 엔화 환전 1년새 7배 급증
엔화예금 한달새 5600억원 늘어
역대급 엔저, 반등 가능성에 주목
[이데일리 전선형 기자] 직장인 A씨는 최근 일본여행을 앞두고 엔화 환전을 하기 위해 은행에 갔다가 허탕을 쳤다. A씨는 약 600만원을 환전하려 했는데, 은행에서 ‘엔화가 일시적으로 부족하다’며 돌려보냈기 때문이다. 이 은행은 3년 전에 A씨가 엔화를 환전했던 은행이다. A씨는 “여럿이 가는 여행이라 수수료를 아끼려고 한번에 환전을 하려했지만, 그 정도 금액의 엔화가 불가능할 줄은 몰랐다”며 “은행에서 엔화를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 미리 예약을 하고 오거나, 다른지점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고 전했다.
재테크족들의 관심이 ‘엔화’로 향하고 있다. 원화 대비 엔화 가격이 떨어지는 ‘엔저(低) 현상’이 계속되자, 싼 가격에 엔화를 사들인 후 가격이 오르면 팔아버리는 ‘환테크(환율재테크)’를 노리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여기에 지난 10월부터는 그간 꽉 막혔던 일본 무비자 입국이 허용돼 여행을 위해 엔화를 쟁여놓는 수요도 많아졌다. 그야말로 ‘엔화투자 전성시대’다.
4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지난 10월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개인 엔화 환전 규모는 103억1782만 엔(약 992억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0월 14억7562만 엔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무려 7배가 늘어났다.
엔화에 대한 관심이 커진 건, 엔화가 기록적 약세를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미국과 상반된 금리 정책을 펴고 있다. 미국은 높아진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고 있으나, 일본은 물가가 높지 않다는 판단에서 초저금리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일본의 대규모 국채 보유도 금리를 올리지 못하는 이유로 작용한다. 지난해 말 기준 일본의 국채잔액은 1000조엔 수준으로 추정된다. 일본 재무성 추산으로 금리가 1% 오르면 2025년도 원리금 부담이 3조7000억엔가량 늘어나게 된다.
이같은 이유로 저금리가 계속되면서 일본 환율은 하락세를 면치못했다. 실제 원ㆍ엔 환율은 2일 기준 961.74원이다. 지난 1월 3일 1029.57원과 비교해 67.83원이 빠졌다. 엔화는 지난 3월 중순 이후로 1000원을 넘기지 못하고 있다. 6월 9일에는 934.18원으로 연저점을 찍었다. 9월 이후 소폭 오르면서 990원을 넘기기도 했지만, 다시 하향세가 이어지는 모습이다.
현재 엔화 환차익을 노리는 투자자들은 수수료를 할인 받아 엔화를 사는 법을 공유하거나, 앱 등을 통해 엔화를 저렴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공유하는 등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엔화통장에는 돈이 쌓이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엔화 거주자외화예금 잔액은 지난 10월 기준 7조4344억원(57억1000만달러)으로 집계됐다. 이는 직전달 6조8745억원(52조8000만달러)보다 5599억원 증가한 수치다.
더불어 일본여행을 위해 엔화를 사모으는 여행족도 늘고 있다. 일본은 지난달부터 무비자입국이 가능해진 상태다.
한 은행 관계자는 “엔저(低) 현상이 이어지면서 확실히 엔화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9월과 10월에는 엔화값이 크게 떨어지면서 엔화를 많이 가져다 놓지 않은 일부 영업점에서는 엔화가 부족한 현상도 발생했다”며 “일부는 환테크 투자가 성공적이 못하더라도 여행갈 때 활용하겠다는 생각에 수요가 지속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엔화투자를 시작할 생각이라면 직접 매입하거나 투자상품에 들어가는 방법을 활용할 수 있다.
먼저 직접 엔화를 매입하는 직접투자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은행에서 직접 환전을 해 지폐로 바꾸거나 외화통장에 넣어두면 된다. 외화통장은 가지고 있는 외국 돈을 그대로 입금할 수도 있고, 원화를 입금하면 입금 시점 환율 기준에 따라 원화가 외화로 환전돼 입금되기도 한다. 달러, 유로화, 엔화 등 대부분의 외화가 가능하다. 외화통장에도 수시입출금 통장이 있고, 기간이 정해진 예ㆍ적금 통장이 있다. 외화통장은 원화통장과 마찬가지로 15.2%의 이자소득세가 붙지만 발생한 환차익에 대해서는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다. 또 5000만원까지는 예금자 보호도 받을 수 있다. 다만 금리는 낮은 편이다.
최근엔 당근마켓 등 중고커뮤니티를 통해서도 매매가 활발하다. 은행과 다르게 개인간 거래기 때문에 수수료 없이 구매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거주자 간 매매차익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외화매매는 5000달러 내에서 신고 없이 거래가 가능하다. 엔화 상장지수펀드(ETF) 등에 돈을 넣는 간접투자 방법도 있다. 현재 엔화 ETF는 ‘TIGER일본엔선물 ETF’가 거의 유일한 상품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환테크가 달러에서 엔화로 조금씩 옮겨가는 분위기”라며 “최근에 일본 정부가 엔화 방어를 위해 엠화를 사들이는 조취를 취하면서 엔화값도 소폭 오르고 있는데다, 혹시 가격이 오르지 않더라도 여행용으로 쟁여둔다는 생각에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