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세 편의점의 무한진화…동네 가게서 생활 플랫폼으로
by남궁민관 기자
2022.07.18 05:00:00
[편의점 전성시대]①1989년 세븐일레븐 올림픽점 오픈…33년만 점포 5만개 돌파
‘비싼 곳’ 인식에 IMF 대위기…2002년 월드컵 기회로 바꿔
유통업계 변방 ‘골목가게’에서 대표 채널로 주목
명품 판매·세탁 수거·금융 서비스 등 영역 무한 확장
지난해 매출 규모 마트 앞지르고, BGF리테일 시총 1위
[이데일리 남궁민관 기자] “택배는 GS25 반값 택배 가능할까요?” 중고거래를 종종하는 30대 직장인 김 모씨는 판매자에게 이같은 요구 사항을 꼭 물어본다고 한다. 운송업을 하는 40대 박 모씨는 아침 출근길마다 세븐일레븐의 세븐카페를 들러 1200원짜리 아메리카노를 구매한다. 박씨는 “매일 아침 커피 구매를 위해 기다리는 줄이 길다”며 “한 끼 식사로 도시락을 사가는 동료들도 많다”고 말했다.
조금 비싸지만, 24시간 언제든 가까운 거리에서 쇼핑할 수 있는 공간. 과거 국내 편의점을 바라보는 시각이 이랬다면, 최근의 편의점은 이를 넘어서 값싸게 다양한 상품과 생활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생활 플랫폼’으로 거듭난 모양새다. 1989년 처음 국내에 발을 들여 올해로 만 33살을 맞은 국내 편의점은 그간 굵직한 사회·경제·문화적 풍파 속에서도 소비자들과 가장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며 꾸준히, 또 적극적으로 혁신에 나선 결과다.
국내 편의점 산업의 역사는 19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내 최초의 편의점은 코리아세븐이 미국 사우스랜드와 기술제휴을 통해 서울 송파구 오륜동에 문을 연 세븐일레븐 1호점 올림픽점이다. 이후 국내 편의점은 급격하게 양적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현재 편의점 업계 1위인 CU(옛 훼미리마트)는 1990년 10월 1호점 가락시영점을, 같은해 11월에는 미니스톱이 1호점인 목동점을 오픈했다. 12월에는 첫 국산 편의점인 GS25(옛 LG25) 경희대점이 등장했다.
이후 4년 만인 1993년 4월 1000개을 돌파하면서 다른 편의점 강국인 대만(1000개까지 12년), 일본(6년)보다 빠른 양적 성장을 보였다. 2002년 국내 편의점 5000개 시대(5680개)가 열린 데 이어 △2007년 1만개 시대(1만1000개) △2011년 2만개 시대(2만1221개) △2016년 3만개 시대(3만2611개) △2019년엔 4만개 시대(4만672개)에 이르렀다. 그리고 지난해 말 기준 전국 편의점 수는 각 편의점 업체들의 집계를 각각 추산해 본 결과 5만974개로, 국내 편의점 5만개 시대가 열렸다.
| 최근 ‘런치플레이션’(런치와 인플레이션의 합성어)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외식 물가가 인상되면서 ‘한 끼 1만원 시대’가 도래했다. 서울 강남구의 한 편의점에서 시민들이 편의점 도시락을 구매하고 있다. (사진= 이영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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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적 성장과 동시에 질적 성장이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편의점=비싼 곳’이라는 이미지가 각인된 가운데 1993년 대형마트가 등장하면서 편의점은 유통업계에서 모호한 위치를 차지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와중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며 체질 개선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생존 과제로 떠올랐다. 편의점 업계는 신선식품(Fresh Food) 판매와 할인 강화 등을 승부수로 띄웠다.
이같은 노력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전환점을 맞았다. 편의점 업계 한 관계자는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샌드위치 등 간편하게 즐길 먹거리들이 있다는 소비자들의 인식이 구축됐다”고 설명했다.
이후 2010년대부터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편의점의 고속 성장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그 날개가 바로 ‘도시락’이었다.
2015년 전후 편의점 업계는 ‘혜자 도시락(GS25)’·‘백종원 도시락(CU)’·‘혜리 도시락(세븐일레븐)’ 등으로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최근 고물가 시대를 맞아 ‘편도족(편의점에서 도시락을 먹는 사람들)’이 다시 주목을 받는 것도 이 때부터다.
‘편의점=비싼 곳’이란 인식이 깨진 것도 2004년부터 도입한 ‘1+1’·‘2+1’ 프로모션, 2009년께 도입된 ‘맥주 4캔 1만원’ 프로모션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국내 편의점 산업이 현재 핵심 경쟁력으로 꼽히는 생활 서비스 접목에 처음 나선 것도 외환위기 이후다. 1997년 공공요금 수납 서비스를 시작한 데 이어 △점포 내 취식공간 도입(1998년) △ATM 서비스(2000년) △택배·우편서비스(2001년) 등이 대표적이다. 2012년부터는 안전상비 의약품도 판매하는 등 일상생활에서 반드시 필요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최근에는 세탁 수거·배달 및 렌탈 등 생활편의 서비스뿐만 아니라 체크카드 발급이나 간편보험 가입 등 금융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다.
편의점이 ‘생활 플랫폼’으로의 변신을 거듭한 끝에 대표 유통채널로 자리매김했다.
일각에서는 5만개가 넘는 점포로 시장 포화상태라는 우려도 있지만 성장에 대한 기대감이 더 높다.
정동섭 딜로이트안진 유통소비재그룹장은 한 보고서를 통해 “점포 수가 이미 포화상태라는 일각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점포를 확대할 수 있는 이유는 편의점이 고객의 삶에 깊숙이 파고드는 새로운 변신을 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같은 변신은 지표상으로도 나타났다. 편의점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은 최근 국내 유수의 유통 대기업들을 제치고 업계 시가총액 1위에 올라섰다. 13일 종가 기준 BGF리테일(282330)의 시총은 3조1802억원으로 이마트(139480)(2조8572억원), 롯데쇼핑(023530)(2조5601억원), GS리테일(007070)(2조5551억원), 신세계(004170)(2조1068억원)보다 많았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매년 발표하는 ‘주요 유통업체 매출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유통업체 매출 중 편의점이 15.9%의 비중을 차지하며 사상 처음으로 대형마트(15.7%)를 앞질렀다. 올해 5월까지도 대형마트가 설 특수를 누린 1월을 제외하고는 모두 대형마트보다 높은 비중을 차지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