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休] 필리핀은 섭씨 30도‥태양과 화산과 골프를 즐기다
by이승형 기자
2013.01.08 07:10:13
[마닐라·클라크=이데일리 이승형 선임기자] 선선한 저녁 바람을 마주하자 기분이 좋아진다. 불과 어제까지 영하 20도의 강추위와 싸웠던 기억은 온데 간데 없다.
티박스에 올라 한껏 고무된 표정으로 의기양양하게 드라이버를 휘두른다. 그러나 의욕이 필요 이상으로 충만한 탓이었을까. 경쾌한 타구음과 함께 날아간 공은 왼쪽으로 크게 휘더니 그만 골프장 담벼락을 넘어 도로 한 가운데로 날아간다.
“으악, 안돼.”
비명을 뒤로 한 채 하얀 색 골프공은 자동차와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 어딘가로 사라졌다. 한국의 골프장이었으면 난리가 나도 한참 났을 터.
그런데 이 곳 골프 캐디들의 반응은 무덤덤하다 못해 태평하다. 족히 나이 50은 넘어 보이는 캐디 리노는 “괜찮아, 다시 쳐봐(That‘s OK. Try again)”라고 말했다. 필리핀 마닐라 ‘클럽 인트라무로스 골프 코스’ 7번홀에서의 일이었다. 세상에 이런 골프장도 있다.
| 마닐라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16세기 요새 속의 골프장, ‘클럽 인트라무로스’. 필리핀관광청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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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트라무로스 골프장은 마닐라 시내 한복판에 있다. 그래서 작다. 파 68에 9개 홀을 두 번 도는 코스. 보통의 골프장이 총거리 7000야드에 육박하는 데 비해 다 돌아봐야 4426야드밖에 되지 않는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이 골프장이 스페인 식민지 시절 세워진 요새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코스 곳곳에 성곽을 비롯한 유물의 흔적들이 있다. 우리로 치자면 경복궁 경내에서 골프를 치는 셈이다.
필리핀에서는 드물게 라이트 시설이 돼 있어 야간 라운딩이 가능하다. 저녁 무렵이면 학교를 마친 학생들이 성곽 위에 올라와 골프장을 굽어보며 갤러리 역할을 한다. 도로의 소음과 아이들의 웃음 속에서 공을 치는 재미는 독특하다 못해 중독성이 있다.
매일 같은 밥만 먹다가 날새치 튀김이나 멍게 비빔냉면을 먹는 느낌이랄까, 이 골프장은 그런 별미같은 곳이다. 18홀 라운딩 비용은 캐디피 포함 5만~8만원선.
마닐라 시내에서 40km 가량 떨어진 ‘타가이타이’에는 한국인이 즐겨 찾는 골프장이 있다. 총 72개홀을 갖춘 필리핀 최대 규모의 ‘이글릿지 골프 코스’.
필리핀에서의 골프 라운딩이 더위를 걱정해야 한다면, 해발 400m인 이 곳은 비교적 쾌적하다. 시도 때도 없이 시원한 바람이 불어줘서 햇볕에 달아오른 머리를 식힐 수 있다.
닉 팔도와 그렉 노먼 등 왕년에 이름 꽤나 날리던 유명 프로 선수들이 설계한 코스를 비롯해 총 4개의 코스를 갖추고 있다. 벙커는 깊고, 그린은 빨라서 한국에서보다 점수가 잘 나오는 편이 아니다.
클럽하우스에서는 김치찌개, 육계장, 갈비탕 등 온갖 한국 음식들을 팔고 있어 음식 향수병을 달래준다. 18홀 라운딩 비용은 13만원 안팎(캐디피 포함)이다.
마닐라 북쪽으로 고속도로를 따라 2시간 30분 가량 달리다 보면 ‘클라크’라는 동네가 나온다. 미국 공군기지가 있었던 이 곳에는 고급 골프장과 리조트들이 흩어져 있다.
이 가운데 ‘폰타나 리조트 앤 컨트리클럽’은 2~3년 전부터 한국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는 곳이다. 리조트 내에 골프 코스는 물론이고, 워터 파크와 스파, 카지노 등을 갖추고 있다.
포르투갈 국적의 사장을 비롯한 직원들은 친절하고, 471개의 빌라와 70개의 호텔 룸, 20개의 타운하우스 시설 또한 깔끔한 편이다. 숙박료는 호텔룸은 1박에 10만~15만원, 방 2개짜리 표준형 빌라는 1박 15만원, 수영장 딸린 빌라의 경우 30만원 선이다.
| 수영장이 딸려 있는 폰타나 리조트 풀빌라. 필리핀관광청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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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의 골프 코스는 열대의 멋을 집약해 놓아 아름답다. ‘잠발레스’라고 부르는 산 기슭에 위치해 있어 푸른 하늘과 맞닿은 지평선의 굴곡이 절묘하다. 바로 ‘옆집’에는 그 유명한 미모사 골프 클럽이 있지만 그에 못지 않은 미모를 자랑한다. 18홀 라운딩 비용은 10만원 선.
폰타나 리조트의 한국인 매니저인 남현욱 이사는 “골퍼들은 물론 가족들이 휴양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라며 “특히 최근에는 한국 관광객 분들이 소문을 듣고 많이 찾아 주신다”고 말했다.
마닐라는 모든 개발도상국의 대도시가 그러하듯이 각양 각색의 풍경을 보여준다. 거리에는 식민지 시대의 색이 바랜 건축물 사이로 빌딩들이 빽빽히 서 있다. 미군이 남기고 간 군용차량을 개조해 만든 일종의 마을버스인 ‘지프니’가 값비싼 독일 차들 사이로 곡예 운전을 한다. 마닐라는 멀미가 날 정도로 붐비는 곳이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것이 매력인 도시다.
| 미군 차량을 개조해 만든 필리핀 특유의 차량 ‘지프니’. 필리핀관광청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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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락에 가면 1991년 6월 폭발한 적이 있는 ‘피나투보’ 화산이 있다. 당시 폭발은 지상 20km까지 올라갔으며, 분출된 화산재는 50억톤에 달했다. 2주 동안 지진과 함께 용암이 터져 나와 주위 환경에 많은 피해를 줬다.
그런데 당시 불덩이가 훑고 간 자리가 지금은 트래킹 코스로 이용되고 있으니 아니러니하다. 1시간 30분 정도 지프를 타고 가다 차량 진입이 불가능한 곳부터 2시간 가량 더 걸으면 화산 정상인 칼데라 호수를 만난다.
오르는 길에 초콜릿 케이크 단면처럼 잘려져 있는 단층을 목격하는 것은 이국적인 경험이다. 마치 외계 행성을 방문한 기분이어서 어디선가 외계인이 말을 걸어올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 피나투보 화산 정상으로 가는 길의 풍경. 필리핀관광청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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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킹을 마치면 화산 폭발 당시 생겨 난 유황온천인 ‘푸닝온천’을 들려봐야 한다. 관절염과 피부병에 효과적인 천연 유황 머드를 온몸에 잔뜩 바르고 낮잠을 청하면 남 부러울 것이 없다. 특히 이 곳에서만 즐길 수 있는 화산재 찜질은 체내에 쌓인 독소를 제거하고, 피부를 소독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필리핀관광청 이라원 과장은 “필리핀 하면 보라카이나 세부 등의 휴양지가 유명하지만 마닐라도 국제 도시의 라이프 스타일과 문화가 주목받으면서 그 자체로 중요한 여행의 목적지로 떠오르고 있다”면서 “골프 여행지로만 여겨졌던 클락 역시 가족 단위의 여행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숙박=마닐라 시내 중심부인 마카티에 위치한 베스트 웨스턴 안텔 호텔은 시내 관광에 편리하다. 공항에서 20분 거리에 있고, 주변에 대형 쇼핑몰이 있다. 127개 객실을 갖췄으며 콘도형으로 설계돼 있어 방안에서 간단한 요리도 가능하다.(www.antelhotel.com)
▲항공=필리핀 항공, 아시아나, 대한항공, 세부퍼시픽, 제주에어 등이 인천, 부산 등에서 마닐라까지 직항편을 운항한다. 특히 매일 3편 운항하는 필리핀 항공은 다른 항공편과 달리 낮에도 운항하기 때문에 비교적 편하다. 필리핀 항공의 마일리지 제도인 마부하이 마일은 누적마일이 2만 이상이면 인천-마닐라 일반석 무료 항공권 신청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