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신의 애인이 성관계 영상으로 협박한다면”

by김소정 기자
2020.07.04 00:30:00

데이트폭력 2년새 40% 이상 증가
전문가 "어려워도 경찰 수사부터 의뢰해야"

[이데일리 김소정 기자] 20대 여성 A씨는 남자친구 주모씨(23)와 헤어졌지만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주씨가 연인 시절 찍은 A씨의 불법촬영물 때문이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주씨는 A씨가 만취했을 때 두 사람간의 애정행위를 포함한 영상을 불법으로 촬영했다. 그 후 촬영물을 빌미로 A씨를 협박하고 성폭행했다. A씨는 더이상 주씨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지난달 초 A씨는 경찰을 찾아갔다.

하지만 경찰은 성폭행과 불법촬영에 관련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폭행 부분만 혐의가 인정된다고 답했다. 허무하게 발길을 돌린 A씨는 주씨가 불법촬영물을 유포할까봐 조바심을 내면서 피마르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같은달 22일 주씨는 A씨에게 만나면 불법촬영물을 지워주겠다고 먼저 연락했다. A씨는 만나고 싶지 않았지만 불법촬영물 삭제가 우선이라는 생각에 마지못해 주씨 집을 찾아갔다.

하지만 주씨는 이날부터 23일 새벽까지 주택 지하에서 A씨를 폭행한 것도 모자라 성폭행까지 했다. A씨는 맨발로 겨우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건물 밖에는 한 차량이 주차돼 있었고, A씨는 해당 차량에 무작정 탔다.

A씨는 차량에 탑승한 사람에게 “남자친구가 죽이려고 한다. 제발 차에 탈 수 있도록 부탁드린다”라고 도움을 요청했다. 경찰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주씨를 체포했다. 경찰은 지난달 25일 서울남부지방법원으로부터 구속영장을 발부받았고 현재 주씨를 구속수사하고 있다.

매년 데이트폭력 피해 신고는 증가하고 있다. 데이트폭력 신고 건수는 2017년 1만4136건에서 2018년 1만8671건으로 늘었고 2019년에는 1만9940건으로 증가했다. 불과 2년새 40%나 넘게 늘어난 것.

불법촬영 범죄도 급격히 늘어났다. 2013년 412건에서 2018년에는 2388건으로 5.8배나 늘어났다. 불법촬영 범죄자 연령은 30대(39%)와 20대(27%)에서 가장 많았다.

특히 불법촬영은 재범 비율이 높다. 동일 범죄 재범률은 75%로 다른 성범죄보다 재범률이 높은 범죄로 꼽혔다. 문제는 처벌 수위가 낮다는 거다. 불법촬영 범죄 9317건 중 벌금형은 5268건(56.5%)으로 가장 많았다. 집행유예(2822건, 30.3%), 선고유예(464건, 5%)가 그 뒤를 이었다. 징역형은 763건(8.2%)에 불과했다.

김도연 한국데이트폭력연구소 소장은 많은 데이트폭력 사건 피해자들이 불법촬영 협박을 당한다고 전했다.



그는 2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옛 연인과의 개인적인 영상을 리벤지 포르노라고 부르는데 보통 2명 중 1명은 유포 협박을 받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연인간 불법촬영물에 대한 유포 협박을 받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찰신고를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두려움이 앞서기 마련이다. 연인 관계에서 피해자가 불법촬영물 자체를 가해자 잘못이라고 인식하기 어렵다. 보통 ‘내가 왜 저런 사람만났을까’라고 자책하는 경우가 많다.

김 소장은 불법촬영물 유포 협박을 당하고 있다면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먼저 단호하게 상대방에게 ‘나 경찰에 대응하겠다’라고 사전고지를 한 후 어렵더라도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 참으면 참을수록 본인의 피해나 문제가 더 커지기 때문”이라며 “결국 상대방은 ‘넌 내 손 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단호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1차 안전지대가 경찰이니까 수사를 의뢰하자”라고 당부했다.

다만 증거를 피해자가 확보해야 하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라고 김 소장은 전했다.

그는 “피해자가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고 나면 신체적, 경제적, 심리적 피해를 입었다는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며 “특히 심리적 상태는 (가해자가) 가중처벌 될 수 있기 때문에 해당 내용에 대한 증거를 포함해서 제출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또한 주변에 알려 나를 보호하는 것도 중요하다. 김 소장은 “절대 혼자 견디지 마라. 주변에 알려라. 내 상황에서 더 위험한 일이 일어날 수 있으니 보호 체계를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 경찰청 홈페이지 캡처화면.
경찰청 ‘범죄피해 평가제도’를 적극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김 소장은 “경찰서에 연인간의 데이트폭력으로 발생하는 신체적, 심리적 피해 등을 지원하는 범죄피해 평가제도라는 게 있다”며 “홍보부족으로 많은 국민들이 알지 못하고 있다. 경찰서마다 여성 요원들이 배치돼 있어서 별도로 도와주고 심리상담 받을 수 있다. 그 내용을 법정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소장은 마지막으로 불법촬영물 협박을 당하고 있는 피해자들을 향해 “불법촬영물 보유여부와 상관없이 상대방은 협박을 한다”며 “피해자를 자신의 구속력 아래 놔두기 위한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것은 정신적인 살인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이다. 명백한 폭력이고 범죄다. 적극적으로 정당하게 대응하는 것이 최선이다”라고 강조했다.

김도연 한국데이트폭력연구소 소장 이력. (사진=한국데이트폭력연구소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