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休] '사랑의 역사'가 있는 도시, 경주를 가다

by이승형 기자
2013.02.19 07:10:35

[경주=이데일리 이승형 기자]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남기고 간 선물을 소중히 간직합니다. 그 사람이 생각날 때면 꺼내어도 보고, 만져도 보고, 이따금 눈물도 흘리면서 청승을 떨기도 합니다.

추억이 켜켜이 쌓인 선물. 긴 세월이 지나 때가 묻고, 먼지가 쌓이고, 빛이 바래도 그 가치는 커집니다. 아무리 볼품 없는 선물이라 할지라도 그렇습니다. 그 선물에는 두 사람의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사랑의 역사’입니다.

이렇게 경상북도 경주에는 사랑의 역사가 천년 동안 이어진 선물들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그 역사를 알고 선물을 들여다보면 마음이 달라집니다. 무엇 하나 허투루 볼 수가 없습니다.

흥덕왕릉을 둘러싼 솔숲. 곧게 뻗지 못하고 구부정하게 뒤엉켜 있는 소나무들이 바람소리를 낸다. 이승형 선임기자
“경주에서 문화재를 볼 때엔 말이죠.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봐야합니다. 마음으로요. 아시겠어요?”

박주연 경주시 문화유산해설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녀의 말을 명심하고 경주시 안강읍에 있는 흥덕왕릉을 찾아간다.

신라 42대 왕. 장보고에게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할 것을 명령해 왜구를 격퇴시킨 왕. 왕에 오르기 위해 자기 부인의 동생 둘을 죽였던 왕.

그의 무덤은 생각보다 소박했다. 농가와 축사 사이에 촘촘히 놓여진 논과 밭을 지나다 보면 돌연히 나타나는 왕릉이다. 도무지 왕릉이 있을 곳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공간에 흥덕왕릉이 있다. 대부분의 신라 왕들이 묻혀 있는 경주 분지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

그리고 왕릉 주변에는 기괴한 소나무숲이 있다. 수천 그루의 소나무들이 마치 승천하는 용들처럼 구불구불 하늘을 향해 솟아 있다. 왜 이곳의 소나무들은 곧게 자라지 않았을까.
흥덕왕릉. 직경 22.2m, 높이 6.4m의 원형봉토분에는 흥덕왕과 왕비 장화부인이 합장돼 있다. 이승형 선임기자
“홀로된 새도 짝을 잃은 슬픔이 있는데 어찌 차마 무정하게 다른 여인을 취하겠소.”

흥덕왕이 왕위에 오르자마자 왕비인 장화부인이 죽는다. 동생들의 목숨을 남편이 앗아가는 고통을 겪어야 했던 왕비. 왕은 그녀를 잃은 뒤 평생을 독신으로 산다. 신하들이 새로운 비의 간택을 청했지만 거절했다.

부인에 대한 사랑도 사랑이거니와 부인을 향한 죄책감의 무게도 만만치 않았을 터. 왕은 죽으며 유언을 남긴다.

“나를 왕비 곁에 묻어달라.”

권력 의지가 강한 이는 외롭다고 했던가. 그는 왕좌를 차지하는 대신 외로움을 얻었다. 그가 합장을 원한 것도 저승에서 용서와 사랑을 구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이 곳의 소나무들이 뒤엉켜 자라는 것도 왕과 왕비의 애증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여기가 기(氣)가 엄청 센 곳이라고 그러네요. 그래서 저렇게….”



흥덕왕릉의 역사와는 다른 성격의 사랑이 담긴 또하나의 무덤이 있다.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 문무대왕릉. 시퍼런 동해에 떠 있는 바다 무덤. 신라 30대왕인 문무대왕의 나라 사랑이 서려 있는 곳이다.

백제와 고구려를 평정하고 당나라 세력을 몰아낸 뒤 삼국통일을 완성한 문무대왕은 죽어서도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며 자신의 뼈를 바다에 묻으라 했다.
경주시 봉길해변의 문무대왕릉. ‘대왕암’으로도 불리는 왕릉 주변엔 요즘 갈매기들과 무속인들이 진을 치고 있다. 이승형 선임기자
그가 죽고 1300여년이 지난 지금 이 봉길해변은 전국의 무속인들이 모이는 곳이 됐다. 속된 말로 ‘기도빨이 죽이는’ 명소란다. 해변에는 무속인들이 노점처럼 지어 놓은 ‘굿당’들이 즐비하다.

꽤나 한가로운 해변과 바다무덤, 무당들이 내는 북소리. 애국의 문무대왕은 저승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경주에는 밤에 가야 좋은 곳들이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곳이 안압지(雁鴨地). 이 곳은 통일신라시대 별궁 안에 있던 것으로 신라 정원을 대표하는 곳이다.
빛과 잔설이 빚어낸 밤의 첨성대. 경주시 인왕동에 있는 첨성대의 높이는 9.17m, 밑지름과 윗지름은 각각 4.93m, 2.85m이다. 비록 타국의 천문대보다 규모는 작지만 하늘을 사랑했던 신라인들의 정성이 담긴 선물이다. 경주시 제공
임해전이라고 부르는 궁궐이 연못 한 가운데에 있고, 연못을 빙 두르는 500여m 길이의 산책길에는 꽃과 나무, 개울이 조화롭게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밤의 낭만을 찾고자 하는 연인들은 경주에 오면 이곳에 온다. 연못에 비친 달과 정원의 그림자들, 숲의 상쾌한 공기, 둘이 손을 잡고 걷기에 딱 맞는 길.

그런데 신라의 달밤에서는 감은사지 3층석탑과 첨성대도 안압지 못지 않게 아름답다. 문무대왕릉에서 가까운 양북면 용당리에 있는 감은사지 3층석탑은 쌍둥이 석탑이다.

동탑과 서탑으로 불리는 이 탑은 천년 풍상을 겪었음에도 그 균형미와 절제미가 현대의 그 어떤 건축물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절묘하다.
경주시 인교동에 있는 안압지. 연못 한 가운데 마치 떠 있는 것처럼 세워져 있는 궁궐 임해전은 밤이면 데칼코마니처럼 또하나의 궁궐을 만든다. 경주시 제공
지금 경주에는 봄 기운이 완연하다. 두터운 외투가 민망해진다. 이런 봄에 고택(古宅)을 찾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기분 좋은 일이다. 툇마루에 앉아 햇살을 느끼는 것. 마치 고양이처럼.

“이 곳이 명당 중에 명당이라고 해요. 배산임수죠. 산이 뒤에, 물이 앞에 있는. 한번 보세요.”

김순덕 문화해설사의 설명대로 독락당이라고 부르는 이 고택은 뒤로는 자옥산, 앞으로는 자옥산 계곡물을 두고 있는 곳이다. 이 곳의 첫 인상은 속세를 떠나 숨어들기 좋은 장소라는 것이었다.
계곡물가에서 바라본 독락당의 사랑채. 싯구가 저절로 나올만한 공간이다. 이승형 선임기자
독락당은 조선시대 퇴계 이황에게 성리학의 큰 영감을 줬던 회재 이언적이 1532년 조정에서 물러나 낙향해 지은 집이다. 안채와 사랑채, 서재 등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전형적인 조선시대 고택이다. 햇살이 눈부신 툇마루를 보자 낮잠의 유혹이 몰려온다.

신라의 유적들만 있는 줄 알았던 경주에는 독락당과 같은 조선의 고택들이 있다. 독락당 부근 강동면에는 150여채의 기와집과 초가집이 들어서 있는 양동마을이 있다. 안동 하회마을과 함께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경주에 와 본 사람들이라면 한두번은 들렀을 법한 독락당 돌담길. 지붕과 담에 깃들인 햇살이 정겹다. 이승형 선임기자
경북도청은 오는 3월부터 이런 고택들을 활용한 숙박시설을 활성화할 계획이다. 이른바 ‘지트 코리아’다. 지트(gite)란 프랑스 시골의 농가들을 일컫는 말.

손삼호 경북도청 관광마케팅 사업단 팀장은 “경북에 흩어져 있는 고택, 농가 중심의 민박 시설을 통합,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라며 “표준화된 메뉴얼, 서비스, 테마체험 등으로 숙박 등급도 결정하게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