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정병묵 기자
2014.03.24 06:00:00
[이데일리 정병묵 기자] 새벽 2시. 한 외국계 유통회사의 김정훈 과장(가명)은 ‘카톡’ 소리에 눈을 떴다. 영국 본사로 출장 간 팀장이 중간 업무 진행 상황에 대해 팀원들에게 공유하는 내용이었다. ‘급박한 건이 아니라 이메일로 전달해도 될 텐데...’ 김 과장은 굳이 모바일 메신저로 알려 잠을 깨우는 상황이 언짢았지만 수고하셨다고 답을 한 뒤 오지 않는 잠을 다시 청했다.
스마트폰 모바일 메신저가 보편화되면서 피로를 호소하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 모바일 메신저가 회사 업무용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도 쓰이다 보니 퇴근한 이후나 휴일에도 업무 관련 대화가 스마트폰으로 계속 오가기 때문이다. 특히 기업에서 외근이 많은 영업직이나 실시간으로 상황 대응을 해야 하는 언론홍보, 대관 업무 담당자들은 모바일 메신저 홍수에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의 작년 12월 조사에 따르면 2013년 6월 말 기준 전체 스마트폰 소지자의 모바일 메신저 이용률은 93.7%인 것으로 나타났다. 10대에서 40대까지는 90% 이상의 높은 이용률을 보였다. 특이한 점은 50대가 무려 84%, 60대 이상도 71.6%로 집계됐다는 점이다.
직장인들은 50대 이상 부장급이 모바일 메신저의 세계에 입문하면서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자 업체에서 일하는 김훈락씨(가명)는 “젊은 직원들끼리 사적인 용도로만 메신저를 썼는데, 작년부터 부서장급들이 여럿 단체 대화방을 만들기 시작했던 것 같다”며 “주말에도 메신저를 받고 있다 보면 새로운 파놉티콘(원형 감옥)이 바로 스마트폰 메신저가 아닌가 싶다”고 토로했다.
최근 외국계 스포츠용품 회사에 입사한 홍정환(가명)씨도 최근 회사 선배들의 성화에 못 이겨 스마트폰을 새로 개통했다. 그는 원래 모바일 메신저를 별로 쓰고 싶지 않아 여태까지 피처 폰을 고집했는데 회사 업무용 커뮤니케이션을 카카오톡으로 하다 보니 가입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홍씨는 “스마트폰을 안 쓸 자유도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며 씁쓸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