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세은 기자
2021.06.18 00:35:16
노키즈존 표시 없어 방문했더니 '문전 박대'
"다른 손님 입장도 고려해야" vs "아이 인권 무시한 것"
노키즈존 지정 및 표시여부 점주 자율
아이 동반 손님 "최소한 노키즈존인지 표시라도 해야"
"공공장소 함께 이용할 수 있는 방안 마련 필요"
제주도에 살고 있는 김예진(33·여) 씨. 김씨는 자고 있는 아이 두 명을 유모차에 태우고 엄마와 함께 식당에 방문했다. 식당 측은 “식당 안에 유모차가 들어올 수 없다”며 “유모차는 밖에다 주차하고 아이를 안고서 식사해야한다”고 통보했다. 자고 있는 아이들을 안은 채 식사할 방법을 도무지 떠올릴 수 없던 예진씨는 결국 식당을 나와야만 했다. 식당엔 ‘노키즈존’ 표시가 없었다.
수 년째 업장의 '노키즈존'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손님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업장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과 어린아이도 차별당하지 않고 인권을 보호받아야 한다는 입장은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미 하나의 '영업 방식'으로 자리 잡은 노키즈존. 하지만 일부 업장에서 노키즈존이라는 사실을 명시하지 않아 '헛걸음'을 해야만 하는 부모들의 피해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어제오늘 일 아닌 ‘노키즈존’ 논란
경기도 성남시에 사는 30대 오수연씨도 최근 비슷한 일을 겪었다.
평일 오후 오씨는 2세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동네 카페로 향한 오씨는 소위 문전 박대를 당했다. 오씨가 끌고 온 유모차를 본 카페 주인이 "여긴 노키즈존입니다. 죄송합니다"라며 오씨의 입장을 거부한 것.
오씨는 평소 음식점이나 카페에 갈 때면 포털사이트에 업장명을 검색한 후 노키즈존 여부를 확인한다. '노키즈존'과 '입장 거부'는 맘 카페 게시글의 흔한 소재일뿐만 아니라 각종 정보를 공유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오씨가 문전박대 당한 카페는 노키즈존이라는 표시를 따로 하지 않았다.
오씨는 "주인이 화를 내거나 기분 나쁘게 말한 건 아니지만 황당하고 속상했다"며 "아이가 소란을 피우지도 않았는데 단지 아이라는 이유만으로, 아이를 동반한다는 이유만으로 거절당해 허탈했다"고 말했다.
노키즈존을 둘러싼 논란은 지속돼왔다.
노키즈존에 찬성하는 이들은 "많은 부모들이 시끄럽게 구는 아이들을 관리하지 못한다"며 아이뿐만 아니라 부모의 태도 역시 문제삼는다.
노키즈존에 반대하는 입장은 '인권 침해'라며 비난하고 있다. 인종이나 성별 등을 특정지어 '노○○존'을 만드는 것은 명백한 차별행위인데 왜 아동에겐 해당하지 않냐는 것.
세이브더칠드런 관계자는 "노키즈존은 아동에 대한 차별 현상"이라며 "아동을 하나의 인격체나 시민으로 보지 않고 부모의 일개 소유물에 불과한 것으로 인식한 데서 기인한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아동이 지역사회나 공동체의 문화에 참여함으로써 소속감을 느끼는 것은 자아 정체성을 찾는 데에 매우 중요한 과정"이라며 "아이의 존재 자체를 금지할 게 아니라 함께 공공장소를 잘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노키즈존, 어찌어찌 피해 갔지만 '문전 박대'
2017년 온라인상에선 전국의 카페와 음식점을 비롯해 옷 가게와 주점 등 모든 업종을 아우른 ‘노키즈존’을 표시한 구글맵이 화제가 됐었다. 해당 지도는 이후 맘카페 등 커뮤니티에 퍼지면서 리스트가 계속해서 업데이트돼왔다.
서울시 내 노키즈존이 밀집한 곳은 일명 ‘핫플레이스’이라 불리는 △홍대 입구 △이태원 △성수동 △압구정 및 청담 일대다. 지도상 노키즈존이 가장 많았던 곳은 홍대 일대다.
리스트 내 영업 중인 업장을 포털사이트에 검색한 결과 절반 이상이 노키즈존임을 명시하지 않았다.
리스트에는 노키즈존이라고 표시되어 있지만 온라인 상으로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은 카페와 레스토랑 중 다섯 군데를 찾아 가봤다. 누리꾼들의 말대로 누구나 알아볼 수 있도록 ‘노키즈존’을 써 붙인 곳은 없었다.
1층이 아닌 계단을 올라야 하는 2층에서 영업 중인 곳도 있었다. 계단 아래와 건물 근처엔 업장의 간판만 멀뚱히 서있었다. 업장의 출입문 앞에 이르러서야 노키즈존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작은 스티커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건물 외관 어디에서도 노키즈존 표식을 발견할 수 없던 업장도 있었다.
서울 마포구의 A카페는 노키즈존으로 운영중인지 묻자 “그렇다"고 답변했다.
그는 "이곳은 매우 조용한 공간이다. 대부분의 손님은 책 또는 노트북을 보는 개인이거나 소수로 방문한 이들”이라며 “아이가 와서 시끄럽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노키즈존 표식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완전히 노키즈존이라고 정의한 것은 아니다. 손님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아이와 동반입장이 가능햐고 재차 묻자 "안된다"라며 이해하기 어려운 답변만 했다.
마포구에 있는 또 다른 B 카페 관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전에 노키즈존이라는 판넬을 설치했다"면서도 "코로나19로 손님이 대폭 줄면서 판넬을 철거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여전히 노키즈존으로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행 규정상 업주가 노키즈존 운영실태를 고지할 의무는 없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노키즈존을 정하는 것부터 해당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리는 행위 모두 사업주의 판단에 따른다"고 설명했다. 결국 '자율'이란 것.
하지만 일부 아이를 동반한 손님들은 점주들이 좀 더 친절하기를 바란다.
오씨는 "노키즈존 지정은 업주들 마음대로 하면서 해당 표시를 하지 않는 것은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다"며 "최소한 손님들이 헛걸음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불만을 표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자기 업장을) 노키즈존으로 정하는 것까진 자유일지 몰라도 이용자의 편의를 위해 그 사실을 명시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명시해야 할 법적인 의무는 없는 상황"이라며 "노키즈존 명시 여부를 제지할 수 있는 제도는 마련돼있지 않으니 시장 자율적으로 자구책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스냅타임 김세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