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절벽 없어도 美경제 회복 못한다"

by이정훈 기자
2012.10.31 06:00:00

마이클 스펜스 뉴욕대 교수 인터뷰
"美 내년 1.5% 성장 그칠듯..실업률 재차 상승"
"그리스 탈퇴돼도 유로존 유지..결속력 더 커질수도"
"韓 재정견실 큰 힘..대외악재 취약성 극복이 관건"

[뉴욕= 이데일리 이정훈 특파원] “글로벌 경제가 침체국면(리세션)에 빠질 가능성은 크게 높아졌습니다. 재정절벽(Fiscal Cliff) 문제를 해결하는 시늉만 하고 있는 미국 의회가 설령 이를 해결해도 미국 경제가 제대로 회복되진 못할 것입니다.”

지난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던 마이클 스펜스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는 30일(현지시간) 이데일리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경제지표가 살아나고 있고 연방준비제도(Fed)가 3차 양적완화를 진행하고 있지만 미국 경제에 대해 낙관적으로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세계 경제에 `퍼펙트 스톰`과 같은 거대한 역풍이 몰아치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고 그리스가 탈퇴해도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은 충분히 유지될 수 있으며 오히려 결속력이 한층 강화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아울러 한국에 대해 재정의 견실함에 큰 점수를 주면서도 대외충격으로부터 버텨낼 수 있는 체질 변화를 당부했다.

◇ “미국경제, 제대로 된 회복 어렵다”

스펜스 교수는 기업부문이 건전한 재무제표를 유지하고 있지만 가계의 디레버리징(부채축소)이 지속되고 있고 정부부문의 긴축이 이어지는 이상 미국경제가 본격적인 회복세를 보이긴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대부분 내년초 정부 지출이 대폭 삭감되고 세금이 인상되는 재정절벽을 우려하고 있지만 이 문제가 해소된다해도 상황이 그리 나아질 건 없다”며 내년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5%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실업률도 지금보다 더 높은 8%대 중후반 수준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2% 안팎의 성장률에, 8% 이하의 실업률을 예상하는 월가 전망치보다 크게 낮은 편이다.

연준의 적극적인 부양 행보에도 불구하고 “연준도 하나의 중앙은행에 불과하다”며 “경기 둔화에 대응하거나 재정절벽이라는 향후 불안에 대응하는데 있어서 제한적인 힘을 발휘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스펜스 교수는 “기본적으로 3차 양적완화는 경제주체들의 디레버리징을 완화해주고 정부 자금조달 부담을 낮춰주는데 초점을 맞춘 정책이며 연준도 실물경제가 확 살아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치권에 대해 “그들도 기업이나 가계가 재정절벽 이슈에 공포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는 만큼 재정지출 삭감과 세금제도 개편 등에 관한 합의를 지속적으로 시도할 것”이라며 “그러나 지금까지는 합의하려는 시늉 정도에 불과했고 실질적으로는 연말 새롭게 선출될 대통령과 새로 구성되는 의회가 이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접근하느냐가 해결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점쳤다.

◇ “유로존, 그리스 탈퇴로 결속력 커질수도”

스펜스 교수는 유로존과 글로벌 경제에 대해서도 “작년에 비해 글로벌 경기 침체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크게 높아졌다”며 “유로존이 결국 관건인데 그리스와 스페인, 이탈리아 등의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면서 유로존의 기능 자체가 악화되는 상황까지 간다면 글로벌 경기침체는 아주 심각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이런 상황이라면 미국 역시 경기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그는 “일부 비관론자 예언처럼 글로벌 경제에 퍼펙트 스톰이 몰아칠 가능성은 아직 낮다”며 “이머징 경제도 글로벌 침체 타격을 받지 않을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중국과 인도 등 주요 이머징 국가들은 적어도 플러스(+) 성장세는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 “연준과 유럽중앙은행(ECB)이 글로벌 침체를 막아낼 순 없지만 ECB가 지금처럼 국채시장에서 최종 대부자 역할을 분명하게 유지한다면 아주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해당 국가들의 국채금리를 낮추는 것 뿐만 아니라 안전자산인 독일 국채 등과의 스프레드(금리 차이)를 좁히면서 유로존 국가들의 전반적인 자금조달 비용을 낮춰줄 수 있고 은행간 단기자금시장 등을 회복시키는데도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리스에 대해서는 “성장이나 경쟁력에서 취약성을 가진 만큼 유로존에서 탈퇴하는 수순을 밟을 것”이라고 예상하면서도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그리스와 분명 다르며 재정이나 성장의 어려움도 훨씬 덜 심각하다”고 평가했다. 특히 스페인과 관련, “ECB가 국채매입 재개 방침을 밝히면서 벌써 국채금리가 하락 안정돼 시간을 벌고 있다”며 “이런 와중에 스페인 정부가 경제 개혁과 재정 안정화를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이것이 시장 신뢰를 어느 정도 얻게 된다면 추가 구제금융까지는 가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잔류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그리스 탈퇴에도 유로존은 충분히 유지될 것이며 오히려 최근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재정이나 금융부문의 통합을 더 강화하게 되면서 향후 더욱 공고한 결속력을 다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한국, 견실한 재정 큰 힘 될 것”

한국에서도 출간돼 스테디셀러가 된 `넥스트 컨버전스(Next Convergence)`라는 저서에서 밝힌대로 스펜스 교수는 “선진국과 신흥개발국 경제가 하나로 수렴되는 일종의 융합과정은 지속될 것이며 이를 통해 글로벌 경제는 지금보다 훨씬 더 큰 규모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도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는 “한국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역동적이면서도 성공적인 경제를 만들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 것”이라며 “특히 경제가 커지는 것은 물론이고 글로벌 사회에서 주요한 사회적, 정책적 이슈를 선점하고 의사결정 과정을 주도해나갈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최근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무디스, 피치 등 전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들이 일제히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한데 대해 “전세계적으로 재정 악화가 문제가 되는 상황인데도 한국만은 재정적으로 아주 견실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가장 큰 강점”이라며 “재정의 견실함은 글로벌 경기가 둔화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적극적인 부양에 나서는데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단기간 내에 아주 성공적인 경제 개발과 민주화, 근대화를 이뤄낸 만큼 역동적인 힘을 기대하게 만든다”며 “아울러 하이테크분야에 대한 투자 확대와 탁월한 인적자원도 세계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강점”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다만 “한국 정부도 잘 알다시피, 현재 한국은 글로벌 경제 변동성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며 “글로벌 익스포저가 높다는 것은 한국의 강점이기도 하지만 전체 한국경제에서 국제 교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높은 반면 내수시장 규모는 상대적으로 너무 작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글로벌 경제가 부침을 겪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도 했다. 스펜스 교수는 “한국이 보완해야 할 점이며 이는 정부 정책순위에서 최우선 순위가 돼야 한다”고 조언하면서도 “여전히 한국 경제가 다음 단계의 글로벌라이제이션(세계화)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아주 잘 조직화돼 있고 포지셔닝돼 있다고 믿는다”고도 했다.

◇마이클 스펜스 교수는?

경제에서 정보의 역할을 규명한 공로로 지난 2001년 조지프 스티글리츠, 조지 애커로프 교수와 함께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앞서 1973년 노동시장에 `시장신호(signaling)` 개념을 처음 도입해 고용주와 구직자간의 정보격차가 어떻게 조정되는 가를 밝힌 논문은 계약이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 토대가 됐다. 이 공로로 1981년에는 미국경제학회에서 경제학 발전에 가장 큰 기여를 한 40세 미만 경제학자에게 수여하는 `존베이츠 클라크 메달`을 받기도 했다. 2000년에는 4년 넘게 성장 및 개발위원회(CGD)에서 개발도상국을 연구했고, 이 성과로 `넥스트 컨버전스`라는 책을 내 전세계의 주목을받았다. 그는 1943년생으로 프린스턴대 철학 학사,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를 받았고, 스탠퍼드대와 하버드대에서 교수를 역임했다.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와 후버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겸임하고 있다. 그는 뉴욕에서 강의하면서 일년중 몇개월씩 가족들과 함께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