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미 FTA, 수입·유통업자 배만 불려선 안된다

by논설 위원
2012.03.15 07:00:00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3월 15일자 39면에 게재됐습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15일 0시부터 발효됐다. 이에 따라 미국산 자동차와 와인 등 9061개 수입품의 관세가 철폐된다. 관세 효과로 수입가 5000만원짜리 자동차의 경우 4600만원 정도로, 30만원짜리 재킷은 25만7000원대로, 1만원짜리 와인은 7800원으로 각각 가격이 내려간다고 한다. 발효와 함께 관세가 철폐되는 제품은 전체 미국산 수입품의 80.5%에 달한다. 정부는 향후 10년간 수출·투자·고용 증대와 수입품의 가격인하에 따른 소비자 이익을 강조하고 있지만 실제 국민들의 체감도는 떨어진다. 
 

무엇보다 관세 인하와 철폐로 수입제품 가격이 떨어지면 좋은데 다른 FTA 때도 가격 인하는 별로였다. 그래서 관세 효과를 수입업자와 중간 유통과정의 도·소매상들이 모두 챙겨가고 소비자들은 봉노릇만 했다는 인식이 적지 않은 것이다. 지난해 7월 한·유럽연합(EU) FTA 발효로 수입차량 관세가 인하됐지만 벤츠나 폭스바겐 등 유럽 자동차 판매가격은 오히려 올랐고, 결국 공정거래위원회가 불공정 유통에 대한 조사까지 벌였다. 샤넬·에르메스 등 유럽 명품 브랜드들도 가격을 수시로 인상하며 국내에서 배짱장사를 해왔다.



2004년 한·칠레 FTA 발효후에도 한국은 칠레산 특정 와인을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사 마신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칠레 와인은 유통과정의 왜곡으로 가격이 내려가지 않다가 올해초 정부가 주세법 시행령을 개정, 수입업자가 도·소매를 거치지 않고 소비자에게 직접 술을 판매할 수 있게 하면서 가격이 떨어졌다.
 

국내 유통구조가 복잡한데다 정부가 가격을 통제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탓이다. 이 때문에 한미 FTA도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적지 않다. 최근 대한상의 조사에서 국내 250개 유통기업중 31%는 한미 FTA이후 수입품 판매가를 내리지 않겠다고 했고, 가격을 내리겠다는 업체 중 75%는 판촉비와 복잡한 유통구조를 이유로 관세인하분중 일부만 반영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래선 국민들이 FTA의 효과를 체감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부는 한미 FTA발효 전후 주요 품목의 수입가격을 공개하는 등 모니터링을 강화할 계획이다. 수입·유통단계에서 암묵적 담합행위를 근절하고, 유통구조를 단순화시키는 노력이 절실하다. 소비자 단체도 국내외간, 업체·품목별 가격을 비교 공개해 소비자에게 제대로 알려야 한다. 그래야 FTA 효과를 국민들이 실감하고, 향후 다른 나라와의 FTA에서 불필요한 저항도 줄일 수 있게 될 것이다.