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과 휴전한 트럼프‥이번엔 EU·日 겨냥

by정다슬 기자
2019.07.03 00:00:00

EU에 250억달러 관세 예고…EU도 ‘맞불 관세’ 장전
“EU, 미·중 무역전쟁 방관해…잠재적 수혜자” 불만
日, 7월 참의원 선거 이후 협상 조속히 마무리할 듯

△2018년 7월 25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장 클라우드 융커 유럽연합(EU) 위원장이 미국 워싱턴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기자회견 후 자리를 떠나고 있다.[사진=AFP제공]
[이데일리 정다슬 방성훈 기자] 미국이 중국과의 휴전에 합의하자 이번엔 총구를 유럽으로 돌렸다. 중국과 협상을 재개하기로 하면서 여유가 생기자 화력을 다른 곳으로 집중한 것이다. 유럽은 미국의 전통적인 우방국이지만, ‘아메리카 퍼스트’를 주장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난타전 속에서 양측의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일본은 트럼프 대통령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일본의 7월 참의원 선거가 끝나는 대로 미국과의 무역협상을 피하지 못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1일(현지시간) 89개 항목, 40억달러 규모의 유럽연합(EU)산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USTR은 이번 관세 부과에 대해 유럽의 항공기 제조사 에어버스에 대한 EU의 보조금 지급에 관련된 분쟁에서 미국의 권리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와 EU는 15년째 대형 민간항공기 보조금 분쟁을 지속하고 있다. 미국과 EU는 상대방이 보잉과 에어버스에 불법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며 세계무역기구(WTO)에 기소와 항소를 반복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4월 USTR은 이에 대한 보복 조치로 자동차와 항공기를 포함해 326개 항목, 210억달러에 달하는 EU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 부과 방침을 발표했다. 여기에 이날 관세 대상을 추가로 확대한 것이다.

USTR은 “EU의 항공기 불법 보조금 지급에 대한 정확한 피해 규모를 WTO가 산정하는 대로 최종 관세 부과 품목을 확정할 것”이라며 “의견 수렴 등을 통해 관세 대상 품목은 더 늘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은 이번 관세 부과가 미·EU 무역협상과는 별도로 진행될 사안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번 관세가 실현될 경우, 미국과 EU의 관계는 더욱 경색되면서 무역협상 역시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미국과 EU는 지난해 7월 정상회담에서 무역협상을 진행하기로 합의한 바 있으나 양측의 협상은 협상단조차 꾸려지지 않은 채 한 발짝도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 자국 안보를 이유로 유럽산을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각각 25%와 10%의 징벌적 관세를 부과하고 EU가 이에 맞대응해 리바이스, 할리데이비슨 등 28억유로 규모의 미국 제품에 보복관세를 매기면서 대화 자체가 멈췄기 때문이다.

세실리아 말스트롬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은 지난 5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각료회의에 참여해 “미국이 무역협상을 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번 관세에 대해서도 EU의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이미 ‘맞불관세’를 놓을 총 390개 항목, 200억유로(226억달러)에 달하는 미국산 수입품 항목을 확정했다. 보복이 보복을 부르는 ‘악순환’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중국을 대하는 태도에서 미국과 EU의 온도 차도 감지된다. 미국 싱크탱크인 허드슨 연구소의 토마스 듀스터버그 수석 연구원은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에서 “유럽의 묵인하에 시진핑 중국 주석은 무역질서의 수호자가 됐다”고 지적했다. 산업보조금 등을 통한 중국의 불공평한 경쟁, 비(非)시장지향적인 정책 관행, 무분별한 지적재산권 침해 등 미국이 중국에 요구하는 구조적인 문제들에 대해 유럽연합(EU)이 침묵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실제 중국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를 사용하는 게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며 도입을 금지해달라는 미국에 요청에 EU는 시종일관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이미 상당수의 통신인프라에 화웨이 장비가 사용되고 있는데다가 5세대(5G) 통신 시대로 접어드는 상황에서 화웨이처럼 가성비가 좋은 제품을 찾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미국과 군사기밀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다섯개의 눈’(FIVE EYES) 중인 하나인 영국조차 화웨이 제재에 대해서는 난색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화웨이에 대해서 한발 물러선 배경에는 좀처럼 확산되지 않는 반(反) 화웨이 전선에 대한 고민 역시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바클레이즈의 크리스티안 켈리 연구원은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될 경우 가장 큰 수혜자로 프랑스, 독일, 영국을 꼽았다. 이는 미국이 실질적으로 모든 중국산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 역시 보복에 나서며 양국 간 교역이 30% 줄어드는 최악의 상황은 가정한 것이지만, 중국이 미국산 제품의 대체제로 유럽 상품을 선호할 것이란 분석이 깔려 있다.

블룸버그는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이 오사카에서 만나기 몇 시간 전 EU가 남미와 자유무역협장을 맺은 것을 지적하며 “EU가 미국이 자유주의 수호자에서 떠난 공백을 이용해 남미에서의 자국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중 무역전쟁의 혼란 속에서 EU가 방관자를 자처하며 수혜를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또다른 우방국 일본도 미국의 칼날을 피해 가긴 어렵다. 다만 일본을 미국과 조속한 무역협상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미국은 일본이 오랫동안 공들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불참을 선언하고, 대신 일본과의 양자협상을 요구했다. 일본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이달 28일 있을 참의원 선거 이후 곧바로 협상에 들어가기로 했다.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속도전은 중요하다. 미국은 일본에 상당한 규모의 옥수수 등의 곡물과 돼지고기, 육류를 수출하고 있다. 그러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일·유럽연합(EU) 경제연대협정(EPA)이 발효되면서 일본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점차 잃어가고 있는 상태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인 ‘팜벨트’에서는 “일본 시장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조속히 무역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강민지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비록 발효는 되지 않았지만 미·일은 과거 TPP 협정을 타결지은 바 있어 양측의 입장을 잘 이해하고 있다”며 “빠른 시일 내 TPP 수준의 포괄적인 무역협상이 도출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