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유럽 가스 끊었는데…뜨뜨미지근한 유가, 왜?[최정희의 이게머니]

by최정희 기자
2022.09.07 05:00:00

최악의 시나리오 현실화됐는데도
유럽 내 천연가스만 가격 들썩…예상외 잠잠
천연가스 대체재, 석유보다 석탄이 될 듯
유가, 공급 타격보다 경기침체 영향 더 받을 듯
국내 LNG 재고 예년보다 낮아…"겨울철 현물 매수시 가격 부담"

(사진=AFP)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러시아가 유럽에 가스 공급을 중단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됐음에도 유럽내 천연가스 가격만 급등할 뿐 석유, 석탄 등 여타 에너지로 가격 급등세가 번지진 않고 있다.

우리나라가 주로 수입하는 에너지인 석유, 즉 국제유가의 경우 가스 대체재로서의 역할이 크지 않기 때문에 유럽 가스난으로 인한 최악의 물가 급등세가 나타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유가가 중국 등 세계 경기침체 우려, 수요 둔화에 더 반응할 것이란 분석이다.

5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유럽 벤치마크 천연가스 가격(TTF)는 러시아가 유럽으로 가는 가스관 ‘노드스트림1’ 파이프라인 가동 중단을 선언한 후 메가와트시당 장중 284유로까지 올라 30% 가량 급등했다. G7(주요 7개국)이 러시아산 원유와 석유제품에 가격 상한제를 시행키로 하자 이에 대한 보복 조치로 해석된다.

10월 유럽 겨울철을 앞두고 러시아의 가스 공급 중단은 예상했던 시나리오 가운데 최악의 상황이다. 그러나 천연가스 부족 사태가 국제유가 급등 등 여타 에너지 상승세를 자극하진 않는 모습이다.

우리나라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시세를 보여주는 JKM 천연가스는 2일 100만BTu당 55달러(시카고상품거래소 기준)로 전 거래일보다 외려 6.6% 하락했다. 가스의 대체재로 알려진 석탄은 상승세를 보였다. ICE거래소에 따르면 5일(현지시간) 호주 석탄(NEWC)은 톤당 465달러로 5.5% 올랐다. 국제유가는 러시아의 유럽 가스 공급 중단보단 석유수출국기구(OPEC) 등 산유국의 감산 소식에 상승했다. 우리나라가 주로 수입하는 두바이유는 5일 배럴당 95달러선으로 전 거래일보다 0.68% 올랐다.

유럽내에서 겨울철 가스 공급이 부족하더라도 석유보다는 석탄이 대체재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오정석 국제금융센터 전문위원은 “원유와 가스 시장은 서로 다른 독립적인 시장”이라며 “가스는 공급 부족 논란이 있지만 석유는 공급이 부족하지 않은 시장이고 오히려 경기침체 논란으로 수요에 더 영향을 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OPEC 등 산유국이 10월 원유 생산량을 9월보다 10만배럴 더 줄이기로 합의한 것도 경기침체에 원유 수요 감소를 우려한 조치라는 평가다.



박진호 에너지경제연구원 가스정책연구팀장은 “가스는 우리나라에서 난방용 또는 발전소용으로 사용하는데 발전소의 경우 가스 부족시 석탄으로 대체하지, 석유로는 잘 대체하지 않는다”며 “(가스 공급 중단은) 석유보다는 석탄에 더 영향을 미친다”고 밝혔다. 또 석유는 여름철에, 가스는 겨울철에 주로 사용돼 성격이 다르다는 분석도 나온다. 유가가 에너지의 한 종류로서 간접 영향을 받겠지만 직접 영향은 제한적이란 평가다.

우리나라는 전체 수입 중 18.3%가 에너지다. 원유 수입 비중은 10.9%로 가장 많다. 그 다음이 LNG가스(5.0%), 석탄(2.4%) 순이다. 러시아의 유럽 가스 중단이 원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더라도 나머지 LNG가스나 석탄 수입 가격은 끌어올릴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LNG가스 재고는 예년 평균 수준을 상당폭 하회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러시아 가스 공급 중단과 겨울철 수요 확대가 맞물릴 경우 각국의 LNG 확보 경쟁이 격화되면서 국내 에너지 수급이 불안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LNG는 80%가량이 장기계약이지만 겨울철에는 수급 불안을 완화하기 위해 현물로 확보하고 있다.

박 팀장은 “LNG는 장기계약이 80%이지만 동절기에는 수급을 위해 현물시장에서 사와야 하는데 도입가격이 높아질 수도 있다”고 밝혔다. 장기계약의 LNG가격은 70~80%가 유가에 연동돼 가격이 매겨진다. 유가 등락을 3~6개월 후행해 반영하고 있어 유가가 오른다면 LNG 수입 가격 전반이 뛸 수 있다.

한편 국제통화기금(IMF) 분석에 따르면 EU 가스 공급 중단시 전기가스, 철강, 석유화학 업종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들 업종이 타 업종에도 영향을 줘 EU에서 전 산업에 걸쳐 생산차질이 발생할 경우 우리나라 산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도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한은은 “광범위한 생산차질 발생시 조선·반도체·자동차에서 유럽산 핵심 자본재인 선박엔진, 반도체 장비, 차량용 반도체인 중간재 공급부족에 따른 생산 차질이 우려된다”며 “화학·철강 등은 생산원가가 오를 것”이라고 밝혔다.

IMF 등에선 러시아가 유럽에 가스 공급을 중단하면 향후 1년간 유럽 경제성장률이 0.4~2.6%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유럽 성장률이 1%포인트 하락하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도 0.1%포인트 내외로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 바 있다. 반면 유럽발 공급 충격에 원자재 가격이 오를 경우엔 물가상승률은 더 커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